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꿈에 나타난 vocal cord

슬기엄마 2011. 2. 27. 22:49

꿈에 나타난 vocal cord

 

미국의 외과 전문의 아툴 가완디가 쓴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1장에는 저자가 학생 실습 때 Rt. subclavian vein catheter insertion 하는 장면을 처음 목격했을 때의 느낌이 서술되어 있다. 보이지도 않는 혈관을 찾아 catheter를 넣는데 어떻게 puncture가 되는 것이며, catheter 끝은 어떻게 Rt. atrium을 향하고 있는지, 혈관을 찢지 않고 어떻게 advance하는지가 신기할 따름이라는 실습학생의 그 놀라움.

내과 1년차가 되어 환자의 vital sign이 흔들릴 때 intubation을 하고 c-line을 넣는 일들이 순식간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위험해질 수 있는 환자들을내가 manage해야 한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고 소명감을 갖게 하는 중요한 일임과 동시에 나의 능력과 판단이 환자에게 치명적으로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주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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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해보는 procedure라 먼저 해본 동기들에게 설명을 듣고 책을 찾아 보지만, 그 누군가는 나의 첫 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속으로는 진땀이 줄줄 흐르지만 마치 여러 번 해본 것처럼 능숙한 몸놀림을 보여 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제 제법 두려움 없이 ? 여전히 땀은 많이 흘리지만 - 이것 저것 할 줄 알게 되었다. 또 능숙하게 하지 못하다고 해도 두려움을 갖지는 않는다. 1년차가 끝나가기는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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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차가 끝나가는데 아직도

그런 나의 발목을 잡는 procedure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airway를 확보하는 intubation이었다. 사실 평소에나이 먹은’ ‘여자레지던트인지라 못한다는 말 듣기 싫어서 내심 애를 많이 쓰면서 사는 편이다. Excellent하지는 못해도 열심히 하는 것으로 만회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런데 acute management ABC 가운데 A를 위한 필수적 procedure라 할 수 있는 intubation을 못해 본 나로서는 마음 심연에 항시 불안함과 초조함, 그리고 위축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몇 번 blade를 잡고 시도해 보았으나 나는 도대체 vocal cord가 잘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를 보아 mask fitting을 해주며 누군가가 intubation을 할 수 있도록 보조하거나, 옆에서 c-line을 넣거나, 아니면 lab을 점검하며 order를 내거나, portable chest X-ray를 찍거나 검사결과를 빨리 알려달라는 독촉전화를 하면서 정작 laryngoscope 잡기를 사실상 회피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잡을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한두 번 안 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응급 상황에서 다른 할 일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과 시스템이 변하면서 환자가 vital이 흔들리는 중환이 될 것 같으면 미리 ICU arrange를 하여 transfer를 한다. 그러다 보니 병동에서 시급을 다투는 중환 management를 할 기회가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왠지 내 환자 중에는 intubation을 급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초응급 상황에 맞닥뜨린 환자가 없기도 했다. 그리고 간혹 발생하는 응급사태 때에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1, 2년차들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자리에서 intubation을 가장 먼저 시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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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어영부영시간이 지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나는 내심 불안, 초조함이 가중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1년차를 마치면 안 되는데…, 꼭 성공해야 하는데…, atlas를 몇 번이나 들여다보고 동기들에게 정황 설명을 들으며 다음에는 어떻게 해봐야겠다, 여러 모로 궁리를 하다 보니 꿈에 그림에서 본 vocal cord가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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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training failure?


그러나 fail 하기를 수 차례 반복했고, 나의 불안함이 느껴졌는지 동기들이 중환이 생기면 나에게 연락을 해 주었다. 와서 intubation 하라며. 얼마 전부터 내과 픽턴들도 들어오고 그들에게 procedure를 가르쳐줘야 할 판에 나도 못하고 있으니, 그런 내가 딱해 보였는지 눈물겨운 동료, 선배들의 기회 제공이 시작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vocal cord가 잘 안보였다. ‘나는 training failure라는 자책감이 엄습하고, 누군가 전화를 해 주면 병동으로 달려가는 내내 두려운 마음이 가득이었다. ‘용기를 내자, 두려움을 떨쳐버려야 해라고 되네이지만, 결국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은 intubation을 성공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던 내게 설 연휴 첫날 또 한번의기회가 왔다. 정월 초하루부터 intubation을 당해야 하는 환자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일이지만, 나는 그 기회를 잘 살렸다. 드디어 intubation에 성공한 것이다. Blade를 들어올리는 순간 vocal cord가 커다랗게 눈에 들어왔고, 그 안으로 tube가 쑥 밀려 들어갔다. 그리고 환자의 both lung field에서는 골고루 숨소리가 들렸다. CO2 retention으로 mental status drowsy해졌던 환자의 ABGA도 금세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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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서 만나는 동기들이 내 등을 토닥이며거봐, 하면 되는 거야. 이제 잘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정월 초하루덕담을 해주었다. 그들이 너무도 고마웠다. 남들보다 한참 늦게, 이제야 겨우 해냈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제라도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더 적극적으로 해보자는 촌스러운 용기가 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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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고 싶고 남에게 미루고 싶은 막막한 상황들이 수도 없이 발생하지만 결국 문제의 해결은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학습하게 되는 것이 1년차의 삶이리라. 그러나 나의 부족함은 내 힘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동료, 선배들의 끊임없는 후원과 도움이 있어야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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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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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차 생활이 이제 한 달 남았다. 지난 11개월 동안 수도 없는 위기상황에서 소리 없이 나를 도와주고 지지해준 동료들이 없었더라면 슬기엄마의 레지던트 생활은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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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차 말에 겨우 airway를 확보할 수 있는 술기를 처음 성공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 병원 교수님들이 크게 우려하시지는 않을지 죄송할 따름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나를 도와주는 동료들이 있고 선배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계시니 너무 걱정 마시라고, 묻지도 않는 질문에 답하고 싶다. 더불어 남은 1년차 기간뿐만 아니라 2년차가 되어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을 때 남에게 미루고 피하기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부딪쳐 보리라는 지금의 마음을 잃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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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중환 회진 시간에는 요즘 1년차들이 환자 열심히 안 보고 무책임해지고 있다는 2년차 선생님들의 지적이 있었다. 그렇게 지적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 열심히 하리라, 내 양심이 무뎌지지 않도록 다시 한번 각성하고 처음 1년차의 마음으로 나머지 기간 동안 일하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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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ubation
에 실패한 나에게 전화해서 그렇게 blade를 잡으면 왼손에 힘이 가지 않으니 vocal cord가 보이겠냐며 질책하신 정** 선생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에게 연락해서 laryngoscope을 쥐어주던 김**, 실패한 나에게 내일은 정월 초하루이니 내일부터는 꼭 성공할 수 있을 거라며 나를 격려해준 정**, 한 번만 성공하면 자신감을 갖고 잘 할 수 있을 것이니 너무 염려 말라고 하셨던 구** 선생님, 심지어 내과 의사에게 intubation이 전부는 아니니 너무 걱정 말라고 하셨던 김** 선생님, 모두들 너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