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나쁜 소식을 전하는 법

슬기엄마 2011. 3. 1. 17:48

나쁜 소식을 전하는 법

 

내가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는 병동의 바로 옆 환자 휴게실에서는 방금 폐암을 진단 받은 환자의 부인이 애써 울음을 참고 있다. 나는 마치 진단명을 고지함으로써 내 할 일을 다한 것인 양 자리를 빠져나와 병동으로 몸을 피한다.

대학병원이다보니 모든 과에 기본적으로 암환자가 많다.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며칠 전에 시행한 조직검사 결과 악성 종양으로 판정되었습니다혹은이번에 새로운 증상이 있어 시행한 추가 검사에서 **, **에 전이가 있는 것으로 판정되었습니다. 치료했으나 암이 진행된 것 같습니다류의 나쁜 소식 (환자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 같은)을 하루에도 수없이 전하는 것이 주된 일과이다. 의과대학 혹은 의사가 되는 어떤 과정에서도환자에게 어떻게 나쁜 소식을 전할 것인가에 대한 communication skill 혹은 empathy attitude를 배운 적이 없으니 매번 실수를 통해 배울 수밖에 없는 것일까
?

환자에겐 평생 한 번, 나에게는 routine


나는 이런 말을 꺼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한다. 환자와 보호자가 같이 있을 때 말할 것인가, 환자에게 먼저 결과를 알리지 않으려면 어떤 보호자가 있을 때 먼저 운을 뗄 것인가, 예후나 치료에 대해서는 얼마만큼 정확히 말해야 하는가, 하루 중 어느 때에 결과를 알려주는 것이 가장 적절할까에 이르기까지, 나쁜 소식을 직접 전하게 되는 전 과정 동안 소심하게 별 걱정을 다하며 망설인다(실상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많기 때문에 시간적 압박에 못 이겨 내면적 망설임의 시간이 길지는 않다). 더욱이 부인할 수 없는 망설임의 이유는 (환자가 병을 이해하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설명이 되어야 한다는 교과서적이고 규범적인 측면도 있으나 솔직하게 내 심정을 말하자면) 어떤 화법을 구사하는 것이 나의 시간을 save할 수 있는가와 연관되어 있다는 이기적인 측면도 있음을 인정한다.

환자 당사자나 보호자들은 평생 한 번 듣게 되는 끔찍한 말이지만 나는 routine으로 하기 때문에 내심 protocol이 있다. 주로 교수님들께서 환자들에게 설명하는 format을 유지하는 것이 의료진 설명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과가 바뀌면 교수님 style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와 가족들의 family dynamics, 질병에 대한 이해도가 다양하기 때문에 protocol 대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는다. 먼 지방에서, 직장 사정상 도저히 낮 동안의 시간을 낼 수 없다면서 밤 10, 11시가 넘어서 병원을 찾은 친척이 의사를 찾을 때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같은 설명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하는지 가슴을 치며 면담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 잘못하면 젊은 사람이 버릇이 없다는 평을 들을 수도 있고, 어떤 병이든 처음 진단 받았을 때 가능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할애하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며 착한 마음을 먹는다. 주먹을 쥐고 내면의 분노를 참으며
….

Gerome Groopman
의 저서 의 초반부에는 저자가 만난 환자들에게 그들의 예후를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이 보인다. 예후가 좋지 않을 것이 예상되는 환자에게 실체를 알리기보다는 긍정적인 측면만을 설명하고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주는 의사, 온갖 세세한 통계를 언급하고 예후나 치료 반응률에 대해 사실적인 설명을 시도하며 객관성을 강조하는 의사, 그 양극단의 spectrum 선상 어딘가에 우리가 서 있을 것이다
.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어떻게모든환자에게 인간적인 나의 연민과 공감을 표현하며 나쁜 소식을 전할 수 있을까? 나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예후나 치료 효과, 치료 과정 등 정확한 사실에 기반한 정보들을 취합해 표준화된 설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물론 환자의 특징을 고려해야겠지만), 가능한 한 질병의 실체에 환자가 직면할 수 있도록 덜 충격적인 방법으로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정작 치료를 받고 치료 과정의 힘든 시간을 겪어 나가는 당사자는 환자인데, 그 결정에 환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가족들까지 쉬쉬하며 이리저리 말을 돌리며 너무도 완곡하게 상황을 설명하다 보면 나중에 환자가 실망하고 분노하는 상황이 도래하리라.

