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이제 곧 결혼하는 그녀

슬기엄마 2013. 12. 3. 21:22

 

힘들게 징징거리며 항암치료를 받다가

날 떠난 그들.

'이제 잘 사세요. 다시는 날 만나는 일 없게요'

그렇게 빠이빠이 하면서 그들과 헤어졌었는데

요즘 유방암 클리닉의 운영체계를 일시적으로 조절하고 있는 중이라

2-3년전 그렇게 헤어졌던 환자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유방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마친 그들에게 지난 2-3년의 시간은 어떤 의미로 채워져 있을까?

불현듯 그들을 만나고 나면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감동과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계속 만났으면 그런 생각이 안 들었을텐데 2년이라는 시간적 공백을 두고 만나니 새롭다.

치료 후 2년이라는 시간은

그들을 재발했느냐 아니냐를 두고 한번은 판가름 할 법한 시간이고,

재발하지 않았으면 정상 생활로 돌아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제 더 이상 환자라고 부를 수없이 건강해지고 예뻐지고 당당한 모습이다.

나에게는 그 모습이 '변신'이라고 느껴지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지지부진한 일상을 투쟁해서 얻어낸 산물이리라.

 

 

 

2년 전에 마지막으로 보고 그 후로 본 적이 없으니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차트를 보니

그녀는 항암치료하는 동안 별로 힘들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그녀는 20대 중반.

나이도 젊고 삼중음성 유방암이라 내가 야심차게도 항암치료를 6번 했었다.

보통 기준에 의하면 AC 4번 하면 되는 것을 FAC으로 하여 6번이나 하였다.

 

(원래 위험요인이 높은 유방암 환자에서는 FAC보다 TAC으로 하는게 좋은데, 우리나라에서는 TAC을 거의 잘 안한다. 겨드랑이 림프절이 음성이면 T가 보험이 안되고, 또한 TAC를 하면 호중구 감소성 열이 너무 많이 나기 때문에 백혈구 촉진제를 예방적으로 써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예방적으로 사용하는 백혈구 촉진제는 보험이 안되기 때문에 한번에 20만원이 넘고 10일 정도 사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그 보조 주사제 가격이 200만원이 넘는다. 또한 외국에는 10일동안 매일 맞는게 아니라 한번 맞으면 10일 동안 약효가 지속되는 주사제가 있기 때문에 이 용법을 선호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 제품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래저래 환자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TAC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FAC을 한다.)

 

암튼

기록에 의하면

그녀는 아주 씩씩하게

한번도 울지 않고

치료를 잘 받았다.

머리가 빠지기도 전에 미리 밀고 가발을 샀던 것 같다.

치료 중 합병증도 별로 없었고, 불평도 별로 없었고, 말도 별로 없었다.

 

왜?

 

그녀에게는 대변인이 있었기 때문.

결혼하기로 한 남자친구가 그 역할을 다 해주었다.

모든 질문은 남자친구가 다 했다.

항암치료 중 부작용을 수첩에 기록해 오는 것, 무슨 피부병변이 생기면 사진 찍어 오는 것, 약이 바뀌면 그 약에 대해 공부하고 질문하는 것, 모두 그의 몫이었다. 그는 그녀의 대변인이었다. 그녀는 여왕처럼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가끔 쫑크를 몇마디 주는 것이 전부였다.

 

내가 애써 그녀에게 직접 대답해 보라며 몇가지 질문을 하면 그녀는 '괜찮아요. 다 견딜만해요. 항암이 다 그렇죠 뭐. 저사람이 나보다 훨씬 예민한것 같네요' 그정도 대답을 하며 귀여운 작은 눈으로 눈웃음을 쳤던 게 기억난다.

 

 

항암치료 기간에는 그렇게 분신처럼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다.

남자친구면 더 좋겠지.

그런데 이렇게 치료받는 동안 남자친구 마음이 변하지는 않을까?

 

항암치료로 힘들어 하면서

여자는 자기 성격 추한 모습 다 드러내 보이고

히스테리 부리고

자괴감에 빠져서 상대방 괴롭히고...

충분히 예상되는 시나리오다.

 

남자는 걱정도 된다.

이렇게 항암치료를 하고 나면 아이는 낳을 수 있을까?

결혼했는데 재발하면 어떻게 하지?

부부관계에는 이상이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녀의 남자친구는

그런 미래 따위, 자기에게 닥쳐올 걱정거리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다.

남자친구나 오빠라기 보다는

꼭 엄마처럼 그녀를 보살피는 것 같았다.

 

 

 

낼 모레 외래에 오나보다.

역시 이번에도 남자친구가 블로그에 알람 메시지를 남겼다.

이번주에 외래 갈거니까 잘 봐달라고!

역쉬!

 

 

예의 꼼꼼한 남자친구의 메시지에는

곧 결혼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치료가 끝나고 2년이 지났는데 아직 결혼을 안했다 보다.

 

 

순간 가슴이 울렁한다.

 

 

너무 고마운 사람이다.

아무 관계도 없는 내가 고마울 지경이다.

 

 

사랑이란 뭘까?

 

난 사랑이란 죽음에 직면했을 때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우리 인간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 욕망, 소유욕 이런 모든 감정들을 다 섞어 버린 채

그 중 어떤 것을 나의 사랑으로 선택하여 취하기 쉽다.

죽음에 직면하여

나에게 그는 어떤 의미였는가

나는 그를 사랑하였는가

그는 나를 사랑하였는가

그때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것만도 아닌가보다.

 

그들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뭐라도 선물을 하고 싶다.

그들 사랑은

보통 사랑은 아닌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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