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 10

오늘 유방암 생존자/경험자를 대상으로 한 강의

오늘은우리 병원 유방암 클리닉에서유방암 진단 후 급성기 치료를 마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강좌를 개최한 날이다. 급성기 치료를 마치고 추적관찰 중인 그들을 어떻게 지칭할 것인가? '환자'라는 표현보다는외국에서는 'Cancer Survivor', 우리말로 하면 '암 생존자'라고 번역되는데, 생존자라는 표현보다는 '암 경험자'가 더 낫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이들은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유방암 치료를 일단 끝낸 분들이다. 다른 암에 비해 항암치료를 하는 환자들도 많고 항암치료 기간도 길며, 수술도 하고 방사선 치료도 하고, 1년간 표적치료제도 쓰고, 5년간 호르몬제도 쓰는, 치료가 복잡한 병이다. 나는 그들에게 유방암 치료가 끝난 후 발생할 수 있는 장기 합병증 가운데 신체적 측면에 맞추어 강의를 하게 ..

전화 위복

난 그녀의 원래 주치의가 아니었다.원래 선생님의 형편 상 내가 항암치료 뒷 부분의 두세번 진료를 봐 드린 것이 전부이다.그래서 최초에 어떤 연유로 유방암을 진단받게 되었는지 치료 과정에서 어떤 점을 가장 힘들어했는지 그녀의 심리적, 신체적 과정을 잘 모른다. 환자가 병을 진단받은 최초의 순간부터 마지막까지를 함께 하는 인연은 그리 많지 않다.오히려 그렇지 않은 환자가 훨씬 많다. 그러므로 새로운 환자를 만나면 이 병의 의학적/질병의 과정에서 현재 이 사람이 어떤 위치에 처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를 만나기 앞서서 어떤 치료를 받았고 이번 검사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순식간에 파악해야 한다. 그렇게 분석한 정보를 바탕으로 앞으로 그는 어떤 궤적을 밟게 될 것인지를 설명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순발..

UCC 대박나세요!

외래 진료 초반부에는상태가 안정적인 환자들이 많다. 앞쪽 진료를 할 때는 수년간 호르몬제 하나로 전이성 유방암이 잘 잘 조절되고 있거나 항암제 후 허셉틴 하나만 맞고 있거나독성없이 항암제를 잘 맞고 있거나 하는 컨디션 좋은 환자들을 '스피디'하게 진료한다. 병이 안정적인 그들은특별한 증상도 없고 아프지도 않기 때문에나에게 할말도 없다.자기 먹고 사는 일이 바쁘니까 자기 일 하는 것에 집중한다. 나한테는 기대하는 것도 별로 없다. 외래 일찍 보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사람도 많고아이들이 학교, 유치원 가는 틈을 이용해 치료를 받고 가는 사람도 있다.그렇게 그들은 바쁘다. 진료 앞 부분에서 한두명 지연되는 것이 진료 후반부로 가면 한두시간 지연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진료 앞 부분에는 이렇게 컨디션 좋은 환자..

종양내과의사의 두 얼굴

항암치료를 받으러 외래에 오면환자는 일단 피 검사부터 합니다. 그날 피검사 결과에 따라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몸상태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하니까요.피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 시간 이상 외래 대기실에서 기다립니다.자기가 예약한 시간이 넘어도 앞 환자들 진료에 밀려 내 진료 시간은 지연되기 일수 입니다. 그 전에 CT라도 찍었다 치면그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에 초조함이 더해집니다.숨도 제대로 못 쉬고잔뜩 긴장해서 1분 1초가 영겁처럼 느껴집니다.그렇게 애타는 마음으로 두어시간 진료를 기다리다가겨우 주치의를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들어간 진료실, 의사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습니다.내 인사에 답을 하는 둥 마는 둥 의사는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그게 저의 모습입니다...

젊은 엄마의 임종준비

외래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 대기실 풍경은 생각보다 다이나믹하다. 아직 내가 암환자라는 걸 받아들일 수 없어서, 받아들이기 싫어서, 아직 세상을 똑바로 응시할 자신이 없어서, 아무하고도 말 안하고 조용히 대기하다가 나만 만나서 진료받고 돌아가는 환자도 있고 몇년 치료받으면서 겪을거 다겪고 마음고생도 다 하고 그래서 힘들어 하는 후배 환자들을 만나면 이것저것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환자도 있고 치료 주기가 맞아서 자주 만나다보니 비슷한 형편과 비슷한 치료를 받는 환자들끼리 친해져서병원이 아닌 곳에서도 만나고 서로 연락도 하며 지내는 환자 그룹도 있다. 그렇게 친해진 환자들은누가 열나서 입원하면 문병도 가고좋다는 거 있으면 나눠 먹고누가 우울해 하면 같이 만나서 수다도 떨어주며 동맹관계를 유지한다. 의사의..

