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흐린 날씨 흐린 마음

슬기엄마 2011. 7. 25. 08:49

인간은 확실히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몸도 마음도.
정확한 메카니즘은 모르지만
분명 무슨 인과관계가 있긴 있을 것 같다.
햇빛, 바람, 습도 등의 요인들이 내 몸과 마음에 미세한 변화를 미치는 것이 분명하다. 과학적인 기전이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관절염 환자들은 비가 오기 전날이면
관절 내 윤활액과 관절들이 기압의 변화를 미세하게 감지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관절염이 더 심하다고 하지 않던가.

요즘같이 흐린 날이 계속 되니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더 많아진다.
통증이 심해지고 조절되지 않으면 자꾸 자신이 아픈 사람이라는 걸 떠올리게 되고
그래서 비관스럽고 우울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뼈로 전이된 환자들은 욱씬거리는 뼈통증이 조절되지 않으면 특히 더 힘들어한다.

유방암 뼈전이는
비교적 예후가 좋다.
4기지만 오래 살 수 있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처음 뼈전이는 갈비뼈 1-2개로 나타난다.
그럴 때는 전이된 갈비뼈를 수술로 제거하거나 방사선 치료를 한다.
뼈전이의 특징은 매우 천천히 느릿느릿 병이 나빠지기 때문에
환자들이 자각 증상이 없다.
뼈로만 전이된 경우에는 항암치료를 하지 않고 항호르몬 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루 한알 호르몬제를 먹으나 안먹으나
주관적인 자각증상이 없다보니
열심히 안먹고 병원에도 잘 안오고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도 있다.

62세 뼈전이 환자.
이 환자는 15년전에 유방암 진단을 처음 받았고
5년전에 갈비뼈로 전이가 발견되었다.
수술 방사선 호르몬치료 이런 수순으로 치료를 받으셨지만
병이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나빠졌다.
자꾸 뼈로만 뼈로만 병이 진행하는 양상이었다.

환자는 언젠가부터 병원을 안다니기 시작했나 보다.
증상도 없고
약 먹으나 안먹으나 좋아지지도 않는데
그냥 살겠다는 베짱을 부린것 같다.
그리고 골반뼈에 왕창 전이가 되어 다시 작년말 병원에 다시 오셨다.
이미 걸음을 잘 걷지 못할 정도로 전체 골반뼈에 전이가 진행되었다.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환자는 자기 언제 걸을 수 있냐며, 걷지 못하면 사는게 아니라며, 효과도 없는데 치료를 안받겠다며,
계속 떼를 썼다.
항암 치료 후 호중구 감소증과 열이 동반되어 입원하였는데
이번 입원 내내 눈물바람이시다.
기운이 없어 주저앉았는데 다행히 추가적인 골절은 없지만
환자는 넘어진 이후로 통증이 심해졌다고 하신다. 미세골절이 생겼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 그 병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수술이나 방사선치료가 어렵기 때문에 진통제를 쓰는 수 밖에 없겠다.
매번 회진을 가면 입을 다물고 울기만 한다. 나 언제 나을 수 있냐고, 언제 걸을 수 있냐고, 그리고 증상에 대해 질문하면 짜증내고 화를 낸다. 정신과 면담도 단호하게 거절하신다.

뼈전이는 예후가 좋다고 하지만, 사실 잘 낫지도 않는 것 같다.
환자가 자신의 상태와 예후를 잘 인지하고,
치료를 꾸준히 받아야 한다는 점을 잘 인식해야 할 것 같다.
가능한 뼈의 상태를 잘 유지하여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보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으스러지기 직전의 골반뼈.
나에게는 이미 다른 치료 옵션이 없는데, 환자는 고통스러워 한다. 몸도 아프고 마음이 더 힘들고.
나도 고통스럽다.
 날씨라도 빨리 맑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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