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내가 2년차가 된다고?

슬기엄마 2011. 2. 27. 22:40

내가 2년차가 된다고?

 

1129일부터 2006년도 전공의 지원이 시작되었다. 작년 이맘때 나는 내과 지원을 눈앞에 두고 초조한 마음으로 시간나는 대로 도서관을 오가며 애를 쓰고 있었다. 병원마다 과마다 전공의 선발기준에 대한 철학이 다르고 선발의 관행에 나름의 관록이 붙었으므로,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기는 힘들 것이다. 또한 수십년간 같은 분야에서 일하며 환자 진료 및 전공의 선발의 경험을 가진 노()선생님의눈썰미가 그 어떤 기준보다 정확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성적 이외의 요인들이 객관적으로 평가되기 힘든 의사 선발의 양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이렇게 말하면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성적 중심주의 운운한다며 타박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의사로서의 인성과 태도를 반영할 수 있는 더욱 적절한 기준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항변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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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에 합격하기만 한다면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고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한순간도 멈춤 없이 정진할 것이니, 내 성적이 다른 지원자들보다 좀 처지더라도 나를 꼭 뽑아주세요라는 간절한 외침이 마음 가득이었으니, 내가 합격한 것은 그 뜻이 통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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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에 지원하는 몇몇 인턴 선생님들의 눈빛에서 작년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나는 과연 올 한해 동안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매 순간을 일해 왔는지, 부끄럼 없이 성실하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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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때 해보지 못한 몇몇 procedure에 능숙하게 되고, 병원 곳곳에서 다른 의사, 간호사, 직원들과 싸움닭처럼 부딪히며환자를 위해서라면목소리 높이는 것에 주저하지 않게 되고, 밤새 잠 한숨 못 자 지저분하고 피곤에 찌든 지저분한 외모로 병원을 돌아다니게 되는 것에 대해서도 무신경해지고, 한밤중에 arrest 방송이 들리면 반사적으로 뛰어가 환자를 봐야 한다는 것도 배우고, 모르는 일, 생소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1년차 primary는 일을 해내고 정보를 알아와야 한다는 천하무적 정신도 배우고…. 이런 것들이 내가 1년차 생활을 하며 얻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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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차 초반에는 학생의 질문으로 회진시간이 길어지면 내가 일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생각 때문에 초조하기까지 했는데, 이제 뭔가 좀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이론적인 뭔가를 풀어내기엔 굳어버린 내 머리, 지금의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내가 처음부터 봤던 환자 이야기를 해주며 이 환자를 파악하는 데 핵심적으로 중요한 사항이 뭔지 가끔 귀띔해 주기도 한다.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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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미의사가 되어버린 나에게환자의 목소리는 의학적인 언급인지 아닌지를 중심으로 선별되어 들린다. 초심을 잃고 관성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도 많다. 슬쩍 거짓말을 해도 들통이 날 일인지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는 일인지 파악하는 눈치도 생겼다. 환자를 위해 해야 하는 일, 윗 선생님들께 잘 보일 수 있는 일, 내가 편할 수 있는 일, 면피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 등을 고려하여 내 생활의 동선을 짤 수 있게 됐다. 1년 전 나를 분노하게 했던 부조리한 상황의 중심에 내가 서 있는 경우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 환자를 위한친절을 강조하면 가끔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시간이 나면 책상 앞에 앉기보다 침대 위에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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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의 모습은 어느 순간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든다. 내가 던졌던 비판의 화살이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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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차로 살아남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1년차니까라며 눈감아 주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뭘 몰라도잠 못 자고 고생하느라 공부는 제대로 했겠냐’, 실수를 해도얘가 알고 했겠냐, 잘 모르니까 그랬겠지’, 윗 선생님들이 많은 것을 감안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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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2년차가 되는 것은 또 한번의 upgrade를 요구한다. 이제 나는시간이 없어서’, ‘잘 몰라서라는 변명을 하는 것이 궁색한 시기가 된 것이다. 과연 upgrade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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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아직 누군가를 후배로 맞이할 만한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공식적으로 석 달이 남았다. 심기일전해서 지금 배우지 못하면, 지금 깨우치지 못하면, 지금 공부하지 못하면, 우스꽝스럽고 한심한 선배 의사가 되고 말 것이라는, 다소 유치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각성하고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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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우리 병원 내과는 인기가 많아서 우수한 성적의 지원자들이 많이 몰렸다고 한다. 내심 부담스럽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새로운 가면을 하나 골라 손질해서 써야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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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상급 전공의까지는 아니라도, 뭔가 배울 게 있는 선배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