호스피스 완화의료팀을 만나보세요

지난 10월 10일, 보건복지부는 말기암환자 전문 의료서비스 정착을 위한 ‘호스피스완화의료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였다.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완화의료팀 (Palliative Care Team, PCT) 제도를 도입한다.의료기관이 일정 요건의 완화의료팀을 등록, 운영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다. (완화의료팀이란 호스피스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병상을 운영하지 않는 병원-우리병원처럼-에서 말기암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및 완화의료 서비스를 하기 위해 해당 과가 협진을 내면 완화의료팀이 환자를 면담하고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입원이나 외래 모두 가능하고 협진의 형태이기 때문에 주치의는 바뀌지 않는다.) 2. 가정호스피스 완화의료제도를 도입한다. 완화의료 전문기간과 연계한 가정호스피스..

1주일에 42 METs 이상의 운동, 쉽지 않을 거 같네요!

외래 진료시간에 환자들이 하는 가장 흔한 질문이‘뭘 먹으면 좋을까요?’가 아닐까 싶다. 환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암 치료 과정.치료방침이야 의사가 정하는 것이니환자인 자신은 그저 의사가 시키는대로 따를 수 밖에 없는 수동적인 입장. 그러므로 환자가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으로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특정 음식, 건강보조식품을 먹는 것만으로는 암 예방과 치료에 특별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무엇을 먹을것인가’의 문제는‘어떻게 살 것인가’와 관련이 되어 있다.일상적인 식생활을 ‘건강식단’으로 바꾸는 것은근본적인 삶의 철학을 바꿀 것을 요구하는 일이다. 온 가족이 함께 먹는 식단을 건강식단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

언제까지 소견서를 쓸 것인가

나의 태도는 이율배반적일지도 모른다. 과도한 의료비용의 증가를 우려하면서도 고비용의 표적치료제를 보험으로 환자에게 쓸 수 있기를 바라는 것. 제한된 돈과 자원문제라고 한다면 우리의 비용지출구조를 다시 점검해 볼 필요는 없는 것일까? 꼭 모든 암환자에게 5% 본인부담금 제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일까? 전이될 가능성이 매우 매우 낮은, 각종 암의 0기 환자들도 다 5%만 낸다. 그래서 건강검진차원에서 PET-CT를 찍고, 머리가 아프면 MRI를 찍는다. 몇만원 안드니까. 진료실에 있다보면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 를 자주 경험한다. 또 다른 재원 조달 구조는 없는 것일까? 예를 들면 HER2 양성 유방암은 그 자체가 공격적인 성격이 강해 빨리 재발하고 HER2 경로를 차단하는 표적치료제..

CPR video

오늘은 3개월에 한번씩 있는 임상암학회 분기집담회가 있는 날이었다. 오늘 논의된 세가지 주제 중 한가지가 암환자의 사전의료지시서 (Advanced Directives) 를 논의, 결정하는 것을 다루고 있었다. 교과서/이론적으로는4기 암(전이성/재발성)을 진단받는 순간, 의사는 환자와 '사전의료지시서'에 대해 논의하라고 되어 있다. 즉 의사는 암의 진행으로 인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고 그런 상황에서 심폐소생술, 중환자실 입실 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은 어떠한지, 만약 갑작스럽게 발생한 이벤트로 인해 자신이 의학적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누가 내 뜻을 대신하여 결정할 수 있을지에 대해 미리 환자의 의견을 확인하라는 것이다. 나의 현실에서는 이를 실천하기 어렵다.환자에게 완곡하게 표현하기는 하지..

전화번호를 바꿔야 하나요

명함을 드렸던 내 마음 75세 이상 연세가 많으신데 항암치료를 꼭 해야 하는 분들신장기능이나 심장기능이 좋지 않아 갑작스럽게 상태가 나빠질 수 있는 분들평소 만성질환으로 전신상태가 좋지 않고 병세가 위중하신 분들그런 분들께 명함을 드려 왔다. 암 치료의 긴 여정에는 늘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병이 나빠지면서 그러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지만, 애를 써서 위기상황을 극복하면 또 소중한 삶의 시간이 주어지기도 한다. 나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 회생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었다. 그런 내 욕심에 명함을 드렸다. 환자들은 자기 주치의 명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로를 얻는 것 같았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모르겠을 때, 그 누군가에게, 특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