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질병과 낙인

슬기엄마 2011. 2. 27. 22:37

질병과 낙인

 

교수님이 알면 크게 꾸중하실 일이지만, 솔직히 아직도 난 sterile, Hygiene 등의 개념에 약하다. 그런 나, 지금 감염내과 1년차로 일하고 있다.

처음 학생실습을 감염내과에서 시작하던 당시, 회진이 마라톤처럼 이어지던 인상적인 첫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며, 그때 만났던 감염내과 전공의 선생님이 그렇게 멋지게 보일 수 없었다. , 나도 그런 선배 전공의 의사로 비춰지고 싶은데
….

이런 표현이 좀 그렇지만 온갖 잡균이 가득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감염내과, 내가 환자 등 한번 두드리고, 손 한번 잡는 것이 transmission route가 될 수 있으므로, 누구보다 감염예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

VRE
격리병실의 환자를 보다가, HIV 감염환자의 IV line start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손을 씻고 장갑을 끼었다 벗었다 하지만, 마음이 바쁘다 보면 손도 대충 씻고 누가 안 보면 슬쩍 눈치를 보다가 가운도 갈아입지 않은 채 VRE 병동을 드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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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병원에서는 HIV infection 환자들의 peripheral line을 의사가 start하도록 되어 있다. Needle도 다르고 sterile glove도 착용하게 되어 있다. 의사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나는 그냥 맨손으로 한다. 장갑을 끼면 아무래도 손이 둔하고 잘 안 되는 것 같다. 또 환자 앞에서 장갑을 끼는 것이 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몇 번은 피가 나에게 튀고 손에도 묻어 내심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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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명의 HIV infection 환자들의 주치의인 나 역시 시간이 많고 내가 하는 일과 내 환자들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을 더 많이 한다면 어쩔지 모르겠지만, 그들도 나에게는 환자일 뿐, 오전, 오후 회진 때 변화된 상황은 없는지, 열이 나지는 않았는지, 검사결과는 어떻게 나왔는지에 대해 파악하고 설명해야 하는 환자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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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4 cell count
가 떨어져 immunity가 형편없이 낮고 거의 bed ridden으로 누워 있는 환자가 열이 나면 나는 30분 간격으로 가서 채혈하고 온 몸을 뒤져서 fever focus를 찾고 하는 것은 다른 어떤 환자에 대해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간호사가 아닌 내가 채혈을 하는 것 빼곤
.

감염내과를 돌았던 동기 중 한 명은 그러다가 needle stick injury를 입고 두 달간 antiviral therapy를 하면서 약제의 adverse effect nausea, vomiting, diarrhea로 고생을 했다. 만에 하나 감염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거듭하면 좀 무섭기도 하지만, 사실 일을 하는 매일매일 바쁜 상황에서는 그런 걸 염두에 둘 새가 없으니, 편견 없이 환자를 보게 된다는 점에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

그러나 그들에겐 보호자가 없다. 에이즈 예방협회에서 자원봉사를 해주는 간병인들이 며칠씩 돌아가면서 간병을 해준다. 아니면 보호자 없이 혼자 병원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의 과거사는 모르지만, 가족 없이 하루 종일 병원에서 크게 호전 없는 병세를 묵묵히 감내하며 지내는 것은 참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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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infection
에 대한 의사들의 시각도 아직은 질병과 환자 이외에 뭔가가 덧칠해져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 마음속에 HIV/AIDS 환자들은 처벌의 대상이 되는 비도덕적 행위, 일종의 범죄, 퇴치되어야 할 바이러스와의 전쟁, 공포의 대상, ‘우리와 구분되는 일군의 타자 집단이라는 의미로 자리잡는다. 가족 내에서도, 직장에서도, 의료서비스시스템 내에서도 이들은 구별되고 차별 받는 대상이 된다
.

인구의 40% 가까이 HIV infection 상태로 존재하는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다국적 기업에서 생산하는 HAART(Highly Active Anti Retroviral Therapy) 약제들을 generic drug으로 개발하여 싼 값에 공급하기 시작하였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치료 약제 중 일부를 국가가 공급하기는 하지만, 일부는 한 병에 백만원이 넘기도 한다. 이 주사약을 2주에 한번씩 맞는 환자들은 완치의 기약 없이 쏟아부어야 하는 약값 때문에 중도 포기를 선언하는 경우도 있을 법하다
.

아무 생각 없이 맘에 안 드는 누군가를 가리켜암적 존재라는 말을 하곤 한다. 정작 암 환자는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특정 질병에는 그 질병의 biological nature와 무관하게 사회적 의미가 덧붙여지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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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정서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적 차별과 낙인으로 이어질 때 이는 또 한번의 소수자에 대한 폭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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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는 수잔 손탁의질병으로서의 은유를 다시 한번 펼쳐보고, 방금 찾은 저널 ‘Theory of disease stigma’를 읽어보면서, 질병 자체보다는 내 전공이었던 사회학적 관점에서 이들 질병과 환자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오랜만에 가져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