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뭔가를 알고 나니 마음이 더 답답

슬기엄마 2011. 5. 4. 17:12

외래에서 
첫 항암치료를 받으시는 환자분께 항암치료일정과 부작용에 관한 설명을 하고 나서
블로그와 메일 주소를 알려드린다.
제가 미처 다 설명하지 못한 기타 사항에 대해서는 블로그를 보시면 좋겠다고...
제가 설명드리고 싶은 부분이나 관련 정보들을 설명해 두었으니 참고하시라고...
혹시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메일 하시라고...

대개의 환자들은 훑어보시고 나가시는지 - 대개의 블로그가 그렇지만 -
방명록이나 댓글, 메일을 남기시는 분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분들은 블로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
요사이 몇 분 환자들께 여쭈어 보았다.

"블로그 들어와 보셨어요?"
"... 네 ..."
"도움이 좀 되시던가요?"
"... 음 ... 그냥 마음이 더 무거워지는 것 같고 답답해서 보다가 나가요..."
"..."
"모르고 그냥 시키는대로 하면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모르는게 약, 아는게 병이라는 말도 있다.
뭔가를 알고 다니 가슴이 더 답답해진다는 말씀.
십분 공감된다.
그저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하면 좋아지겠지 하면서 우직하게 치료를 받는게
환자 입장에서는 마음편한 길일지도 모르겠다.

평균 발병 연령이 60세가 넘는 서양에 비해 우리나라는 40대 중반이라고 봐야하니
나는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들이 훨씬 젊고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치료 후에도 꿋꿋하게 살아나가야 할 길이 더 멀기 때문에
자신의 상태에 대해 더 잘 알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 몸의 주인은 나니까
의사도 의사지만
환자 자신도 스스로의 병에 대해, 스스로의 몸 상태에 대해 잘 아는 것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도 있다.

여기 글을 읽고 더 불안해진다는 분들이 가끔 있어서 내가 괜히 미안해진다. 괜한 말을 한 걸까?...
그냥 맘 편히 해드리고,
나만 믿으시라고
내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렇게 말하면 환자도 마음이 편할지 모르는데 말이다.

환자마다 원하는 것이 다르고
기대하는 것이 다르니 잘 맞춰서 대해야 할 것 같다.
맞춤형 치료...
맞춤형 설명...
이것이야말로 진정 경험과 내공에서 나오는 노하우겠지.
나는 부지런히 노하우를 더 많이 개발해야하는 수준이고...

환자 한분이 오늘 본인이 직접 만든 손지갑을 놓고 가신다.
글 보고
걱정도 많아졌지만,
그래도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라는 글을 보시고
인형도 만들고 이렇게 작은 손지갑도 만들고 해 보았다면서
자기 첫 작품이라며, 정성껏 만든 선물이라며...
나는 또 주책맞게 좋아하며 얼씨구나 선물을 받아
내 지갑에 있는 카드를 다 옮겨 담았다. ㅎㅎ 기분 좋다 ㅎㅎ 이그 철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