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했다.
자기가 그동안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에
얼굴만 보아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관상이라는 것도 이런 면을 집중 분석/통계적으로 보는 것이니 믿을만 할 것 같다.
난 관상을 전혀 볼 줄 모르지만 환자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한두번 만나서 얘기해보고 얼굴보면 분위기 파악 정도는 된다.
의사로서 나는
환자를 만날 때 어떤 표정을 짓는게 좋을까? 내가 굳이 표정을 짓지 않아도 이미 다 드러나있겠지...
나는 표정에 내 기분과 감정이 드러나는 편이라 종양내과 의사로는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좀 중립적인 표정이 필요한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게 종양내과 의사에게는 좋은 것 같다.
어떤 선배님이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사람 살고 죽는 일은
의사인 내가 하는게 아니라 하늘이 결정하는 거라고.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인간으로 할 수 있는 바는 하되, 일희일비 하지 말라고
그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책임을 하느님께 돌릴 수 있으니 마음이 편할 수도 있겠다.
하느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이니...
그렇게 편안하게 마음먹고 일하고 싶지만
그래도 일상은 그렇게 평온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오늘은 지난 번 약에 별로 효과가 좋지 않아
약을 바꾼다는 설명을 하러 병실을 찾았다.
늘 함께 있는 남편. 그들은 항상 같이 다닌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환자.
난 그녀에게 정말 최고의 좋은 치료를 해주고 싶고, 잘 낫게 해주고 싶다. 나보다 어리니까.
매우 감정이 개입되는 진료를 한다.
나는 오늘 어떤 표정이었을까?
환자는 나에게 자세한 것을 묻지 않는다.
'선생님이 알아서 잘 해주실거라 믿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렇지만 불안함도 같이 느껴진다.
나는 별 설명없이
약제 부작용과 주의사항, 외래에서 좀더 자주 보자는 말을 하고 병실을 나선다.
그녀도 나도 사실은 말하지 않았지만 각자의 불안함, 마음 속에 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원래 기도를 잘 안하는데
오늘은 이 환자를 위해 기도하려고 한다.
꼭 낫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를 하기 보다는
이 시간을, 오늘 하루를, 흔들리지 않고 꿋꿋히 잘 보내게 해달라고,
우리가 인간으로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할테니 그 다음은 제발 좀 알아서 잘 해달라고.
그녀에게는 부처님이 있다.
그녀의 부처님께도 참조로 기도를 동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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