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2009 내가 쓴 책

수현 9. 4기 유방암의 항암치료에 대하여

슬기엄마 2011. 2. 27. 10:58

4기는 말기가 아니다

 

4기 암은 완치가 어렵다. 그러나 모든 4기 암이 말기암이 아니다. 말기 암환자라는 말은 현대의학의 시각에서 볼 때 암에 대한 치료적 관점으로 더 이상 뭔가를 시도해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때, 그래서 독한 항암치료를 해서라도 생명연장을 시도해보려는 노력이 오히려 환자에게 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될 때 4기가 아닌 말기 암환자라고 일컫게 된다. 말기암 환자라고 해서 모든 치료를 포기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암을 치료하기 위한 들이는 노력은 이득보다 손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항암제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지, 환자에게 발생하는 불편하고 힘든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  각종 시술과 수술을 통해서라도 환자가 고통없이 남은 여생을 보낼 수 있게 도와주는 치료를 해야 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진행되는 진료를 완화의료(palliative medicine)라고 말한다.

암환자의 병 경과를 쫒아 오래 진료하다보면 이제 항암치료를 그만 하는 것이 낫겠다싶은 생각이 드는 떄가 온다. 치료를 했는데도 반응이 거의 없고 오히려 독성만이 환자를 힘들게 할 때, 환자에게 시도해 볼만한 새로운 약제가 더 이상 없을 때, 약제는 있으나 환자의 전신상태가 너무 약해져서 항암제를 견디지 못할 것 같을 때, 의사는 환자와 보호자를 불러 치료를 망설이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함께 의논하여 추가 항암치료를 할지 말지 결정하게 된다.

 

4기 유방암은 다른 암에 비해 치료 반응 좋고, 다양한 항암제가 개발되어 있으며 끊임없이 신약이 개발되고 있는 분야라서 쉽게 치료를 포기하고 희망을 버려서는 안되는 병이다. 약 자체만 놓고 보면 독성도 상당한데 환자들이 반복되는 치료에 독성이 쌓여 힘들 법도 한데 비교적 잘 견딘다. 게다가 세포 독성 항암제 뿐만 아니라 적절한 시점에 항호르몬제를 쓰면 병이 그럭저럭 잘 콘트롤되어 항암치료 없이 항호르몬제만 복용하며 무증상으로 2-3년을 견뎌낸다. 그러다보니 환자의 차트를 보면 십년 이상된 항암치료의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치료 중간에 심장에 물이 차서 관을 넣고 힘들어 할 때, 폐렴으로 중환자실에서 고생할 때, 치료를 하면 좋아지다가 재발하기를 반복하니 우울증이 와서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될 때,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시작했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이 대학교에 입학하고 군대에 입소하게 되자 항암치료 기간을 조금 연장했으면 좋겠다는 말하며 좋아할 때 이 길고 긴 역사가 한 환자의 병력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환자의 상태는 아주 나빠 죽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인데, 이상하게도 유방암 환자들은 그 위기를 극복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젊은 엄마들 뿐만 아니라 할머니들도. 더 이상 새로운 약을 쓸 수도 없을 정도로 항암치료를 오래 하다보니 수년전에 썼던 약 중에 반응이 좋은 약을 골라 다시 투여하기도 한다. 그래도 치료에 반응이 있고 병이 좋아지니 어떻게 쉽게 포기하겠는가.

 

그러나 유방암은 매우 다양한 병의 집합체이다

 

