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최선을 다했지만...

슬기엄마 2013. 12. 12. 02:20

 

최선을 다했지만...

 

2000년 의과대학에 편입했을 때

나는 나의 존재 조건 자체로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동기들보다 7-8년 나이가 많은 것, 이미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 아줌마 의대생이라는 것, 사회학을 공부하고 의대에 편입했다는 것 자체가, 대부분 동질적인 속성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의대생 사회에서 매우 이질적인 조건이었다. 강의실에서 수업만 들으면 되었던 의대생 시절보다는 인턴, 레지던트로 일하던 전공의 시절에 나를 규정하는 좀 더 강력한 딱지가 되었다. 나는 그 딱지를 떼어버리기 위해 아주 많이 노력해야 했다. 의대 입학 당시, 나는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온 상태라 내 주위의 일상적인 것, 많은 것들을 분석적으로 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사회과학에서는 그러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대학원생인 나에게 생명력과 같은 자격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을 견지하는 것은 의대생이 된 후 일상을 유지하기에 참으로 불편한 것이기도 하고 의대 공부에도 도움이 안되었다.


의학/의료는 사회과학적 지식체계와는 언어도 다르고 시스템도 달랐다. 무엇보다 경각을 다투는 환자의 목숨을 다루는 순간에 나는 나의 지식과 실력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어야 했다. 환자를 살리지 못한다면 최소한 해를 주면 안되었다. 나는 최소한 평균적인 의사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평균적인 의사가 되기도 힘들었다. 또한 내가 의사 사회의 질서에 잘 적응하고 동료들과 팀원이 되어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튀지 않기 위해, 의사사회의 평균을 따라가기 위해, 의사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멤버가 되기 위해 애를 썼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좋은 의사가 될 수 없었다. 동료들과 협력하고 조화롭게 일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였다. 


그런 시간이 흘러 나는 이제 더 이상 사회학을 공부한 사회과학자가 아니라 평균적인 의사가 되었다. 그만큼의 몫을 해내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는 도전과 혁신보다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나을 때가 더 많았다. 나는 그러한 전체적인 틀을 수용하였고 이에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의사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내가 일하는 의료 현장에서 뭔가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개선하기 위해 시스템의 힘을 이용하거나 사람들과 토론하면서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그렇게 목소리를 내는 순간, 나는 튀지 않기 위해 지난 십수년간 노력했던 나의 실천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요구되는 미덕은 정해져 있었다. 환자도 많이, 잘 보고, 학생이나 인턴, 레지던트 교육도 잘 하고, 논문도 잘 쓰는 것이 대학병원의사로 생존하기 위한 최소 자격 조건이었다. 이런 요구사항들을 잘 이행했는지 눈으로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지표들도 있었지만 진료건수, 진료수익률, 유명 저널에 게재한 논문수 등- 직접적으로 그 성과들을 확인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다 환자들에게 잘 했는지, 학생이나 전공의들을 잘 교육했는지-. 


나는 그런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업이었다. 시스템이나 제도개선 등의 문제는 나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제기하여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무관하게 나만의 해법으로 시작한 일이 블로그였다. 

내 환자들을 위해 블로그를 만들고 오로지 그들에게 최대한 적절한 정보를 주고 언제든 당신 주치의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짧은 진료시간에 못다한 질문과 이야기들이 소통되는 공간을 준비하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고 했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었지만 나는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매일 글을 올리고 환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면서 새로운 힘과 의욕을 얻었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나는 블로그에 접속했고 환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오늘 하루 내가 환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다. 의사로서 사는 매 순간은 환자로부터 뭔가를 배우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쓰며 그런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개인적인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블로그도 다른 의사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는 계기가 되었다. 의사들끼리나 해야할 법한 병원 내부의 이야기가 밖으로 나가는 계기가 된다고, 나 혼자 치기어린 영웅적 무용담을 늘어놓는 공간에 불과하다고 그런 글을 쓸 시간이 있으면 논문 하나라도 더 쓰라고그런 평가를 들으면서도 그런 지적이 내 의도와 실체는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블로그에 글쓰기를 계속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행위는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상 뭔가 새로운 목소리를 내는 것에 더 이상 나의 에너지를 분산시킬 수 없었다. 정규직 교원으로 발령받기 위해서는 2년 단위로 이루어지는 계약기간 내에 나에게 요구되는 사항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 외의 것들에는 시선을 돌릴 여지가 없었다. 일단 가시적으로 눈으로 보이는 지표들부터 완성시켜야 했다. 최소한은 만족시킬 수 있었지만 최고가 될 수는 없었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다 균형적으로 잘 하지는 못한 것 같다.  

