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외래를 찾아온 40대 중반의 여자 환자.
한달전 담당 주치의 외래를 다녀갔고,
7월초에 종합검사도 다 잡혀있는데
오늘같은 토요일은 일반 진료라 주치의를 만날 수 없다는 것도 알면서
외래 진료에 오셨다.
5년 전에 위암을 진단받았을 때 병이 많이 진행된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을 듣고 수술을 했는데
수술 후 조직검사 결과를 보니
복막과 위 주변 장기도 침범이 있어 처음부터 4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암치료를 하였다.
일단 보이는 병은 다 제거했고 항암치료도 할만큼 했다.
그러나 2년이 채 안되었는데 난소에서 재발하였다.
난소 제거술을 하고
또 항암치료를 하였다.
난소 수술 부위가 국소적으로 또 재발하여
방사선 치료를 하였다.
보통의 4기 위암 환자들이 항암치료를 주로 받는 것에 비해
재발을 했는데도 수술과 방사선치료를 적극적으로 결합하여 치료하였고
다행히 경과가 좋다.
마지막 치료를 받은지 1년 반이 지나가고 있는데 영상검사에서 눈에 보이는 병 없이 잘 지나가고 있다.
이 정도로 환자를 파악하고 진료를 보았다.
원래 위 수술하고 나서는 공복감이 금방 생겨서 간식을 많이 먹는 편이었는데요
2주 전부터 간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고
그러다보니 먹는 양이 줄어들고
몸이 마르는 거 같고
기운이 너무 없어요.
어제는 시내에 나갔다가 기운이 없어서 쓰러질 뻔 했어요.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은 그런 마음까지 들었어요.
그래서 왔습니다.
몸무게가 줄었나요?
네.
1달전에 비해 몸무게가 얼마나 줄은거죠?
0.5kg - 1kg 정도 감소한거 같아요.
잉?
그건 똥한번 잘 싸면 왔다갔다하는 무게 아닌가?
그걸 감소했다고 보는게 맞는 건가?
내심 이해가 되지 않아 환자 말을 더 들어봐야겠다.
별로 많이 감소한 것 같지는 않은데요. 불편한 다른 증상이 더 있으신가요?
옷을 벗고 보면 몸이 확실히 많이 말랐어요. 상체가 많이 야윈거 같아요.
제가 처음부터 환자를 봤던 주치의가 아니라서 그건 잘 모르겠군요.
지난번 검사한 지가 얼마 안되서
지금 당장 어떤 검사를 해보자고 말씀드리기가 애매한게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지금 많이 힘드신가요?
아주 많이 힘든 건 아니에요.
제 생각에는 지금 당장 어떤 검사를 해도 우리 눈에 띄는 어떤 변화를 발견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2주에서 4주 정도 음식 섭취를 규칙적으로, 적극적으로 노력하면서 영양상태를 개선해 보고, 지금의 힘없는 증상이나 살빠지는 증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한번 경과관찰을 해보면 어떨까요?
저도 그동안 받을 만큼 항암치료도 받고 수술도 두번받고 방사선 치료도 하면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설령 재발되었다 하더라도 이제 더 이상 치료는 받고 싶지 않아요. 별로 안 아프니까 병원 생활 안하고 가족들하고 잘 지내고 싶어요.
네...
증상이 해결되지 않으면 한달 후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뵙는게 어떤 검사나 치료 결정을 하는데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제가 주치의가 아니라서 결정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도 될까요?
네...
근데 지금 이 느낌이 예전에 재발할 때랑 똑같아서 불안해요.
아, 환자는 불안해서 왔구나.
한편으로는 재발이 되었다 해도 더 이상 치료를 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재발했을까봐 불안했던 것이다.
그 느낌.
병 진행의 초기에
환자들이 말하는 어떤 느낌들이
나중에 보면 정말 질병진행을 의미하는 어떤 징조인 경우들이 가끔 있다.
환자가 말하는 그대로 narration 을 적어두는 편인데.
(외래를 보다보면 시간이 없기 때문에 환자가 말하는 chief complain 을 정리하지 못하고 환자 말 그대로 적게 된다. 눈으로는 환자 얼굴을 쳐다보면서 손으로는 속기사처럼 환자가 말하는 걸 받아 적는다)
그 순간에 사진을 찍어보면 아무것도 없었는데,
두세달 지나서 다시 CT를 찍어보면 그제서야 병이 보이기 시작하고
환자가 했던 말과 연관이 된다.
병이 저렇게 생길려고 환자에게 증상이 그렇게 나타난 거였구나...
환자가 괜히 그런 말을 한게 아니구나...
그래서 환자들이 뭔가 불편하다는 증상을 얘기할 때
그래요? 그럼 검사해 보죠.
그렇게 말하지 않고
괜찮아요. 좀 견뎌 봅시다.
그렇게 말할 수 있으려면
자기 직관에 대한 상당한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그런 자신감이 없으면
환자가 뭔가 증상을 호소할 때마다 과다한 검사를 하게 되고
예민한 환자의 말에 휘둘리는 의사가 될 수 있다.
자신감이 너무 넘치면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필요한 검사를 하지 않고 넘어가게 되는수가 있다.
사실 그때 그때 검사를 해버리는게 속은 편하다.
혹여 나중에 생길 수도 있는 책임 문제도 피할 수 있고
그 사이에서 줄타기.
조마조마하다.
오늘 환자의 느낌이 아무것도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냥 환자가 예민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기를 바란다.
'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 주치의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생 종양학 강의를 준비하며 (6) | 2013.06.09 |
---|---|
사라진 환자 (0) | 2013.06.07 |
Genomics 와 Hospice (4) | 2013.05.31 |
원발미상암, 진단명이 뭐 그래요? (0) | 2013.05.30 |
K 선생님께 (6) | 2013.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