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강철여인이 있다.
그녀는 최초 유방암을 진단받고 치료했다가 7년만에 폐로 재발했는데
재발되어 치료한 지 6년째다.
그동안에는 폐에만 병이 있었는데 작년 말에 뇌로도 전이가 되었다.
자꾸 몸이 떨리는 증상이 있었는데 그게 뇌 병변에 의한 경기로 나타난 증상이었다는 사실을 MRI를 찍어보고서야 알았다. 한달 이상 증상이 있었는데 내가 그 증상이 경기인 줄 알아채지 못해서 검사를 좀 늦게 하게 되었다. 내가 사실 뇌신경학적 검사에 좀 약한 편이다.
(한때 망치로 환자들 무릎, 팔꿈치 열심히 두들기고, 발바닥도 열심히 긁어보고, papiledema 를 본답시고 opthalmospope 도 살까 생각도 했었다. 어느새 그런 신체검사는 열심히 잘 안하는 사람이 되어 간다. 청진하고 장음 들어보고 좀 만져보고 그 정도나 겨우 할까? 암튼 내가 젤 못하는게 신경학적 검사이다보니, 이제 아예 신경학적 검사를 좀 해달라고 신경과에 도움을 요청하는 형편이 되었다.)
물론 이 환자에서 뇌전이를 한두주 먼저 알아내고 치료를 시작했다 해서 지금과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가 최소한 답답한 시간은 없었겠지... 마음 속으로 미안했다.
이 강철여인은 항암제 반응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어도, 독성도 별로 없었다. 환자가 잘 견디는 편이었다. 병이 나빠지는 속도를 지연시키는 효과는 확실히 있는 것 같았다. 한가지 약제를 선택하면 대개 10개월 이상 같은 약을 유지할 수 있었다. 환자 의지도 강했지만, 몸도 강한 것 같았다.
그러나 뇌전이 이후 생기기 시작한 경기가 완전히 컨트롤 되지 않고 쓸만한 항암제도 거의 다 쓴 상태라 항암치료를 서두르지 않고 뇌 증상이 안정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지난번, 지지난번 외래 때 그녀는 처음으로 나에게 눈물을 보이고, 자기 힘든 마음을 나에게 노출하였다. 그녀는 병든 몸이라도 이끌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확실했다.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 살아야 하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 초등학교 5학년 밖에 안되는 막내 아들이 대학에 갈 때까지 그녀는 꼭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 이유 하나로 그녀는 버텼다. 절대로 힘들다는 말을 안했다.
그런 그녀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나보다 백만배 강한 그녀를 내가 어떻게 위로하겠는가. 나는 그냥 좀 쉬자고 했다.
쉬면 좀 기운이 날거에요.
기운이 나면 그때 다시 치료에 대해 상의합시다.
그렇게 헤어졌는데
지난 주 신경외과로 입원하였다. 경기가 조절이 안되서 몸이 많이 떨렸나보다. 경기 때문에 응급실로 와서 신경외과로 입원하였다. 감마나이프 후유증으로 뇌부종이 심해진 것 같다. 지난 금요일에 협진이 났는데 주말 내내 그녀에게 가볼까 말까 고민하였다. 그녀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녀가 힘들어하면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주말이라는 핑게로 그녀에게 가지 않았다가 오늘 '어쩔 수 없이' 협진을 보러 갔다.
몸놀림이 가벼워 보인다.
뇌부종을 조절하는 스테로이드와 만니톨 덕에 그녀의 어둔했던 몸놀림이 많이 좋아졌다.
최근 뵌 모습 중에 젤 나아 보여요.
괜찮으세요?
네! 좋아요!
인제 안 울어요?
에이, 선생님. 그때만 잠깐 그런 거에요.
저도 가끔은 그럴 때가 있지만, 이제 괜찮아요.
쑥쓰럽게 왜 그러세요.
그녀가 가벼운 몸짓, 밝은 표정으로 나에게 반격한다.
월요일 아침에 만난 첫 환자가 그렇게 밝은 표정으로 날 맞아주니,
주말 내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앉아있던 귀신들이 다 도망간 것 같다.
역시 강철여인, 나에게 힘을 준다.
의사를 힘 나게 하는 건
역시 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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