 

내 이름으로 외래를 개설하고 입원환자를 진료했던 지난 3년간 나는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만큼만 최선을 다했다.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고 나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사회의 의료시스템과 우리 병원 조직의 문화, 우리가 가진 한계점 등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문제제기를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조화롭게 풀어나가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은 내 능력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고, 시스템과 잘 연결되지 못한 개인이 갖는 한계이기도 하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이 내 환자를 위한 최선의 방편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환자를 위해서는 성의있는 한 명의 의사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안전한 병원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환자를 위해 했던 최선은 사실 최고가 아니었고 최고가 될 수도 없었다. 여전히 의사는 지식과 실력의 면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하는 존재지만 그것만으로 환자에게 최고의 의료 질 높은 의료 그리고 안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학회 기간 동안 읽기 시작한 책, ‘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는 나의 지난 3년 시간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나는 밤잠을 줄여가며 환자 진료를 준비했고 나의 환자를 같이 진료해 주시는 협진 파트 선생님들께 부지런히 메일로 환자의 상황에 대해 논의하였고, 외래 전날밤 의무기록을 다 작성하였고 처방도 미리 내 놓았다. 부족한 진료시간의 한계를 메우려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야 겨우 환자와 눈 한번 맞출 수 있었다. 그런 준비가 소홀했던 날은 환자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진료했다. 수십줄에 달하는 항암제 처방을 내느라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손발이 다 벗겨지고 진물러서 항암제를 못 먹겠다는 환자의 양말을 벗겨볼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다. 항문이 찢어진 것 같다는 환자의 엉덩이를 제대로 관찰할 시간도 없었다. 하루 종일 외래보고 밤이면 그날 외래에서 작성했던 의무기록을 보완하고 그리고 나면 다음날 외래를 준비하고, 그렇게 다람쥐가 제자리에서 챗바퀴를 돌리듯 3년을 살았다. 주말이면 열심히 공부했고, 열심히 논문을 썼고, 열심히 전공의 교육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나의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의사로서 내 문제의식 자체가 둔해진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여전히 의사인 나와 환자들 둘러싼 현실에 대해 민감한 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문제라고 생각한 것들에 대해 직접적인 매스를 들이밀지 않았고 (혹은 들이밀지 못했고), 조직으로부터 그만큼의 일을 할만한 사람이라는 신뢰를 얻지 못했다. 세계 최고의 병원이라는 존스 홉킨즈조차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의 다양한 결함과 실수가 반복되는 조직이었다. 마취과 전문의이자 중환자실 담당 의사인 저자 피터 프로노보스트가 어떻게 이러한 문제와 한계를 극복해 가는가를 지켜보는 것은 나에게 시사점이 많다.

 

나는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최고가 될 수는 없었다. 나는 최고 운운하기 전에 크고 작은 결함과 실책이 훨씬 많은 사람이다. 나의 환자들은 아마도 그런 나의 한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나의 잘못된 처방 때문에 약국에서 다시 나에게 전화를 해야만 했고 수첩에 자기가 먹는 약의 종류와 남은 양을 적어와서 보여주면서 처방을 확인했다. 그래도 그들은 나를 비난하기 보다는 이해해 줄려고 노력했다.

래서 나는 환자들의 말을 경청한다. 내가 친절한 의사라거나 환자를 존중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의사인 내가 미쳐 인지하지 못한 위험과 한계를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간호사가 메워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환자들은 그런 나를 잘 알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 자신의 마음에 생기는 새로운 변화와 느낌을 잘 말해주기도 한다. 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CT에서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변화를 유추할 수 있었고, 내가 저지를뻔 했던 실수를 미리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론 실수를 했다. 나는 환자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 그 모든 것들은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배운 것들이다.

 


당분간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지난 3년간은 항상 내 눈 앞에 환자가 있었다.

나는 환자를 보는 것만으로 지치고 힘들었던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런 생활이 내 존재의 의미가 아니었나 싶다. 


잠시 눈을 감고

의사로서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려본다.

눈을 감아도 습관처럼 환자가 눈에 밟히겠지만 

애써 잊어본다.

내가 아직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그동안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최소한 이만큼의 고민을 해야 

비로소 내가 성숙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