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적어온 다이어리.
먹은 음식 종류와 양
운동량
몸 컨디션
아이들 학교에 학부모 총회 참석
친정 식구들과 외식
이런 사건들로 가득차 있는 그녀의 항암제 다이어리.
외래 중
나는 그녀에게 말을 시키고
눈으로는 다이어리를 잽싸게 훑어 본다.
그러다가 들어온 문구.
"내가 자꾸 작아지는 것 같고, 사람들이 나에게 잘 해주는 것 같지만, 외롭고 고립되는 느낌이 든다"
난 몸 컨디션을 물어본다.
4기 유방암을 진단받은 36세 젊은 엄마.
우리 병원에 처음 올 무렵은
어딘가 모르게 몸이 힘들어서 잠도 잘 못자고 음식도 잘 못먹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럴 것이다. 병이 깊었다. 그녀의 증상은 병의 분포와 관련하여 다 설명될 수 있었다.
그런데 항암치료를 시작하니 생각보다 독성을 심하지 않고 컨디션은 좋아진다고 한다.
이제 치료를 시작했으니, 아직 갈 길이 먼데,
성급하게 반응을 예상할 수는 없지만 환자가 설명하는 자신의 육체적 컨디션은 서서히 호전되고 있음을 의미하였다.대개 환자의 컨디션이 좋아지면 사진은 더 좋아진다. 다음달 CT가 기다려진다.
그런데 마음은 편치 않은가 보다.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표정은 맑다. 씩씩해지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녀의 마음 속에는 자신감결여, 불안, 걱정 그런 것들로 가득차 있나보다.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우울증이나 정서적으로 불안, 무기력이 오는 이유는
심리적인 상태나 정서적인 문제도 있지만 - 당연하다 -
항암제 부작용 때문에도 그럴 수가 있다.
자신의 몸과 마음, 가족관계, 주변상황, 경제적인 문제 등 변화된 상황에 맞서 적응하기 까지에도 시간이 걸린다.
유방암 환자라서 그런건지, 젊은 여성이 많아서 그런건지,
정신과 진료를 권유하면
자기 스스로 이겨내고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난
일단 얼마간의 시간을 두고 이겨내 보자고 한다. 그래도 안되면 도움을 받자고...
암환자의 정신적 스트레스는 그렇게 극기적으로 이겨내야겠다는 의지만으로 안되는 경우가 많다.
조기에 정신과적 도움을 받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고 남은 치료기간을 긍정적이고 힘들지 않게 보낼 수 있다. 자신의 힘만으로 이겨내겠다면서 수많은 나날을 눈물로 지새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신이 작아진다는 느낌
자신감과 존재감이 취약해진다는 느낌
그런 것들은 우리 영혼을 잠식하는
아주 나쁜 느낌이다.
"학부모 총회 때 무슨 얘기 하던가요?"
"둘째 유치원에 매일 데려다 주는건 힘들지 않으세요?"
"잠 잘 못주무셨는데 수면제가 도움이 되던가요?
"다음에 올 때는 가장 궁금한 점을 빨간 볼펜으로 써오세요"
"다음주에 또 항암치료 합시다"
마음이 너무 쓰여서 이것저것 물어보게 된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데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녀를 보며 마음 속으로 기도한다.
제발 이 항암제가 환자에게 잘 듣기를...
나 역시 항암제에 매달리는 종양내과 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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