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마음의 짐, 마음의 빚 2 - 호스피스 완화의료팀

슬기엄마 2013. 12. 15. 04:01



노력도 중요하지만

핵심적인 결과로 증명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제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그동안 함께 일하면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우리 호스피스 팀은 세상 그 어느 일류 병원의 완화의료팀에 못지 않은 능력있는 일꾼들로 구성되어 있고

환자에 대한 헌신과 봉사, 사랑으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팀이라고 자부합니다. 


환자 한명 한명을 내 가족보다 더 소중히 

그리고 환자의 가족들까지 그 모두를 포함하여

환자 임종의 순간 그리고 가족이 사별의 아픔을 이겨내고 견디는 그 순간까지

여러분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그 누구도 고귀한 삶을 살다 가는 별입니다.  

그 별들이 자기 빛과 향기를 잃지 않도록 여러분이 끝까지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언젠가 미래에 죽을 때 당신들의 손길을 기다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는 것만으로 인정받고 만족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난 십수년간 우리 호스피스 팀은 최선을 다했죠. 

그러나 정작 병원 내에서는 별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정규 직원도, 전담하는 의사도, 예산도 책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1년에 두번하는 바자회 기금으로 최소한의 비용을 충당하고

암센터 특별 예산으로 몇번의 지원을 받는 것이 전부였죠. 

 

우리병원에 호스피스팀이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면에서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지 아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습니다. 내과 전공의들조차도 호스피스 팀의 존재를 잘 모릅니다. 협진을 내면서도 과연 호스피스팀이 환자들에게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내 진료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도 모르는 형편입니다.  

씁쓸하게도

말기 암환자의 병원 재원일수가 길어지면, 담당 의사가 말하기 어려운 전원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는 부서 정도로 인식하는 의사가 제일 많을지도 모릅니다.

조직 내에서 인정받고 각광받지 못하는 단위는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 

병원은 자선기관이 아닙니다.

눈물겨운 봉사와 사랑으로는 더이상 병원을 운영할 수 없습니다.

임종을 앞둔 암환자에게 

영양 수액을 제거하고 피검사나 CT를 찍지 않고 약제 투여도 자제하는 것이 원칙이라면, 

그런 환자가 병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병원으로서는 수익상 마이너스입니다. 

즉 호스피스 환자를 진료할 수록 마이너스가 심해집니다. 저의 외래환자 수익율과 입원환자 수익율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국가는 작년 한해 동안 호스피스 수가를 책정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해 보았고 2014년 다시 한번 확대된 호스피스 시범사업을 해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제가 보기에 현재 예정하고 있는 그 진료 수가는 택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말기 암환자의 마지막 임종 순간에 주사 진통제를 잘 투여해주고 기도하면서 평온히 잘 돌아가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재 환자가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옆에서 지켜보는 저로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임종을 앞둔 말기 암환자는 일반 환자에 비해 4-5배 이상 간호의 손길이 더 필요합니다. 단지 먹는 약이나 주사제로 조절되지 않는 통증도 많습니다. 통증 조절을 위한 시술도 필요합니다. 시술이나 수술이 환자의 통증을 완화시켜 줄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진툥제도 단지 마약성 진통제 한가지로 용량을 증가시키는 것만으로 통증이 조절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가 하룻밤이라도 편안하게 주무시도록 하려면 많은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단지 환자를 위한 혹은 자애로운 병원이라는 이미지를 제고/유지하기 위해 호스피스 완화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병원 생존을 위해 도움이 안 됩니다. 저라면 이런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보다는 차라리 다른 것을 시도해서 혁신적인 이미지를 만드는게 낫다고 생각해요. 

 

지금 한국의 병원은 그런 이미지를 걱정할 때가 아니거든요. 

병원의 재정 적자가 매년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최소한 물가상승률만큼은 진료수가가 올라야 하지만, 

십수년째 진료수가는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못합니다. 

