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사실 '쿨'할 수 없는 일입니다

슬기엄마 2013. 9. 15. 14:09


저는

내과 의사이면서도

암 환자가 아니면

이제 왠만한 진료에 자신이 없어진 거 같습니다. 

똑같이 허리가 아프다고 해도

암환자의 요통에 접근하는 나의 자세와

암이 없는 환자의 요통에 접근하는 나의 자세는 다릅니다.


암환자를 대할 때는 

기본적으로 그에게는 '암'이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가짐을 다르게 합니다. 


저는 대부분 외래 전날 

다음 날 오는 환자들의 상태를 리뷰하기 때문에

사진을 미리 다 보고 들어갑니다. 

공식 판독이 나와있는 경우도 있고

당일날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판독과는 무관하게 제가 직접 사진을 보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 많기 때문입니다. 

환자 이름이나 얼굴만 봐서는 그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CT를 보면 

비로소 그가 누군지 알겠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사진을 미리 보고 뭔가 결정을 내려놓고 외래를 들어가지만

막상 외래 시간에 다시 사진을 보고, 혹은 환자를 문진하고 나서, 생각이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진 상 큰 변화는 없는데 뭔가를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

혹은 사진 상 뭔가 나빠지는 분위기였는데 막상 만나면 컨디션이 좋은 환자들.

판단이 바뀌게 됩니다. 


뭔가 새로운 증상이 나와서 재발이 아닐까 의심하여 사진을 찍었는데 

막상 사진에서 별 이상이 없게 나오면 정말 마음이 후련하고 기쁩니다.

물론 환자가 의사인 나보다 수백만배 마음을 졸이면서 결과를 기다리겠지만

치료를 하는 의사 입장에서도 사진을 띄울 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게 아니라고 스스로 매일 다짐하지만 

막상 환자가 나빠지면 

혹시 그게 내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환자들은 

병이 좋아지면 선생님 덕이라며 저에게 감사하다고 말하지만

나빠지면 그것도 선생님 탓이라며 나를 책망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 표준치료를 한 것 뿐입니다. 

교과서에서 하란 대로 한 것 뿐이라고.

해당 환자가 들어갈 수 있는 임상연구가 있으면 임상연구를 권합니다. 

암 치료는 임상연구를 통해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표준치료를 했지만 나빠진 것라면 내가 마음쓰고 괴로워 할 이유는 없습니다.

표준대로 했건만 암세포가 약제에 반응하지 않은 것이고,

누구나, 언제나 치료제에 다 반응하는 건 아니니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러나 환자도 인간인 것처럼, 의사도 인간입니다. 

환자가 나빠졌는데 어찌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검사를 반복하고 결과를 알게 되는 과정은 참으로 긴장적이고 어려운 시간입니다. 


환자와의 관계가 오래되면 서로 성격도 어느 정도 알게 됩니다. 

어떤 환자는 병이 좀 나빠졌다고 해도 별로 놀라지 않고 그냥 묵묵히 바꾼 약으로 치료를 받고 갑니다. 

어떤 환자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힘들어 합니다. 다 지나간 옛날 일을 가지고 이것저것 따지기 시작합니다.

의사 입장에서는 

아무 말 없이 내 말을 따르고 조용히 치료를 받는 환자가 편하고 좋지만

결과를 부인하고, 나한테 꼬장부리고, 난리치는 환자들, 그렇지만 이런 반응이 당연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저도 가까운 사람이 암으로 진단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순간 너무나 당황스럽고 

감정적으로 큰 충격을 받습니다. 

내일 외래 준비를 마저 할려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내일 오시게 될 백명이 넘는 환자 모두가 다 그런 충격을 거친 사람들, 

혹은 지금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징한 병입니다. 


사실

우리 쿨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쿨한게 가식일지도 모릅니다. 

제 환자 중에도 몇년간 안정적이고 씩씩하게 잘 사시는 듯 했지만

다시 병이 나빠지는 일을 겪게 되면 

년간의 내공이 순식간에 무너지며

더 힘들어 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을 달래는게 더 힘듭니다. 


그런 마음을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냉정하게 말합니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없는 과정이요, 그 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는 문제이니 

빨리 정신 차리시라고,

나를 믿고 빨리 치료를 시작하자고

비록 재발이 된건 안타깝고 억울할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는 거라고.

최선을 다해 해 보는 거라고.

비록 내가 1등으로 결승선에 도착하지는 못하겠지만

나의 페이스대로 이 길을 걷고 달려서 내 방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말거라고.


무섭게 다그쳐서 치료를 시작하지만


마음 속으로 저에게 묻습니다.


너도 그렇게 할 수 있겠어?


저도 자신없습니다.


저도 그런 수준인데

외래에서 환자들에게 호통을 칩니다.

일희일비 하지 말라고

우린 긴 싸움을 하는 거라고.

제가 그렇게 말해서 섭섭하셨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의사는 그렇게 말해야 하는 존재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