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선생님께
오늘 병동을 지나다가
선생님이 봐 주고 계신 유방암 뇌전이 환자 S 씨와 그 남편을 만났어요.
이 환자가 입원한지 몇달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네요.
안 그래도 엊그제 문득
제가 선생님께 전과보낸 이 환자 생각이 나서
선생님 입원환자 명단을 띄워봤더니 명단에 없길래
퇴원을 하셨나? 좋아져서 퇴원하신건가? 아니면 더 이상 좋아질거 없어서 퇴원하신건가? 불안했지만, 당장 내 앞에 있는 환자 문제가 아니라 잠시 걱정하다가 잊고 말았습니다.
유방암으로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하고 표적치료를 하는 긴 시간 동안
제가 환자 진료를 담당했었는데
표적치료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뇌전이가 진단되면서
순식간에 주치의가 선생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제 의무기록을 보니,
환자가 서너달 전에 밤에 목이 말라서 물을 많이 마신다는 말을 저에게 했더군요.
그래서 제가 혹여 요붕증일까 싶어서 일반 피검사만 했었는데, 피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오는 바람에, 더 이상 별 생각없이 항암치료의 후유증인가보다 했었고, 환자도 증상이 별로 심하지 않다고 하여 넘어간 적이 있었더군요. 그것이 아마 미약하게 나타난 증상의 시작이었나 봅니다.
전이된 부위가 1개니까 수술을 하는게 좋고 신경외과에 수술을 의뢰드려 선생님이 수술을 해 주셨습니다. 수술하기 어려운 위치였고 수술 부위가 각종 호르몬을 분비하는 곳이자, 일부 각성을 담당하는 뇌기능이 있어서 수술 후 환자는 온갖 호르몬은 인위적으로 보충하며 먹어야 했고, 각성 기능이 원할하지 않아 자꾸 졸려했습니다.
조금만 컨디션 않좋아도 소변을 몇천 cc 씩 보고, 나트륨이 떨어졌다 올라갔다, 의식이 명료했다 쳐지기를 반복했습니다. 환자는 말도 거의 안하고 표정도 없고 몸도 축 쳐진 상태로 점점 아무 움직임이 없어졌습니다. 머리 말고는 전이된 곳이 없었기 때문에 환자를 절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재수술할 것이 아니라면 내과가 보는게 맞겠지만, 뇌수술 환자를 많이 보신 선생님께서 전과를 받아 환자를 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처음 한달은 자주 환자를 찾아가 봤는데, 재원 기간이 길어지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그러던 차에 학회를 다녀오고 정신없이 하루의 일상을 보내면서 환자에게 자주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오늘 우연히 환자를 만난 것이죠. 나의 캥기는 마음을 미쳐 추스르지 못하고 괴로워 하던 순간에 바로 환자를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휠체어를 탄 그녀가 날 보고 아는 척을 하는거 아닌가요?
난 너무나 깜짝 놀라 어떻게 된 일이냐고, 언제부터 이렇게 좋아진거냐고 물었습니다.
환자는 '제가 언제는 바보 같았나봐요? 라면서 씩 웃는데,
그리고 그 옆에서 남편도 같이 웃는데
저는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악수하면서 손의 힘이 얼마나 되는지도 보고
다리를 움직여보라고 하니까 하주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어도 다리의 움직임이 많이 좋아진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미모가 많이 돌아온 것 같아요. 같이 사진 한장 찍을까요' 했더니
자신있게 '그래요 선생님' 하였습니다.
'선생님, 근데 스테로이드를 많이 써서 너무 살이 많이 쪘어요. 어떻게 하죠?'
'제가 나중에 비만 클리닉 용법을 입수해서 살 빼 드릴게요. 지금은 그런 생각 마시고, 잘 먹고 열심히 재활 치료 하세요.'
'너무 잘 먹어서 탈이에요. 아주 먹보에요.'
생각해보니 그녀와 이렇게 정상적인 대화를 나눠본 지도 꽤 오래되었네요.
우리가 같은 찍은 사진은 아주 예쁘게 잘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뚝심으로 환자를 지켜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외과야. 쪼잔하고 마음만 졸이는 나랑 달라.
역시 우리병원 신경외과는 최고야.
역시 우리병원 신경외과 K 선생님은 대단해.
저는 마음 속으로 그렇게 외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K 선생님 뿐만 아니라 제가 늘 마음으로 빚지고 있는 J 선생님도 마찬가지 십니다.
병이 병인만큼 좋아지기 힘든 조건을 가진 환자들의 상태를 어떻게든 회복시키기 위해 어려운 수술도 마다하지 않는 선생님들이십니다. 머리 관련한 환자의 상태가 조금만 상태가 이상해져도 무식하게 협진내서 선생님들을 괴롭히게 됩니다. 실력이 부족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환자 상태가 마음 먹은대로 좋아지지 않을 때
그걸 뚝심있게 견디며 치료하고 검사하고 회복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에
선생님이 봐 주신 이 환자의 호전 상태가 너무나 남달라 보입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병동에서 꼼짝도 못 하고 누워있던 환자였는데
오늘 이 환자를 보며
조급하고 호흡이 짧은 저에게 큰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제 수준이 부끄러운 것보다
이렇게 환자를 회복시켜 주신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훨씬 큽니다.
지금 환자는 재활의학과로 옮겨 재활치료를 하고 있군요. 그래서 선생님 입원환자 명단에 우리 환자가 없었나 봅니다. 재활의학과 선생님께도 역시 감사드리며 재활의 파워에 다시 한번 감탄하였습니다. 우리 병원같이 큰 재활병원은 장기 입원자가 많을 수 밖에 없어 여러모로 고충이 많으실텐데, 이 환자가 이렇게까지 호전된 것은 재활 프로그램의 힘이 크다고 밖에 말할 수 없네요.
제가 이 환자의 직계 가족은 아니지만
직계 가족과는 또 다른 입장에서 주치의로서의 책임감으로 마음이 무거웠는데
역시 환자는 마음으로만 진료하는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배웠습니다.
원인이 무엇이든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는 실력,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뚝심으로 버티는 베짱.
그런게 과연 훈련한다고 생기는 걸까요?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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