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2009 내가 쓴 책

수현 8. 몸과 마음이 지친 당신께 임상연구를 설명할 때

슬기엄마 2011. 2. 27. 10:56

얼마 전, 암 수술과 항암치료 및 방사선치료를 모두 마친 경희에게 전화가 왔다. 이제 치료가 끝난 줄 알았는데, 특정 항암제를 추가 복용하는 것이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되는지를 보고자 하는 임상연구가 있다는 말을 교수님께 들었다는 것이다. 그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게 좋은지, 임상연구에서 제시하는 약제가 과연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나의 의견을 묻고 있었다. 그 자신도 내과의사이거니와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이미 설명을 다 들었을 텐데, 그 교수님보다 경험도 짧고 실력도 없는 나에게 굳이 전화를 해서 묻는 것은 아마도 다급한 마음, 누가 되었건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싶은 환자로서의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도 전공의로 일하면서 각종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설명도 해 봤고,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연구의 의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텐데….

표준치료의 효과보다 더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을 기대하고 시도해 보는 것이 3상 임상연구이다. 그리고 3상 연구를 시도하기에 앞서 전임상실험과 1, 2상 임상연구를 다 수행한 상태에서 기대할만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연구자의 확신이 있을 때 3상 연구에 도전해보게 된다. 3상 임상연구는 표준치료군 대 표준치료보다 더 나을 것으로 기대하는 실험군으로 대상 그룹을 나누고, 환자가 어떤 군으로 배정될지는 환자도 의사도 모른 채 (이중맹검, double blind) 환자가 임상연구에 동의하면 임의로 (randomization) 어떤 한 군에 배정된다. 이제까지의 표준치료가 만약 경과관찰(observation)’이라면 경과관찰하는 그룹은 대조군(control arm)이 되고, 추가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약제를 투여하는 그룹이실험군(experimental arm)’이 된다.

경희는 나에게 다시 한번 임상연구에 대해 설명을 듣더니, 경과관찰만 하는 것은 뭔가가 불안하고 뭐라도 추가적인 투약 등의 조치를 시도해보는 것이 심리적으로 안도감을 주는 것 같다며 고민한다. 임상시험에 참여한다고 해놓고, 정작 대조군으로 배정되어 경과관찰을 하게 되면 그때 동의를 철회하고 시험약을 임의로 처방해서 복용해볼까 하는 생각을 교수님께 비췄다가연구를 망친다그럴거면 하지 마라고 크게 혼났다며 머쓱해한다.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환자들의 고민

여하간 표준치료를 다 했고 현재 병이 없는 상태인 경희가 하는 고민은 사실 갈등이 아주 크지는 않다. 그러나 수술을 하지 못한 4기 암환자들은 암이 다 치료되지 않은 채 몸에 병이 남아 있는데, 그동안 여러 차례 항암치료를 하여 왠만한 항암제는 다 써본 상태라 항암제를 선택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담당 의사가 이제 추가적인 항암치료를 하는 것보다 경과관찰을 하는 게 낫겠다는 말을 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엄연히 몸에 암세포가 남아 있는데 경과관찰을 하면 백퍼센트 병이 재발하거나 악화될 것이 뻔하지 않은가! 무슨 치료라도 시도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컨디션도 괜찮고 아직 나이도 젊은데 병을 방치하란 말인가! 완치도 안 된다는데, 더 이상 약이 없다면 예전에 썼던 항암제라도 다시 쓰게 해달라!’는 암환자들의 안타까운 주장을 접할 때면, 나는 마음속으로 환자를 위한 짤막 강의를 준비한다. 암치료의 원칙에 대해 비교적 알기 쉽게 체계적으로 설명해주고, 우리가 치료를 통해 얻고자 하는 효과가 무엇인지, 재발과 악화란 어떤 과정을 통해 진행되는지, CT에서 보이지 않는다고해서 병이 완치되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 수명의 연장과 삶의 질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항암치료가 꼭 도움이 되는 상황은 어떤 경우인지 등에 대해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용어,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어로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들은 이제 치료를 못하게 되었다면서 근거없이 절망하고 삶을 포기하며 그동안 치료를 담당한 의사마저 원망한다. 이렇게 될 거면 아예 처음부터 치료를 해주지 말지, 항상 희망을 놓지 말라고 말해놓고서 이제 와서 할 치료가 없으니 경과관찰을 하자는게 말이 되는 소리란 말인가!
내 설명이 성공적이면, 환자들은 비교적 차분한 얼굴로경과관찰이라는 의사의 치료계획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임상연구의 경과관찰군이나 약제투여군 어느 군에 속하더라도 임상시험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약이든, 아니면 잘 모르는 신약이든, 기존 시험을 통해 약제의 효능과 독성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하더라도 실제 대규모 임상연구에서 궁극적으로 어떤 효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추가적인 약제 투여의 시도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오히려 해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모든 것을 이해한 후 환자는 임상연구에 동의해야 한다.