아직까지 현대 의학에서 암의 발생과 진행, 재발의 모든 매커니즘을 알지 못한다. 아는 부분보다는 모르는 부분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2000 Nature 라는 잡지에 유방암의 분자유전학적 특성을 바탕으로 5가지 그룹으로 구분했을 때 각 그룹별 질병의 경과와 환자의 예후를 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논문이 실린 부 있다. 이 논문에서는 암세포 표면에 발현되는 두가지 호르몬 수용체(에스트로젠 수용체, 프로제스테론 수용체)의 발현 여부, HER2 수용체 양성 여부를 조합하여 전체 유방암 환자군을 5개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이중 호르몬 수용체 양성 그룹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오래 살고 치료의 반응도 좋고 항호르몬 치료만으로도 도움을 받는 집단이다. 이들은 수술 후 10 20년이 지났는데도 재발할 수 있다. 보통 5년동안 재발하지 않으면 일단 완치판정을 내릴법한데 유방암을 쉽게 완치를 말하기가 어렵다. 암세포가 아주 조용히 몸 안에 숨어있다가 어떤 신호에 자극을 받으면 재분열을 시작해 덩어리를 형성하며 우리 눈에 다시 암으로 포착된다. 다 잊고 살만한데 병이 재발되면 그게 림프절 1개이든, 간에서 재발되었든, 뇌에서 재발되었든 일단 환자는 4기 암 환자로 새로운 이름표를 부여받게 된다. 수술한 자리나 인근 겨드랑이 림프절에서 재발되는 것은 대개 수술 후, 혹은 치료를 마친 후 1-2년 내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이때는 전신 재발로 보다는 국소재발로 간주하여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를 통해 다시 한번 완치에 도전한다. 호르몬 양성 그룹의 환자들은 어쩌면 평생 재발의 위협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재발을 해도 치료반응이 좋고 특히 내장기관에 전이되지 않고 뼈에만 전이가 되었거나 일부 림프절로 병이 국한되어 있으면 항호르몬제를 복용하며 병을 억제하며 지낼 수 있다. 항호르몬제도 신약 개발중이며 항암제도 마찬가지로 많은 약들이 개발중에 있으므로, 재발한 4기 환자들은 신약개발에도 소문이 빠르고 임상연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의사와의 관계도 좋은 편이다. 이들 중에 슈퍼맨들이, 영웅적인 투병생활을 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의사이지만 경외스러운 환자들, 그들에게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인생을 배운다.

 

반면 HER2 수용체가 양성인 환자들은 세포 표면의 HER2 수용체를 막는 역할을 하는 허셉틴이라는 단클론항체를 기본으로 사용하며 이에 더불어 항암제를 선택하여 병용치료를 하게 된다. 허셉틴이 1997년 미국에서 FDA 공인을 받기 전까지는 임상연구를 통해 약제를 공급받았던 일부 환자들을 제외하고는 치료 성적이 좋지 않았다. HER2 양성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나쁜 예후인자였고 병의 진행속도도 빨라 호르몬 양성 그룹과는 매우 다른 임상양상을 보이는 그룹이었다. 그러나 허셉틴의 용도가 점점 확장되어 처음에는 4기 유방암 환자 가운데에서 HER2가 양성인 환자들에게만 보험도 인정되고 이론적으로도 효과가 입증되었으나 점차 수술전 항암치료과정에도, 수술 후 재발방지 치료과정에서도 허셉틴을 썼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예후가 좋고 생존기간이 놀랍게 연장되는 것을 알게 되어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HER2 수용체가 양성이라면 무조건 허셉틴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그렇게 하지 않는 진료는 거의 잘못 된 진료(malpractice) 라고까지 간주하는 시대가 되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4기 암환자들에서만 허셉틴을 보험으로 인정해 주었다가 2009 9월부터 수술 후 재발방지를 위한 허셉틴 사용을 보험으로 인정해 주기 시작하였다. 그전까지 많은 종양내과 의사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환자들에게 허셉틴을 투여하지 않은 과오진료를 한 셈이다.)

호르몬 수용체 음성, HER2 수용체 양성 환자들은 수술과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얼마 되지 않아 재발을 할 가능성이 높고 재발을 하더라도 뇌로 전이되는 경향이 있다. 호르몬 수용체도 양성, HER2 수용체도 양성인 환자들은 병의 성격이 합치되어 약간 애매하게 임상 양상이 섞여서 나타나는 추세이다. 두가지 수용체 중에 어떤 것이 더 지배적인 성격을 갖고 병의 흐름을 장악하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수 없고 많은 연구가 진행중이다. 여하간 HER2 수용체가 양성인 환자들은 허셉틴의 도움으로 생존기간이 놀랍도록 연장되었고 항암치료없이 허셉틴만 쓰더라도 병의 진행을 억제하는 능력이 있으니 천만 다행이다.

