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UCC 대박나세요!

슬기엄마 2013. 10. 25. 15:35



외래 진료 초반부에는

상태가 안정적인 환자들이 많다. 

앞쪽 진료를 할 때는 

수년간 호르몬제 하나로 전이성 유방암이 잘 잘 조절되고 있거나 

항암제 후 허셉틴 하나만 맞고 있거나

독성없이 항암제를 잘 맞고 있거나 하는 

컨디션 좋은 환자들을 

'스피디'하게 진료한다. 


병이 안정적인 그들은

특별한 증상도 없고 아프지도 않기 때문에

나에게 할말도 없다.

자기 먹고 사는 일이 바쁘니까 

자기 일 하는 것에 집중한다. 

나한테는 기대하는 것도 별로 없다. 

외래 일찍 보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사람도 많고

아이들이 학교, 유치원 가는 틈을 이용해 치료를 받고 가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그들은 바쁘다. 


진료 앞 부분에서 한두명 지연되는 것이 

진료 후반부로 가면 한두시간 지연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진료 앞 부분에는  이렇게 컨디션 좋은 환자들이 몰려 있기 마련이다. 




그녀가 유방암을 처음 진단받은 3년전, 수술을 할 수 없는 전이성 유방암으로 진단되었고, 전이된 병의 분포도 매우 넓었다. 그녀는 허옇게 질린 얼굴로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그녀는 슬픈 마음, 속상한 마음, 치료중에 힘들었던 일 그런 것들을 내가 준 항암치료 일지에 빼곡히 기록하였다. 1년 동안. 


수첩이 한장 한장 넘어가고 

그녀는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이제 항암치료일기를 그만 쓰라고 했다.

그녀는 이미 정상적인 생활인의 영역 안에서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휴직했던 직장으로 복귀했고

두 아이의 엄마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언제 직장으로 복귀하는게 좋을까요? 

제가 복귀해도 되는 상태인가요? 

학부모 모임이 있는데 가발을 쓰고 가도 될까요? 

제가 뭔가 더 열심히 아이들 학교일에 참여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우리 애들에게 도움이 될까요? 

장손이라 제사를 더 이상 다른 식구들에게 미룰 수 없을 것 같은데

제가 다시 제사 준비를 담당해도 될까요? 1년에 대여섯번 되는데...


그녀는 삶의 주기를 넘어가야 하는 매 시점에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충고도 하고

모른다고 발뺌도 하고

나는 그녀의 병이 좋아지는 것 자체가 경이로워서 

그녀가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을 다 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마음 속으로는 무조건 다 잘될거라고 얘기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두통이 찾아온 어느날 찍은 MRI 에서 뇌전이가 발견되었다.

감마나이프 치료를 하였다. 

마침 가능한 임상연구가 있어서 다음 항암치료는 임상연구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퍼제타가 들어간 치료군으로 배정받았다. 

뇌전이가 생기기는 했어도 아주 병변이 작았고 증상도 심하지 않았다. 

허셉틴에 퍼제타를 더해 쓰는 치료군이 되었으니 운도 좋았다. 

젤로다 때문에 입이 헐고 손발이 갈라지고 터져서 힘들어 하기는 했지만 용량을 조절하면서 약에 적응하려고 노력하였다.


나는

그녀가

힘든 일이 있어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여러가지 대안과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임상시험 스케줄에 따라 표적치료제를 유지하면서

젤로다를 10주기 넘게 계속 먹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보습제, 스테로이드 로션 바르며 열심히 손발 관리하고, 구내염 오지 말라고 가글 열심히 하고, 

얼굴 거칠어지지 말라고 밤마다 영양 크림으로 피부관리하면서 

일정을 관리하였다. 

힘들면 그만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그녀는 아직 견딜만 하다고, 

표적치료제 단독보다는 항암제를 같이 쓰는게 더 치료적 효과가 높을 것 같다며

독성 견딜 수 있을 때까지 항암치료를 유지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뇌전이 후 그녀는 나와 별로 말하고 싶어하지 않아했다.

상심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지하게 애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당신이 시키는대로 치료했는데 왜 나빠지는거냐'고 묻고 싶는 것 같았다. 그래도 겉으로는 내가 묻는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 잘하고 약 잘 먹고 시키는 대로 일정을 잘 따라오고 있었다. 약간 서먹한 채로. 

 

오전 진료 세번째. 

원래 그녀는 그동안 별일 없었다고, 항암제 독성도 없었다고 간략하게 보고한 후 내 설명을 듣고 나가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오늘은 내 설명이 다 끝났는대도 뭉기적거리고 나가지 않는다. 자기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파일 하나를 열더니 내 앞에 놓는다. 나보고 보라는 얘기다.    


지난 3년간 

중학교에서 왕따로 힘들어했던 아들이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까지의 성장과정을 

음악과 사연과 자기의 사진을 합성하여 만든 UCC였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항암치료일기에 큰 아들에 대한 걱정이 간간히 등장했던 것이 생각난다.


엄마가 전이성 유방암을 진단받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투쟁하는 동안

아들은 왕따가 되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아들에게 더 미안하고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저도 힘들고

아들도 힘들었던 시간이에요.

그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 함께 노력한 결과물이에요. 

서울시에서 개최한 청소년 UCC 컨테스트 본선에 진출했어요. 



UCC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함께 수업듣고

좋아하는 노래를 정하고

UCC에 넣을 사진을 고르고

컴퓨터 그래픽을 배워 화면을 배치하고...

그 모든 과정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UCC 사진을 보니 

지난 3년간 아들이 많이 컸다.

애기같은 젖살이 남아있는 앳된 중학생이 

3년동안 키가 30cm 가 넘게 큰 거무죽죽한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엄마의 사랑으로

왕따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한번 왕따가 되면 그 굴레를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들은 그 시간을 견디고 극복했다. 이제 자신감을 되찾고 고등학교 생활도 잘 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 또한 대한민국의 엄마인지라, 

이제 아들이 그동안 공부 못해 떨어졌던 성적을 만회해서 좋은 대학을 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웃는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걸 잘 아니까.  

  


1차 치료 후 병이 나빠졌을 때 

자기 몸이 걱정되서가 아니라

아이들 때문에, 가족들 때문에, 눈물이 났다고 한다. 

내가 죽으면, 내가 나빠지면, 누가 이들을 돌볼까 걱정이 됬다고 한다.

아이들도 잘 크고 있고 

엄마 병도 좋아지고 있다.

당분간 이런 걱정하지 말고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다음 외래 때에는 UCC 발표 소식을 들을 수 있겠지.

UCC 대박나세요!


아들을 위해 책이라도 한권 선물할까 보다.

제목은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쉬웠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