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 살지만
그리고 지금 내가 그렇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조건에 처해 있다는게 다행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허탈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외롭고 고독하다.
나?
아니 우리 모두!
우리 마음 속에는
내가 절대적으로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느끼기 보다는
남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더 느끼는 것 같다.
내가 지금 비록 상황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누구보다는 나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기 쉽상이다.
그래서 때론 남의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해버리게 된다.
무의식중에 내 뱉은 나의 한마디 말로 그 누군가는 엄청나게 상처를 받는다.
난 그런 실수를 저지르고 산다.
지금 나에게 입원해 있는 환자들 중 대부분이
호스피스 환자이다.
의사로서 의학적인 도움을 주기 어려운 상태이다. 증상 조절만 하고 있다.
환자를 퇴원시키거나 전원하는 것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
제일 가슴아픈 건
착한 S.
나는 이제 환자 이름을 부른다.
누구야, 오늘은 좀 어때? 잠 잘 잤어?
처음에는 S 씨 혹은 S 환자 그렇게 불렀는데
이제 동생같이 그냥 이름을 부른다.
환자의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하는 건 처음이다.
아무것도 못 먹는 S.
세달째 콧줄을 끼우고 있다.
객관적으로 항암치료를 할 컨디션이 아닌데 목숨걸고 항암치료를 해보기로 했다.
병 진단받고 항암치료를 한번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계속 나빠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죽기만을 기다리기엔 너무 억울했다.
제 용량도 아닌 weekly cisplatin.
3주 동안 세번 항암치료를 했다. 첫 항암치료를 하던 주에 S는 너무 힘들어 했다.
마음 속으로 엄청 후회하고 반성했다. 괜히 치료했구나. 내 욕심이다. 그렇게.
그런데 기적처럼 복부팽만감이 좋아졌다. 퉁퉁 부은 배와 다리의 붓기가 빠졌다. 부어서 팽팽하던 살이 이제 말랑말랑해졌다.
그렇지만 거기까지.
합병증이 생겨서 더 이상 항암치료를 스케줄 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열이 나고 뱃속이 엉망이라 항생제를 쓰고 있었는데 항생제 때문인지 혈소판 감소증이 생겼다.
그래서 가능성있는 약을 다 끊고 바꾸고 그렇게 몇일을 버텼다.
다행히 혈소판 수치가 회복되었다.
암성 열인지 염증성 열인지 확실하지 않은 열이 계속 난다.
세번의 항암치료를 하고 시간이 꽤 지났지만 점점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 아무래도 항암치료를 하고 나니 기운이 더 빠지는 것 같다. 못 먹은지 세달째. 뼈만 앙상한 S.
항암제 효과가 있기는 했지만
계속 진행하기에 부담이 된다.
객관적으로 항암치료를 하면 안되는 상황인데 내가 욕심을 낸 것이지.
엄마도
나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엄마도 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시지만 어떤 결정도 못 내리신다.
S랑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솔직하게 내 심정을, 내 판단을 얘기했다.
그리고 너의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다.
아무 말도 못한다.
내가 생각해도 환자가 대답하고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S야.
난 이제 항암치료 하고 싶지 않다.
아마 항암치료를 조금만 했는데도 반응이 꽤 좋았던 걸 보면
항암치료 하면 더 좋아질 거 같기는 해.
그런데 지금 뱃속의 병 상태가 많이 나빠서
아주 많이 좋아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조금 좋아지려고 많이 힘든 치료는 하고 싶지 않구나.
더 이상 항암치료를 안하겠다는 나의 결정을 받아들이는게
너로서 굉장히 힘든 일일거 같다.
인생 포기하는 것 같고...
그래서 나도 말하기 어려웠다.
근데 S야.
그래도 그만 하자.
남은 내 인생의 시간이 항암치료하면서 점점 더 힘든 시간으로 채워지게 될 것 같다.
어제 진통제를 많이 올렸더니 안 아프고 괜찮지?
지금은 그냥 기운만 좀 없지 그럭저럭 괜찮잖아?
그러니까 이대로 있자.
항암치료 하면 이만한 컨디션도 유지하기 어려울지 몰라. 까딱 잘못해서 폐렴오고 요로감염오고 그러면 순식간에 컨디션이 나빠지고 어쩌면 죽을지도 몰라. 난 그게 더 무섭고 싫다.
S는 내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울해 했다. 엄마 몰래 우는 것 같았다. 눈가가 촉촉히 젖어있다.
잘 잤니?
네
더 아픈데 없어?
네
마음 않좋아?
...
엄마한테 얘기 들었어.
항암치료 안하면 다른 병원 가야하냐고 그랬다며?
다른 병원 안 가도 되.
항암치료 안 해도 되니까 그냥 여기 있자.
그러니까 안심하고 편안하게 잘 지내라. 알았지?
매일
회진 돌면서
S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힘들게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아픈 환자도 있는데
나는 건강하니까 다행이지
어찌 그런 마음을 먹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S를 보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삶의 불공평하다,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나는 왜 고통스러운가, 그런 마음을 가질수가 없다.
S를 보면 난 그냥 잠자코 있어야 한다. 내 마음 속에서 널뛰는 온갖 종류의 아픈 감정들을 잠재워야 한다.
오늘은 S 얼굴이 좀 편안해 보였다.
그냥 있으라고 하니까 마음이 놓였나 보다.
S야, 좀 괜찮아?
오늘은 좀 편안해 보이네.
네
선생님 괜찮아요.
안 아프고 좋아요.
S와 엄마가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인생은
오늘 하루가
선물이다.
S에게는 이렇게 보내는 하루하루가 선물이다.
선물같은 하루를 살 수 있도록 완화의료팀이 도와주고 있다.
나도 하루를 선물로 받아들이고 살기로 한다.
2013년은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삶과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더 노력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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