임상연구와 윤리, 의사들의 욕망

종양학은 임상연구가 매우 활발히 이루어지는 학문이다. 다국적 제약회사가 주도하는 세계적 규모의 임상연구-이들의 환자에 대한 지원은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에서부터 제약회사로부터는 최소한의 약제 지원만을 받고 몇몇 병원의 연구자들이 연계하여 주도하는 다기관 임상연구, 외부로부터의 어떤 지원도 없이 개별 병원 내의 연구자 개인이 주도하는 작은 규모의 임상연구 등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가능한 모든 암환자들은 임상연구를 통해 치료받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도 있고, ‘임상연구에 참여해서 치료받는 암환자의 비율이 높을수록 그 기관은 좋은 병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미국 내 최고 암전문병원이라 일컬어지는 MD Anderson 암센터는 전체 환자의 60~70%가 임상연구에 참여하여 치료를 받는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 임상연구가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된다는 삼성서울병원이나 서울 아산병원도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치료받는 환자의 비율이 전체 암환자의 20%에 이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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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암환자들을 가능한 동일한 특징을 갖는 집단으로 분류, 표준화된 진료지침에 입각해서 치료하고, 치료 과정 및 결과를 데이터로 정리하여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과정, 이를 보다 용이하고 체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임상연구이다. 비슷한 환자군에서 어떤 치료나 약제가 정말 도움이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일개 임상의사의 선호도나 치료 경향 등 의사의 개인적인 성향을 넘어 객관적인 근거에 입각해 이루어져야 한다. 단지 환자에 대한 최선의 진료, 최고의 설명, 최대한의 성의만으로는 치료 성적을 높일 수 없다. 표준화되고 객관적인 치료과정, 이를 통한 데이터의 정리, 결과 분석 등의 노력은 비슷한 조건을 갖는 다음 환자의 진료에 유용한 자료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종양학 의사들은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지만 임상연구를 기획하고, 단일 기관에서 어려우면 번거롭더라도 타 기관과 연계하여 임상연구를 수행하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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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종양학 의사들의 진료 행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의사들도 있다. 그들은 이미 진단이 다 되었는데 임상연구를 위해 조직이 필요하다며 이것저것 절차가 복잡한 검사를 반복하는 것과, 치료가 한시가 급한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연구 참여조건에 맞추느라 치료 시작을 1~2주 연기하는 것을 비판한다. 의학 정보의 불균형을 이용해 환자를 임상연구에 참여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놓고 결국 자기 논문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 아니냐는 적나라한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난 임상연구 프로토콜을 볼 때마다 늘 고민한다. 이 연구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진정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가? 윤리적으로 문제는 없는가? 학문의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환자에게 피해를 감수하게 만드는 부분은 없는가? 환자와 대면하는 매 순간 떳떳해야 하기 때문에, 내 양심에 거리낌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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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이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비윤리적인 의사를 어떻게 통제하고 조절하고 있는가? 내가 알기로 의사집단 내부의 통제 및 조절 메커니즘은 아직까지 취약하다. 아직 어느 병원의 IRB도 그렇게 강력한 자정 기능을 강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문적 업적 때문이든, 경제적 성과 때문이든, 제약 및 병원산업 내 영향력과 명망 때문이든, 어떤 형태로든 의사의 마음속 욕망에 발동이 걸리면, 그 분야에서 대등한 전문가가 아닐 경우 그 욕망의 위선을 알아차릴 길이 없다.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가 아니라면 의사도 환자와 마찬가지 존재에 불과하다. 아직까지 그 위험수위는 개인의 선에서 조절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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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연구 프로그램에 속해서 항암치료가 진행되고 한명 한명 개인의 의학적 자료가 전체 데이터의 일환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이야말로 아직까지 불확실한 사실들로 가득한 항암치료의 긴 여정에서 암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로서 다음 환자에게는 더 좋은 치료를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의 기본적인 물적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환자가 자신의 몸을 통해 우리에게 데이터를 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고 환자 진료에 경건한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