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중에서도 성질이 고약한 Glioblastoma Multiforme.
이 병으로 수술하신 54세 아주머니.
수술 후에도
방사선화학동시요법
그리고 나서 먹는 항암제를 6주기 유지하는 것이 이 환자의 치료계획이었다.
이 환자는 항암제를 먹는 기간 동안 아바스틴이라는 약을 추가로 더 투여하는 것이 재발에 도움이 되는지 되지 않는지를 보기위한 임상연구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1:1로 배정이 되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약이 투여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위약이 투여된다.
어차피 표준 치료로 먹는 항암제는 두 군 모두에서 먹는 것이므로
무작위 배정으로 위약이 들어간다 해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다른 세포 타입의 뇌종양에서는 아바스틴의 효과가 입증이 되어서 이 환자의 세포 타입에서도 기대해 볼 만 하다는 가정하에 시작된 연구, 아직은 정확히 모르는 것이니 임상연구를 하는 것이고...
임상연구를 시작하면서 남편분이 여간 깐깐하지 않다는 것을 난 이미 알고 있었다.
수술 후 방사선치료를 시작한 환자,
머리도 너무 아프고 컨디션이 않 좋아서 방사선 치료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힘들었던 무렵.
뇌 종양 자체가 나빠진 건 아닌데, 수술 한 부위에 방사선 치료가 추가되니 수술한 자리가 부었는지 환자가 자꾸 어지럽고 토할 것 같다며 잘 걷지도 못했다.
뇌 수술을 받은 후 가장 힘든 시기였다. 잦은 입퇴원의 반복...
환자는 아직 말도 잘 못하고
몸도 말을 잘 안듣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화장실 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일거수 일투족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입원 당시 미량의 질 출혈이 있어 산부인과 협진을 봤었는데,
산부인과에서는 원래 있던 자궁근종이 많이 커졌다면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그자리에서 보호자에게 설명을 했다고 한다.
우리 과와 상의를 하고 보호자 설명을 했으면 좋았으련만...
보호자는 지금 아바스틴 임상연구를 하고 있고
위약이면 모르지만
아바스틴이 들어가고 있어서 출혈이 있는 것일수도 있고, 만약에 수술을 한다해도 수술 날짜를 잡으려면 약 투약기간을 고려해서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 내가 임상연구 설명을 너무 잘 한 걸까? 너무 똑똑하시다-
어떻게 환자 치료계획과 관련하여
그렇게 무심하게 수술 결정을 하냐며 무지하게 화를 냈다.
그때 이비인후과 협진도 봤는데
늦은 시간에 협진을 보게 되어 이비인후과 진료실을 갔다가 밤 늦은 깜깜한 병원에서 길을 잃고,
이송하시는 분이 늦게 와서 추운데서 떨며 기다리다가
스테로이드를 먹는 환자가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컨디션이 더 나빠지셨다.
보호자는 이런 이벤트를 이유로 병원 적정진료실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환자는 아주아주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더뎠고
폐경기랑 항암 치료가 겹쳐서 그래서인지
이유가 확실하지 않은 통증이 계속 되었다.
내가 보기에도 환자가 의욕이 없다. 뭔가를 해보려는 의지가 별로 없어보였다.
운동을 안하니까 소화기관 능력도 떨어져서
자꾸 역류 증상이 생긴다며 음식 섭취도 게을리한다.
불편한 곳이 많으니 자꾸 약도 추가된다.
뇌 부종 때문에 스테로이드를 계속 쓰는데
줄이면 전신쇠약감이 심해지니
스테로이드 용량을 많이 줄이지도 못하고 장기간 복용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스테로이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입안에 백태가 끼어서 음식을 전혀 못 드신 적도 있다. 그런데도 살은 찌고 몸은 무겁고...
내가 죽기아니면 운동하기의 자세로 운동을 해야 한다고 적극 권유하였더니
다음 날 바로 면상이 뭉게져서 외래로 오셨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혼자 걷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이리 되었다고...
보는 나도 속상하고 짜증나는데 남편은 오죽 할까...
남편은
때도 아닌 과일을 사서 먹여보기도 하고
기분 전환이 중요하다고 메일 휠체어 산책을 다니신다.
본인 하시는 일도 있는데, 그 틈을 내서 최대한 간호를 하시는 것 같다. 사업은 많이 정리했다고 하신다. 입원을 하면 꼭 일을 봐야 할 때 아니면 아줌마 옆에 붙어계신다.
두 분이 딱히 사이가 좋아보이는 건 아니다.
남편은 계속 잔소리를 하면서,왜 이거 안하냐 저거 안하냐 내가 시키는 대로 안먹냐 ...
부인은 궁시렁 궁시럭 기운이 없다, 싶은데도 안하겠냐 못 하니까 그러는거지..., 왜 지난번에 얘기한 그 일은 아직 처리 안했냐, 누구는 만나보라고 했는데 왜 안만났냐...
옆에서 보기에 별로 다정하지 않다. 별로 대화도 아니다.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셈이다... 자꾸 다툰다.
환자는 항암제 4주기를 마쳤는데 한달이 넘도록 혈소판이 오르지 않아 매주 외래를 왔다갔다 하며 피검사를 반복하다가 결국 먹는 항암제를 중단하게 되었다.
임상연구약만 유지하기로 하였다.
항암제를 끊으니 혈소판도 오르고
환자 컨디션도 많이 좋아졌다.
두분이 같이 외래에 오셨는데
붓기도 빠지고 스테로이드를 줄였는데도 기운도 그럭저럭 괜찮고 별일 없이 지냈다고 하신다.
별일 없이 지내는 것이 참 소중한 것이라며,
상태가 좋아졌다며
외래 시간을 계속 지연시키며 이런 저런 얘기를 늘어놓는데
남편의 목소리에도 활기가 넘쳐서 끊을 수가 없다.
난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아프고 병들었을 때 같이 있어주는 사람, 도와주는 사람.
아프고 힘든 사람을 성한 사람이 도와주는 것. 그렇게 같이 사는 사람에게 인간으로서 예의를 다하는 것.
아줌마에게 묻는다. 아저씨가 잘 해주시네요? 자식들은 다 소용없죠? 그랬더니 아줌마가 아니라고, 자식들도 잘 한다고, 지금 휠체어에 매달려 있는 도시락 가방들이 다 딸들이 먹을거 만들어 보내준거라고...아줌마 복이 많으시네요. 자식복 남편복. 최고 부자시네요...
아줌마가 오랫만에 환하게 웃으신다.
그러고보니 화장도 곱게 하고 오셨다.
우리 환자의 생명꽃이 이 봄에 다시 피어나기 시작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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