그러나 앞서 논의한 그룹들과는 달리 암세포 표면에 어떤 수용체도 발현되어 있지않아 에스트로젠수용체, 프로제스테론 수용체, HER2 수용체 모두가 음성인 그룹이 있는데 이들을 가리켜 삼중음성 유방암이라고 분류하고, 아직까지도 유방암을 보는 의사들에게 미지의 영역이자 좀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라, 현실적으로 환자 진료에 난항을 많이 겪에 되는 그룹이다. 전체 유방암 환자의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질병의 진행속도가 매우 빨라 치료에 반응하지 않을 경우 급격히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1기로 진단되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1년이 채 되지 않아 전신적으로 재발이 되어 나타는 경우, 혹은 사지는 멀쩡한데 뇌막으로만 전이되어 환자가 경기를 하며 의식이 나빠져 사망하는 경우가 있어 도대체 의사로서 특별히 손쓸 방도도 없고 손쓸 시간도 없이 나빠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기만 하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최초 3기로 진단되어 당장 수술이 어려우니 수술전 항암치료를 했는데, 수술로 제거한 조직에서 암세포가 하나도 없는 완전 관해 상태를 유도하는 비율이 호르몬 양성 그룹에 비해 낮지 않아 성공적으로 치료가 되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우리가 아직 다 밝혀내지 못한 분자유전학적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되며 그래서 최근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영역인 것 같다. 이들 연구의 성과가 삼중음성유방암을 진료하는 임상의사에게 현실적으로는 도움을 줄 날이 곧 올거라고 생각한다. 2상 임상연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약제들이 몇가지 있으니 그 약들이 우라나라에 들어오기를 기다려본다.

 

이론적으로는 이렇게 유방암을 구분하고 환자의 약제에 대한 반응을 예상하고 기대 여명을 점쳐 보지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통계적으로 산출된 평균의 위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환자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4기 환자이지만 그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한자에게 무조건 긍정적으로 말해주는게 도움이 안되는 건 어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큼 악조건을 가지고 있고 나쁜 예후를 가지고 있어도 약제에 대한 반응과 병의 진행속도, 몸의 전신상태가 얼마나 버텨줄지는 평균으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서 아주 종종 나의 예상을 뛰어넘고 좋아지는 환자들을 보기 때문에 누가 봐도 더 이상은 어렵겠다싶은 상황이 아니라면 환자를 포기할 수 없게 된다.

 

내가 잔소리를 하지 않더라도 4기를 진단받은 환자들은 마음이 힘들고 괴로워 방황하는 시간을 갖기는 하지만 대개 모두들 마음을 잘 정리하고 병원에 온다. 열심히 항암치료를 받겠노라고. 그렇게 결연해져서 오는 그들을 보면 나는 그들을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들의 투병의지가 꺾이지 않게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의사로서 당연히 알고 있는 의학적 지식을 제공하고, 가장 적절한 약제를 선택하고 설명해주면, 환자들이 그를 받아들이고 이겨내며 치료를 받는 과정, 그래서 다른 암보다는 협력적인 관계가 필요한 분야인 것 같다.

꼭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환자의 나이가 좀 많다고, 병기가 4기라고, 몸이 허약하다고 병원에 오지 않고 각종 민간요법에 기대어 식이요법만으로 나아지겠다며, 침을 맞으며, 기치료를 받으며, 기도원에서 기도하며 1년 이상 병을 키워오는 환자들이 있는데, 재발 그러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4기 유방암은 완치되지 않아도 조절되고, 부분적으로 치료될 수 있으며, 무증상으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여지가 많으니, 병을 더 키워서, 혹은 부작용으로 몸을 상하게 한 다음에 병원에 오시지 말라는 말씀이다. 결국 병원에 올거면서 왜 다른 길로 돌아가셨냐고 소리지르고 싶은 경우가 꽤 자주 있다. 그렇게 몸이 상해서 컨디션이 나빠진 채 병원에 오면 항암치료를 시작하기에 앞서 망가진 몸상태를 회복시키느라 많은 시간이 소모되면서 그러는 동안 정작 치료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이렇게 다 나빠져서 오면 나보고 어쩌라는 말이냐는 말이 목구멍 입구까지 튀어나오려고 하는 걸 참아야 한다. ‘이럴거면 그냥 끝까지 받던 치료 받으시지, 이제 와서 손대기도 힘들게 나빠져서 병원에는 왜 왔냐고 막 소리지르고 싶을 때가 있다는 말이다. 민간요법, 침맞기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이제 막 병을 진단받았을 때, 혹은 잠잠하던 병이 활발해지면서 암의 재발이 입증되고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이때는 항암제를 쓰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다른 방법으로 치료를 하시고 싶은 분이 있다면 제발 병원에 와서 의사랑 상의하고 항암제를 맞는 문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시기 바란다. 제발 부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