환자를 볼수록, 진료를 할수록 손해를 보기도 하는 진료과도 있습니다. 

건강보험과 의료수가의 제도적 폐해가 심각하게 쌓이고 있습니다. 

속내를 모르는 일반 국민들은 종합병원의 특진비나 약품가격 관련된 리베이트를 병원과 의사의 윤리성 문제로 연결시켜 비난하지만, 이는 국가가 그동안 제도적으로 갖추어야 할 보건의료 제반비용을 지출하지 않으면서 우회적으로 개별 민간 자본의 틈새를 이용해 의료기관이나 의사들이 편법적으로 이를 이용하도록 유도하여 적자 재정을 해결한 측면이 강합니다. (물론 제가 병원이나 의사의 개별적 비윤리적 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제도적으로 그런 측면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하간 작금의 병원은 인건비, 재료비, 약제비, 운영비 등 그 모든 것을 긴축적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인력을 줄이는 것이 가장 시급합니다. 병원 지출 중에 인건비가 가장 큰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국립서울대병원은 지난 9월부터 의사들 월급을 깎기 시작했습니다. 내년이 되면 더 많은 사립병원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일 것입니다. 당장의 불을 끄기에는 인건비 절감이 가장 효과적이니까요. 그리고 신규 인력을 채용하는 일은 가뭄에 콩나듯 드문 일이 될거에요. 



여하간

임종 환자를 대상으로 교과서적인 진료 원칙을 구현하는 호스피스 프로그램은 

현재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습니다.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마음만으로는 병원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임종환자에 대한 말기 호스피스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4기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조기 완화의료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한다면  

어떤 점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병원이라는 조직에 이득이 있고

환자 진료의 질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측정 가능하고 구체적인 지표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병원은 이러한 제안에 큰 관심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곧 문을 열게 된 새 암병원에서 

호스피스와 완화의료 프로그램을 중요한 signature program 의 하나로 인정하고 일차적으로 이슈화하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이 팀이 무엇을 이루어 낼 수 있을지를 결과 중심으로 제시하지 못한다면 궁극적으로 병원 내 의미있는 진료 단위로 자리잡지 못하고, 지난 십수년간 지내왔던 것처럼 자원봉사 차원의 노력을 하는 집단으로 지위가 축소되고 말 것입니다.  


 

의사들에게 어필하는 문제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환자에게 이만큼 잘 해주고 있다 

그런 노력만으로는 

의사들에게 호스피스와 완화의료의 필요성을 인정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완화의료팀의 노력이 의료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 어설픈 아마추어리즘을 극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과 한 팀이 되어 함께 치열한 고민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이렇게 변방에서 한마디 하는 사람으로 남게 되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헌신적으로 노력했다는 것만으로는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호스피스 팀이 병원에서 인정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정확히 분석해야 합니다.

단지 사람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담당 의사가 없어서 라는 이유를 넘어서 말이죠. 

그 한계를 넘어설 때

진정 최고의 팀이 될 수 있습니다.  


환자를 의뢰해 본 임상의사로서 

우리 팀의 일하는 속도는 별로 빠르지 않았습니다.

언제 

무엇을 

어떻게 

환자에게 intervention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하루 단위 그리고 더 나아가 일주일 단위로 care plan 이 필요하고 

그러한 계획을 얼마나 제대로 달성했는지 지표화하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해야 합니다. 


그렇게 측정할 만한 성과지표가 있지 않으면 

호스피스팀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그냥  착한 사람들이 모여 환자를 위해 애쓰는 

그런 어리숙한 조직으로 남고 말 것입니다. 

  


제가 매번 회의에서

우리 팀에게 매서운 말을 했던 것이

모두 다 제 진심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팀이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환자의 처지가 안타깝다고 해서

우리가 한발이라도 더 먼저, 더 많이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제도적인 완화의료시스템이 정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년에는

멋진

진료 단위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