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스마일 어게인

슬기엄마 2013. 8. 1. 21:16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나를 만나는 환자들

혹은 항암치료를 먼저 하고 수술을 하는게 나을 것 같다는 외과선생님 말씀을 듣고 '수술도 못할 정도로 나빠졌나' 싶어 낙담한 채 나를 만나는 환자들


나는 매일 

그렇게 두려움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는 

유방암 환자들을 만난다. 

무슨 말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지지할 수 있을까?

무엇으로 그들의 불안을 달래줄 수 있을까?


난생 처음 암을 진단받은 사람은 그 누구도 흔연스러울 수 없다.

90이 넘어 폐암을 진단받으신 나의 외할머니.

70이 넘어서까지 당신이 손수 장부 정리하고 당신이 직접 뛰어 다니며 어음과 부도를 막으며 사업을 하셨던

우리 가족의 최고 대장부 외할머니도 

큰아들을 먼저 보내고 난 후 

내가 죽어야 하는데 죽어야 하는데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지만

폐암 뇌전이를 진단받던 그 때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 죽고 싶은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치료받고 살고 싶은 가보다. 죽는게 무섭네.'


암진단을 받은 환자는 

놀라고 두렵고 분노하고 슬픈 그 온갖 복잡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누구도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힘내라는 말 한마디에도 환자는 짜증이 난다.

이 세상 사람들은 나만 빼고 다 행복한 것 같다.

날씨가 좋아도 슬프다. 

안 그래도 삶이 팍팍한데, 먹고 살기 힘든데, 암이라니...

그런 환자를 지켜보는 가족도 힘들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어떻게 격려해야 할지

무엇으로 그를 도와야 할지


그렇게 혼란스러운 감정과 상실된 삶의 의미를 채 부여잡기도 전에 치료가 시작된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몸과 마음의 고통의 시간이 흐른다. 

스스로 애를 쓰고 의미를 부여한다.

내 인생에 이런 시련이 찾아온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위기를 잘 극복하여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러나 

암 진단의 충격보다

정작 환자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일차적인 치료를 마친 후 남겨진 무한정한 일상이다. 

이제는 나의 병에 대해 무덤덤해진 가족들

치료 이전의 나로 돌아가기에 허약해진 몸과 마음

다시 일터로 돌아가기엔 너무 경쟁적인 직장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을 수 없다.


허전하게 비어버린 나의 한쪽 가슴을 볼 때마다, 

매일 몸을 씻을 때마다

새삼 환자가 된다.

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의사는 완치가 되었다고 하지만 

환자는 알고 있다. 

재발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거라는 걸. 

잘 견디고 있는 줄 알았는데

순간 몰려드는 두려움, 외로움, 억울함. 

그런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다. 





나 때문의 겨우 이루어 놓은 우리 가족의 안정이 깨지면 안된다는 부담으로,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기 힘든 엄마 유방암 환자. 

치료 후 나의 직업인 웃음치료사를 포기하고, 가정으로 복귀했지만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다. 

알수없는 무력감, 각종 폐경기 증상으로 몸은 나날히 힘들고 우울감이 더해간다. 

 


가족과 아내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자기 감정 하나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적당히 나이를 먹어가는 40대 후반의 남편

도대체 아내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 

안 그래도 썰렁해진 아내와의 관계, 치료 후 더욱 더 멀어져 가는 것 같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 오로지 대입에 매진할 것을 요구하는 세상의 잣대를 피해 

춤추는 나를 꿈꾸며 비상을 준비하는 고등학생 딸.

그런 자신의 꿈과 내면을 내비칠 틈도 없이 엄마는 유방암 치료를 시작했다. 

엄마의 곁을 맴돌기만 하는 아빠. 

치료가 끝난 엄마는 이제 더 이상 바쁘다바쁘다를 외치며 활기있게 살았던 예전의 멋진 엄마가 아니다.다. 

매사가 우울해져 버린 우리집.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아직 사랑이 뭔지도 잘 모르는데 

남은 한쪽 가슴으로 삶을 사랑하며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 아가씨 유방암 환자.

이것이 사랑인가 처음 느끼게 해 준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가 곁에 있지 않으면 너무나 허전하고 외롭고 슬픈데

그가 곁에 있으면 부담스럽고 미안하고 화가 난다.

내 모습이 더 초라하게 느껴진다. 

아무말 없이 그를 떠나고 싶다. 

마음아픈 사랑은 하고 싶지 않다.


http://www.youtube.com/watch?v=EfWWQDQykoQ (스마일 어게인 예고편)


이런 사람들이 등장하는 영화 '스마일 어게인'. 영화 간첩점쟁이들연출에 참여했던 박유영 감독과 함께 영화사 울림’ 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내가 진료실에서 매일 만나는 우리 환자와 그 가족이다.

나는 병원 진료실에서 아주 짧은 순간 그들을 만나지만

그들이 병원이 아닌 다른 삶의 공간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어떻게 이겨내려고 노력하는지 잘 모른다.  


암은 진단받고 수술하고 치료하면 끝나는 한순간의 병이 아니다.

우리 삶 내면의 질서를 교란하고

자아를 좀 먹고

관계를 위협하는

그런 사건으로 남아있다.

암을 진단받고 치료받는 것은 

바람처럼 지나가는 위기의 한 순간이 아니라

한번 내 인생에 자리를 잡으면 나갈 줄도 모르고 이일 저일에 끼어들며

나의 정체성을 위협한다.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아주 유명하지는 않다. 

영화의 스토리도 아주 특별하지 않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너무나 평범하고 남루한 우리의 일상 그 자체이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조차 평범한 나도 실천할 수 있을 법한 해법을 보여주는 

특별하지 않은 영화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나면 어쩔 수 없는 눈물이 난다. 

그리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고 비루하게 사랑을 나누는 이벤트를 함께 나눔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이 영화의 시사회가 

8월 6일 화요일 오후 5시 30분 

삼성서울병원 본관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열린다.

무료. 누구나 가서 공짜로 볼 수 있다.

나는 줄거리를 엮고 대본을 쓰는 과정에 참여하였다. 

우리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이 영화가 널리 홍보되었으면 좋겠다. 


환자들을 위한 영화라기 보다는

암환자의 가족들

암환자의 친구들이 보았으면 하는 영화이다. 


영화는 DVD 로도 만들어져 병원별로 배포될 예정이라고 한다.

시사회를 보지 못했지만 관심있는 사람은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 02-3410-6617 로 연락하시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