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최선의 노력이란...

슬기엄마 2013. 7. 27. 13:59


수술 후 허셉틴 치료가 거의 끝나가는 그녀.

원래 내 환자는 아니다.

출산 휴가 중이신 선생님을 대신해서 당분간만 내가 진료하고 있다.


허셉틴 치료 자체는 별로 합병증이나 부작용이 없기 때문에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특별히 설명하거나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없어서

별 대화없이 외래 진료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개는 그 전에 받은 항암치료의 후유증 때문에 힘든 문제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잘 지내신다.

치료 경력도 꽤 되시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알아서 몸의 회복을 위해 애를 쓰기 때문에 의사에게 별로 기대하는 것 없이 알아서 잘 살아가신다.


그녀도 그랬다.

그녀를 진료한 건 몇번 안되고

지금 당장 내가 치료방침을 결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건성건성 허셉틴 처방하고 안부를 묻는 짧은 진료를 보곤 했다. 



잘 지내시죠?

요즘은 치료 합병증이 남아있는 건 없나요?  


네.

이것저것 불편한게 있지만 나름 애 쓰고 있어요.


예쁘장한 그녀는 쿨 하게 대답하며 웃는다.


뭐가 불편한가요?


음....


할말이 많은지 잠시 망설인다. 


요즘은 충동적으로 욱 하는거 같아요.

오늘도 별일 아닌 일로 큰 애랑 한판 하고 나왔어요.


항암치료 받은 것 때문에 난소기능이 억제된 상태라 폐경기 증상이 아직 남아있나 보네요.

기분 변화가 심하고 그런가요?


요즘 심해졌어요.

오늘은 나도 모르게 애를 때린거 있죠?

애를 때려놓고 나도 깜짝 놀랐어요. 이게 애를 혼낼 일인가 싶어서요.


아이가 엄마 상태를 이해해줬으면 좋겠네요...


잠시 서로가 침묵...


정서적인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결국 시간이 가면 다 좋아지겠지만 그날이 올때까지 애 쓸만큼은 쓰면서 견뎌야 되요.

다 알고 계시죠?


네.


그래서 본인은 뭘 하고 계신가요?


인형 만드는 것도 배우러 다녔구요

일주일에 두번씩 비즈 공예도 했어요.

최근에 그림 그리기도 시작했고

일주일에 한번씩 어머니 합창단도 나가고 있어요.

그리고 선이랑 요가를 같이 하는 프로그램도 신청했어요. 


우와, 하는게 너무 많네요. 시간이 되나요?


그냥 되는대로 해보고 있어요.

뭔가 다른 일에 집중하는게 필요한거 같아서요.

그런데 최근에 기분변화가 심한 건 어떻게 안되네요. 

그래서 선이랑 요가를 신청했어요. 그런 걸 하면 자기 조절능력이 좀 생길까 싶어서요. 


최선을 다하고 계시군요.


그녀는 자신만의 노력을 알아주는 내가 고마워하는 눈치다. 


근데 쉽지 않죠? 

기운 내세요.

결국엔 다 좋아질거에요.

지금 배운거 꼭 누군가를 위해 쓰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지금 힘들었던 시간이 나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돌아오시길 바래요.

그렇게 될거에요.


오늘 집에 가셔서 아이 마음을 좀 풀어주세요.

솔직하게 엄마 상태를 고백하면 아이도 이해해줄거에요.

초등학교 6학년이면 다 컸으니까요.


그럴게요.

선생님 고마워요.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환자를 보고 있으니

그저 지나가는 말 몇마디로 그녀를 격려하는게 무안하다.


삶은

끊임없는 

투쟁이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아무말없이 처방한 대로 치료를 받고 가는 '착한' 환자들은

이래저래 말이 많고 진료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다른 환자들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더 말을 못하고 그냥 돌아가신다. 

마음 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 하소연하고 싶은 사연들이 많을텐데

그런 마음을 충분히 들어주지 못하고

격려해주기 힘든

지금의 진료 환경이 원망스럽다. 


가끔이라도 안부를 묻고

마음의 화이팅을 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