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주말에 병원에 나와

슬기엄마 2011. 7. 3. 18:27

외래 진료가 없고 공식적인 업무를 쉴 수 있도록 허락받은 주말 휴일.
어제는 오전 외래를 잽싸게 보고
학회에 갔습니다. 나보다 백만배 훌륭하신 선생님들의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였습니다.
오늘은 늦잠자고 엄마생신기념 점심식사를 가족과 함께 하고 오후에 병원에 나왔습니다.

일요일 오후,
오자마자 EMR을 열어 입원한 신환들의 상황을 점검합니다.
내일 외래도 예습해야 합니다.
다음주 있는 발표 준비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재임용에서 탈락되지 않을려면 논문도 써야 합니다.
일을 하다보면 논문이 제일 뒤로 밀립니다. 그래서 아주아주 진행속도가 느립니다. 뭔가가 내용전개가 좀 막힌다 싶으면 그걸 돌파할 실마리를 찾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마음은 입원한 환자들에게로 돌아갑니다.
그것은 내가 마음씨가 따뜻하기 때문이 아니라
의사이기 때문입니다.
의사로서 제대로 환자를 위한 판단을 내려야 하고 약을 정해야 하고 적절한 검사를 해야 합니다.
그걸 제대로 못하면 의사가 아니니까
이것만큼은 내 자존심을 걸고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직업으로서의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이니까요.
대학병원에 있지 않은 의사선생님들도 마찬가지의 삶, 혹은 더 혹독한 삶을 감내하며 사는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돈과 타협하지 않고
교과서적인 정도 진료를 하며
불합리한 의료제도나 보험제도에 항의하며
그러나 눈앞의 환자를 위해 불철주야 고심하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어느 직업집단이나 마찬가지지만
의사라고 다 훌륭하지 않습니다. 이상한 의사도 많습니다. 자정의 노력이 많이 필요한 집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라는 행위의 본질상
대부분의 의사들은 환자를 위해 가장 필요한 진료, 좋은 진료를 해야 한다는 선의의 의무감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늘 공부하고요. 저는 그런 의사선생님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대학병원에서는 의사들이 큰 병원의 이름으로 보호받는 측면, 보장되는 측면이 많지만 개원하신 선생님들, 대학병원보다 작은 병원에서 일하시는 선생님들의 어려움이 여러모로 더 큽니다.

주말에 나와 환자들의 상태를 점검할 때면
사실 '야호, 치료가 잘 됬네'라고 기쁨의 환호성을 울릴 수 있는 경우보다
'아... 나빠지는 것 같다. 약을 바꿔야 겠다. 이렇게 병이 나빠지는 과정이라 증상이 생겼나보다'라며
혼자 통탄하며, 어떻게 해야할지를 마음태우며 혼자 방안에서 맴맴 돌며 불안, 초조, 안타까움을 달랩니다.

환자분들은 제가 가끔 밤에 혼자 회진을 돌때,
주말에 회진을 돌때,
아직까지 병원에 계시네요, 일요일에도 나오셨네요 라며 저를 위로해주십니다.
저는 사실 거의 병원에 있습니다. 학회가 아니면 거의 병원에서 지냅니다. 집에는 밤에 자러만 갑니다. 그래서 의사는 가족의 지원과 이해가 많이 필요한 직업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마음이 썩 가볍지는 않습니다.
주말 동안 입원하신 분들이 다 병이 나빠져서
외래에서 치료를 시작하기가 뭐해 입원을 하기로 했던 분들이네요. 저녁에 병동에 한번 다녀와야죠. 그리고 나빠진 병의 상태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합니다. 그런 걸 얘기하는 건 듣는 환자만큼은 아니지만 의사로서도 매우 스트레스를 받는 과정입니다. 나빠진 병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희망이 중요하지만, 무조건 희망을 줄 수도 없습니다. 난 그래도 우리 환자분들께 조금이라도 나은 치료, 나은 미래, 남아있는 시간이 편안하게 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치료를 하고 싶습니다. 그 방법이 항암치료만은 아닙니다만 항암치료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를 찾는 것이 저의 직업이기도 합니다.

좋아지면 가벼운 마음으로 방을 나섭니다.
오늘은 좀 안그렇습니다.
이렇게 제가 힘든 말을 꺼내는 것, 환자는 이렇게 힘든 말을 듣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의 아픔이고 어려움이지만,
또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함께 싸워이겨나가야 운명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날씨가 궂고 비가 오니 통증도 심해지는 환자분들께
치료도 잘 되고
몸도 가벼워지고
웃음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고민하는 주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