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나를 돌쇠로 만드는 그녀들

슬기엄마 2013. 11. 24. 17:50



병원마다 최초 암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가 끝나고 정기적인 검사를 하고 추적관찰을 하는 방식이 약간씩 다른데, 우리 병원 유방암 클리닉에서는 외과가 이를 담당하고 있다. 정기검진을 하고 검사결과를 확인하러 오는 재진 환자들이 누적되어 외과 선생님들 진료 예약이 꽉 차다보니 수술을 해야 하는 유방암 신환 외래예약이 지연된다. 그래서 요즘에는 형편에 따라 내과에서 이를 담당하기로 했다

그래서 1-2년전에 나랑 항암치료를 했던 환자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마지막 항암치료 하는 날 굿바이! 이제 나 볼일 없이 잘 사세요하고 헤어졌었는데, 불현듯 다시 만나게 된 그들.

 

4번 혹은 8번의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그들은 평생 남들에게 자기 어려움 내색하지 않고 자존심 지키며 살아왔던 자신의 일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였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그리고 치료는 그 기간만으로 끝나지 않고 지지부진 후유증이 남아서 몸 컨디션이 회복되기까지는 그만큼의 시간이 더 걸렸다.    

 

그들은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어려움을 나에게 토로하며 울기도 하고, 힘들다고 징징거리기도 하고, 더 이상 치료받고 싶지 않다고 떼를 쓰기도 했었다. 나 또한 그들 마음의 이면에는 진짜 치료를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나 지금 많이 힘드니까 위로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별로 잘 하지 못했다. 진료시간을 핑계로, 나도 힘들다는 것을 핑계로, 때론 쌀쌀맞게, 때론 혼을 내기도 하며, 환자를 위한 섬세한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건네지 못했다. 마지막 항암치료를 하는 날, 서로가 속 시원했겠지. 서로가 더 이상 볼일이 없게 되었으니까.

 

전날 외래 리뷰를 하면서 이름만 봐서는 누군지 잘 기억나지 않았는데, 외래에 들어오는 순간 그들과 함께 지지고 볶으며 치료했던 시간들이 순식간에 다 떠오른다.

 

어머, 많이 예뻐지셨어요. 피부도 훨씬 좋아지셨네요.

 

그래요? 운동 많이 했어요.

 

근데 콜레스테롤도 좀 높고 지방간도 생긴거 같아요.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 할거 같네요.

 

매일 한시간 이상씩 걷고 등산도 자주 다니고 그랬는데

 

호호, , 원래 항암치료 받고 나면 지방질 대사가 원할하지 않은거 같아요. 대부분 콜레스테롤 수치도 올라가고 지방간도 생기고 담당에 콜레스테롤 폴립도 많이 생기는거 같아요. 그리고 2-3kg씩 살도 찌구요. 지금 호르몬제 드시잖아요? 그거랑도 관련이 있어요. 암튼 남들보다 2-3배 열심히 운동해도 살이 잘 안 빠져요. 그러니까 다음번 6개월 후에 검사하기 전까지 살을 2-3kg만 빼보세요. 다 좋아질 거에요.

 

그래요? 호르몬제가 관련이 있군요. 그거 꼭 먹어야 하나요? 제가 음식을 많이 먹거나 그런 편도 아닌데 자꾸 살이 찌는거 같아요.

 

그럼요. 호르몬제는 꼭 드셔야 해요. 호르몬제를 규칙적으로 먹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은 재발율이 30% 이상 차이가 납니다. 살이 찌는 것 같고 몸이 찌뿌뚱하고 컨디션이 안 좋은거 같아도 호르몬제는 무조건 드셔야 해요.

 

, 그럴께요.

근데 선생님은 별일 없으시죠? 얼굴살도 빠지고 좀 피곤해 보이시네요.

 

, 늘 그렇죠. 살이 다 배로 가는거 같아요. ET 아줌마의 특징이죠.

 

비록 암치료는 끝났지만, 그들에게는 치료 후 건강관리를 위한 지침이 필요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재발의 두려움을 몰아내 줄 심리적 지지가 필요하다. 항암치료를 하던 때와는 달리 이들은 많이 건강해져 있고 마음도 많이 차분해졌다. 뭔가 이들을 위한 교육 및 지지프로그램을 제공해 주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와는 또다른 형태로 접근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예쁘게 화장하고 멋지게 차려입고 이제 더 이상 환자가 아닌 채로 나타난 그들을 만나니 생명 에너지가 느껴진다. 유방암 1기든 3기든 병기의 심각성과는 상관없이 그들 모두는 자기 삶의 다시 없는 위기를 이겨내고 새 삶을 꾸려가고 있는 작은 영웅들이니까. 수술한 유방이 조금만 찌릿해도, 폐경 증상으로 몸이 쑤실 때마다 이게 혹시 재발은 아닌지, 6개월에 한번씩 검사를 하고 나면 그 결과를 확인하는 날까지 잠 한숨을 제대로 못자며 마음을 졸이는 반복되는 일상을 꿋꿋하게 잘 견디고 있는 작은 영웅들이니까.

 

그들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빵이랑 커피를 좋아한다는 걸.

그래서 꼭 진료를 보고 나가서 간호사를 통해 빵과 커피를 사서 넣어준다.

짧은 쪽지와 함께.

 

선생님, 오늘 반가왔어요. 제가 치료받는 동안 선생님이 큰 힘이 되었어요. 다른 환자들에게도 그렇게 잘 해주세요. 

    

환자에게서 받는 에너지.

환자가 나에게 주는 마음.

아마 그것이 나를 진료실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런 쪽지를 받고 나면

나의 모든 어려움이 상쇄된다.

 

, 다시 돌쇠의 정신으로, 한주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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