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죄책감을 버리고

슬기엄마 2011. 6. 12. 21:18

1년전 유방암 수술.
당시 2기.
4번의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호르몬치료.

높지는 않지만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호르몬제를 복용하면서
수술 후 1년만에 정기검진을 시행하였다. 수술 부위 근처 갈비뼈 한군데에서 재발의 신호가 감지되었다. MRI 상 재발이 맞는 것 같다.
6개월전에는 괜찮았는데...

다른 곳의 전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곧 PET-CT를 찍을 예정이지만
내가 보기엔
임상적 정황상
다른 곳의 전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만약 다른 곳의 전이가 없다면
갈비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고 다른 종류의 호르몬제를 복용하며 경과관찰 할 예정이다.
다른 곳의 전이가 있다면
전이 장기에 따라 호르몬제냐 항암제냐를 결정해야 겠지만,

일단 전이가 된 유방암의 치료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항호르몬치료의 대상이 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뼈나 림프절 등의 기관에 국한된 재발/전이만 있다면
항호르몬치료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항암치료보다 항호르몬치료가 훨씬 편하고, 환자 삶의 질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호르몬수용체가 강양성으로 발현된 환자들은
재발부위가 한군데에 국한되었을 때 그 부위를 수술이나 방사선치료로 다시 국소치료를 시행한 후
전신치료로 항호르몬 치료를 했을 때 다시 한번 완치를 노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이론적으로, 통계적으로 그렇다.

그러나 환자는 아직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이다.

"6개월만에 검사한 것이 너무 인터벌이 길었던 것은 아닌가요? 좀더 자주 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 아닙니다. 자주 검사하는 것이 재발을 일찍 발견하여 생존율을 높인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의사진료비나 검사비가 싸기 때문에 6개월에 한번씩 하지만 미국은 1년에 한번 정기검진을 하고 있습니다.

"호르몬제를 먹다가 재발했는데 또 호르몬제를 먹는 것이 효과가 있나요?" --> 네. 뼈나 림프절 등의 기관에 국한된 재발이고, 환자분은 호르몬 수용체 강양성이기 때문에 항암치료보다도 호르몬 치료가 더 효과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암세포만 골라서 죽이는 표적치료를 할 수는 없나요?" --> 환자분께 가장 적절한 표적이 바로 호르몬 강양성 발현의 암세포이고, 호르몬 치료제가 바로 표적치료입니다.

"지난번 4번의 항암치료가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요?" --> 그렇지 않습니다. 4번이 충분하며, 표준치료의 가이드라인대로 잘 받으신 겁니다. 더 치료를 했을 때의 비용-효과적인 면이나 환자의 연령, 병기 등을 고려했을 때 이득이 높지 않습니다.

"또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수술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요?" --> 네 그렇습니다.

환자분은 우리학교 간호대를 졸업하신 분이라 의학적 지식이 많으시고 이해의 폭이 넓으시다.
그런데도 내 설명에 계속 고개를 갸우뚱 하시고 이해가 잘 안되시는 모양이다.

이것이 현재 암 치료와 연구의 한계입니다.
이것이 나의 최종적인 답변.

이런 설명을 하는데
왜 이리 식은땀이 흘렀던 것일까?
나는 이 환자를 처음 만났는데
마치 환자의 재발이 내 책임인 것 같다는 죄책감이 든다.
내 엄마 또래의 환자분...
치료하다가 재발하는 환자를 만나면 늘 가슴 속 한구석에 그런 죄책감이 살아난다. 왜 그럴까...

죄책감을 버리자. 이 환자는 다시 한번 완치를 향해 도전해볼 가능성이 있으니, 잘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