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그제, 이틀 사이에 3명의 환자가 인공삽관을 하고 중환자실을 갔다.
한명은 심폐소생술도 했다.
마침 중환자실 자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환자를 보내놓고 나니, 중환자실에서 날 욕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4기 환자에게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치료를 하는게 맞는건가요? 나를 비난할 것 같다.
나도 평소에 전이성 암환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극적인 치료가 반드시 옳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난 왜 중환자실을 보냈을까?
유방암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유방암의 세부 유형 중에는 아주 공격적이고 무슨 치료를 해도 약이 듣지 않고 진행이 빠른 타입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다른 암에 비해 4기가 된 후에도 오래 살고, 약도 많고, 환자들 컨디션도 좋다. 그리고 중환자실 치료를 잘 견디고 일반병실로 나오는 환자도 많다. 그리고 나서도 한참을 더 사시는 분도 많다.
치료하던 중에
질병의 진행과 관계없는 갑작스러운 이벤트가 생겼을 때,
(예를 들면 폐렴이 왔다든지, 흡입성 폐렴으로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이 왔다든지, 낙상을 해서 머리에 피가 고였다든지, 유방암이 나빠지는 것과 무관한 이벤트로 기존 환자 상태가 좋았는데 갑자기 나빠지는 이벤트가 생겼을 때)
전이성 유방암 치료를 위해 쓸 수 있는 치료의 레지멘이 많이 남았을 때, 향후 치료를 위해 시도할 수 있는 좋은 약제가 많이 남아있을 때,
병이 꽤 진행해서 여기저기 병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disease burden이 높지 않고 각종 주요 기관의 기능이 잘 보존되어 있을 때,
이벤트 직전 환자의 전신상태가 양호했을 때,
환자와 가족이 병에 대해 잘 이해하고, 의사의 결정과 판단에 협조적이고, 치료의 의지가 높을 때,
이런 요인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난 인공삽관을 통해 위기를 넘겨야 겠다고 결정한다.
그러나 임상적으로 이러한 결정이 깨끗하게 딱 들어맞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이제 그만합시다'라고 말하려면,
나에게도 더 이상의 후회는 없다, 비용 대비 효과 (cost to benefit)를 고려했을 때 cost가 더 높다, 라는 점에 대해 나 스스로 납득이 되어야 한다.
'선생님, 최선을 다해주세요'라는 가족이 말하는 최선의 의미이라기 보다는,
의학적으로 최선을 평가해야 한다. 무의미한 생명연장, 과도한 치료를 적용하는 것으로 최선의 의미를 남용해서는 안된다.
세명의 환자를 다시 한번 리뷰해본다.인공삽관을 하는게 맞는 결정이었을까?
나는 4기가 확정이 되면
환자에게는 다소 추상적으로
그리고 가족들에게는 구체적으로 4기의 의미를 설명하고
결국은 암 때문에, 혹은 암을 치료하느라 생기는 합병증 때문에 돌아가시게 될 것이므로
임종과 죽음에 대해 준비하시라고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호스피스는 죽음이 예상될 때 시작하는게 아니라 완치가 되지않는 병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순간부터 같이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평균적인 2년이 될지,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혹은 1년이 미처 안될지 모르는 일이고, 그 남은 시간을 잘 쓰고, 후회없는 시간이 되게 하려면 많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린다. 그래도 아직까지 호스피스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 다들 회피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지금 꼭 그런 얘기를 하셔야 하나요? 라는 눈빛을 보낸다.
중환자실 입실을 설명하면서
주치의로서 내가 설명하는 좋은 시나리오와 나쁜 시나리오에 대해 대략적인 예상 경로를 말씀드린다.
만약 이러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더 이상의 추가적인 치료는 의미가 없을 겁니다. 그때가 되면 중환자실 치료는 의미가 없습니다.
환자 상태라는 게 시간을 정해 예상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미리 마음 단속을 한다. 의학적으로 의미있는 치료와 검사를 다하고, 최선을 다하되, 그런 시간이 무의미하게 연장되어서는 안된다고 말씀드린다. 그렇다면 나의 판단이 얼마나 정확하고 옳은 것일까?
여러 연구에서
말기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의 예후에 대한 결정은 상당히 주관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동의한다.
폐렴의 악화로 호흡곤란이 온 환자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흡입성 폐렴이 온 환자
항암치료 후 백혈구 감소증으로 폐혈성 쇼크가 온 환자
이들의 회복 여부를 지켜보는 앞으로의 1-2주일은 나에게 이런 질문이 계속 되는 기간이 될 것이다.
난 3타수 3안타가 목표다.
이들을 모두 중환자실에서 회복시켜 일반병실로 나오게 하겠다.
얼마전에도 한명 나왔다. 그리고 많이 좋아졌다. 그렇게 좋아지는 환자를 본 경험은 쉽게 환자를 포기하지 못하게 만든다.
의학의 적용하는 의사는
지식의 범위를 넘어 지혜를 필요로 하는 직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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