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병원 유방암 환우회에서 핑크리본 합창단의 정기연주회가 있었다.
제2회였는데, 난 사실 내막을 잘 모르고
그저 행사가 있으니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에
시간에 맞춰서 병원 강당으로 향했다.
우리병원에서 치료받고 환자들 사이에서 조직된 세유회에서 합창 모임이 시작된 것 같다.
올해가 2회이니 아마 작년에 처음 시작된 행가인가 보다.
일단 합창실력이 꽤 좋았다.
음, 오랫만에 음악회에 참석하게 되었군. 그런 생각을 하며 음악을 즐길 수 있었으니...
가장 인상적인 것은 환우들의 남편들로 구성된 프로젝트형 남성중창단.
약간 화음이 어색해도,
약간 음정이 불안해도,
약간 율동에 통일감이 떨어져도
이들이 내는 음색과 하모니, 그 에너지가 느껴지는 합창연주회였다.
'여자보다 귀한 것 없네' 라는 노래, 웃음이 절로 지어지는 율동과 가사.
우리는 노래 후 브라보를 외칠 수 밖에 없었다.
합창단원들이 무대에 들어서면
강당 어디에선가 '할머니'라고 외치는 꼬마.
무대를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 머리가 히끗히끗한 남편들.
연주회가 끝나고 리셉션장에서
나는 환우회 회장님, 부회장님, 오늘 연주회의 지휘자, 남성중창단원으로 노래해주신 남편분들과
익명이지만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진료한 적이 없는 분들이니... 그분들도 나를 잘 모르시고...
연주회 지휘를 맡으신 선생님은 임신 8개월.
환우들 뿐만 아니라 남편들까지도 노래엔 아마추어인데 그걸 다 조직하고 트레이닝하고 온갖 어려움이 있으셨을게 뻔한데
중요한건 막을 올렸다는 거.
그동안 관심을 갖고 도와드리지 못한게 죄송하였다.
외래나 입원환자들에게 미리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의사가 직접 참석을 권유했으면
오늘 훨씬 더 많은 환자들이 참석해서 보고
선배 환자들이었던 그들이
이렇게 당당히 멋지게 무대에 올라 최선을 다해 공연하고, 에너지를 뿜어져 내는 걸 보면
다시 한번 삶의 희망과 의욕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
내가 그런 의무를 소홀히 한것 같아 죄송하다.
지휘자 선생님의 어머니는 난소암으로 우리병원에서 치료받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걸 계기로 환우회 모임에 참석한 후 이렇게 연주회를 일구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신 것 같다.
누가 이들이 과거에 환자였는지 상상할 수 있을까...
멋진 여러 환우분들이 다과를 나누는데
'왜 우리가 유방암에 걸렸을까'라는 이야기를 하며 호탕하게 웃으신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나고 생존자로 당당히 삶을 꾸려가시고 계신데도
아직도 마음 속에는 '왜 나에게' 라는 질문이 자리를 잡고 있음에 나는 깜짝 놀랐다.
환우회라는 것이
자칫 특정 정보만을 공유하여 잘못된 담론이 형성될 수도 있고
막연히 마음을 나누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렇게 자기 삶의 일상을 쪼개 노래연습을 하고 함께 호흡을 맞추며 시간을 할애하는 과정
그리고 작지만 소박한 이 무대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의 주인공으로 서는
감동을 느끼는 것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며
후배 환자들이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또 다시 한번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뛸 준비를 하는 것. 한번 넘어졌다고 망연자실 넋놓고 앉아있지 않는 것.
오늘 합창연주회는 그런 가능성을 잘 보여주었다.
내년에는 미리 홍보도 잘 하고
더 나은 공연이 될 수 있게 나도 적극적으로 준비과정에 동참해야겠다.
병을 품어안고 안으로 안으로 삭혀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분출하고 용기를 내며 밖으로 밖으로 나가는 것
그렇게 자신의 껍질을 깨고 자기 삶의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도록
우리 환자/환우들을 지원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오늘 공연하신 모든 환우들, 그리고 가족들
모두들 너무 멋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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