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설명 하나는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슬기엄마 2011. 3. 10. 11:37

내심
나는 환자들에게 설명하나는 잘 한다고 생각해왔다. (거만하게도...)
물론 환자 설명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것도 있지만
비교적 환자들의 심리상태나 지금 마음의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 궁금해 하는 것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진료 초반에 환자와 충분히 이런 저럭 얘기를 나누는 것이 장기적으로 Rapport를 쌓는데도 도움이 되고, 치료 과정 중 예기치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상의하기도 좋다. 그래서 나는 첫 외래, 첫 진단, 약물치료변경 등 처음 환자가 변화된 상황을 맞이한 상황에서 만나게 되면 초반에 시간을 많이 쓰는 것이 당장은 바쁘고 힘들지만 장기적으로 더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엊그제 연타석 퇴자를 맞았다.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에게 재발의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를 설명했는데 의혹에 찬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진료실에서 설명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설명하고 집에 가서 가족들과 상의하고 관련 설명서를 읽어보신 후 오시라고 했는데 No. 또 한분은 심지어 동의하고 입원을 하셨는데 입원한 날 당일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며 No.
3년전부터 유방에 상처가 나서 진물이 계속 나오고 있었는데 검사도 않고 계시다가, 최근 숨이 좀 찬것 같다며 호흡기 내과에서 검사를 했는데, 유방암 폐전이가 진단되어 외래로 오신 분. 내가 천주교 신자라는게 정말 마음에 든다며 입원해서 검사하고 치료하겠다고 진료실을 나가셨는데 다음날 다른 병원으로 가시겠다면서 진단서를 떼어달라며 돌아오셨다.

'환자들 마음, 그렇게 간단한거 아니야!'라며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생전 처음 보는 환자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호감을 주면서 신뢰를 줄 수 있는 가이드라인은 없을까?
인간관계에서도 첫인상으로 결판이 나기 보다는
두고두고 사귀면서 정도 들고 싸움도 하고 다시 화해도 하면서 진짜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니까, 지금 나를 떠난 환자들이라 하더라도 너무 섭섭해하지는 말아야지.

아, 그래도 근무 초반에 이런 일이 생기니까 좀 위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