비교적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환자가 병의 치료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편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해 왔건만, 오늘은 두 명의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고 퇴원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Lung cancer는 처음 진단 당시 stage lV일 확률이 50% 이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stage ll 로 진단 받고 operable ECOG 0 73세 제주도 할아버지, 다음주 화요일이면 수술이 가능한 상황까지 모든 스케줄이 짜여져 있었건만 그는 오후 회진 때 나를 보자 집에 정리할 일이 많이 있으니 당장 퇴원하겠다며 이미 옷을 다 갈아입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행운의 주인공이라고, 수술하고 퇴원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퇴원하면 원래 했던 농장 일도 조금씩 시작할 수 있다고, 한 달 뒤에 다시 오면 그때는 수술을 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나빠질 수 있다고, 설득을 하다 하다 나중에는 내 할아버지 같으면 침대에 할아버지를 묶어놓고라도 수술 받게 하겠다고 아주 감정적인 단어까지 섞어가며 꼭 수술 받아야 한다고 애원(!)했건만, 할아버지는 울먹거리며 퇴원하겠다고 하셨다. 병동 구석으로 가 할아버지와 단 둘이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

도대체 퇴원을 하겠다는 진짜 이유가 뭔가요? 이해가 안 돼요
.”

내 손자가 뇌종양 수술 받고 의식이 없는 상태로 5개월째 이 병원 중환자실에 있어. 나 그 애랑 같이 이 병원에서 치료 받고 누워있기 싫어. 손자 치료로 이미 돈도 다 써버린 자식들에게 부담주기도 싫고. 내가 집에 가서 농장도 팔고 집도 팔고 돈 좀 마련되면 다시 올 거야. 되는대로 빨리 올게
.”

나는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

어수선하게 퇴원시킨 두 명의 환자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말이 어눌한 78세 할머니, 기관지내시경 검사상 lung cancer, T4N3M0 stage lllb inoperable하며 Rt. upper lobe 90% 이상 좁아져 있는 huge mass. 할머니는 1997년 위암으로 수술 받고 f/u 내시경을 2년 전까지 9번 하셨다고 한다. 내시경만 이번이 10번째라고 하셨는데, 검사 후 3일간 열이 계속 난 것이 procedure related인지, obstructive pneumonitis가 생긴 것인지 모르겠지만 환자는 검사 후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Staging w/u이 다 끝나 오늘 가족들을 다 불러 진단명 및 병기를 고지하고 관련된 설명을 했더니 정작 환자 당신은 항암치료는 절대 받지 않으시겠다며 저녁 8시가 넘었는데 퇴원하시겠단다. Chronic otomastoiditis 탓인지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자꾸 딴소리를 하는데, 설득도 힘들고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힘들고, 환자와 대면하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 짜증이 확 솟구치는 것이 느껴진다. 지금 퇴원하면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고 치료가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warning만 잔뜩 하고 퇴원처방을 냈는데, 퇴원 직전에 38도로 열이 났다. 열 떨어진 지 48시간이 지났는데 다시 열이 나는 것이다. Hospital acquired infection. Pseudomonas cover하는 anti를 써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도식적인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반사적으로 vital sign check한다. 다행히 vital
stable.
Hospital acquired infection
community acquired infection과 다르니 anti를 쓰고 vital sign close monitoring 해야 한다는, 현재 obstructive pneumonitis aggravation되면 lung abscess empyema로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설명을 하지만, 이미 가방을 다 싸고 병실 문을 나선 할머니에게 내 설명은 별 효력이 없다. 가족들도 할머니 뜻을 꺾기는 힘들다며 다소 방관적으로 나온다. 땀 흘리며 설명하는 나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보호자들이다. 나는 그렇게 오늘 두 명의 환자를 어수선하게 퇴원시켰다
.

환자와의 대면(confronting the patient)’에 다시 한번 소심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해답은 현실에서 나올 텐데 과연 내가 조망할 수 있는 현실의 범위는 얼마나 넓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