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경상도 사는 나랑 동갑내기 환자.
항상 남편이 같이 온다.
환자는 갑작스럽게 생긴 복시로 뇌전이를 진단받았다.
수술 후 치료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뇌전이를 진단받고 큰 상실감에 빠졌다. 뇌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 어지럽고 너무 기운이 떨어져 병원에 내내 입원해 있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그녀가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내 마음도 너무않좋았다. 매일 회진하는 동안 서로 마음의 불편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만큼 힘든 재발의 치료가 시작되었다.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하였고 오늘은 3주기를 시작하는 날.
그녀는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이렇게 프린트가 된 치료 일지를 내 놓으신다.
첫칸에는 날짜, 둘째칸에는 증상, 셋째칸에는 자기 컨디션, 넷째 칸에는 식사량, 마지막 다섯째 칸에는 몸무게를 기록할 수 있게 표를 작성하였다.
표 마지막에는 나에게 하고 싶은 질문 세가지가 적혀있다.
환자가 자기 수첩에 매일 매일 기록한 것을
서울 병원으로 진료받으러 오기 전에 남편이 이렇게 워드로 작업을 해서 내기 일목요연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를 해 주셨다고 한다.
지난 주기까지는 남편이 기록을 해 오셨는데
이번 주기부터는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기록하기 시작했나 보다.
내가 이것저것 설명을 하자 자기 수첩에 메모를 하신다.
아직 한쪽 눈은 완벽히 떠지지 않는다. 병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는 다음에 뇌 MRI와 복부 CT를 촬영하여 평가하기로 하였다. 몸은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도 마음은 많이 씩씩해졌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의 증상을 자기가 말 하지도 못하였다. 자꾸 울먹거렸었다. 그러던 그녀가 많이 용감해지고 자신의 병에,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직접 설명하고 나에게 질문을 한다.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기 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의사들은 진료실을 들어선 환자들이 수첩에 뭔가를 잔쯕 적어오면 일단 경계를 한다. 그런 환자들의 세세한 질문에 대해 답을 하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렇게 질문을 미리 준비할 정도의 성격이라면 왠만큼 설명을 해도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면 다시 질문을 해서 자기가 이해할 때까지 캐묻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때론 의사의 설명이 자신의 상황이랑 잘 맞지 않음을 지적하고, 의사도 자꾸 말을 하다보면 실수를 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그러나
나는 수첩에 일지를 적어오시는 것을 적극 추천하는 편이다.
아마 젊은 유방암 환자가 많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환자가 자기 병과 자기 몸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치료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믿는 편이다. 한두번 치료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긴 여정을 동반자처럼 같이 걸어가야 한다.
약제를 정하고 검사를 처방하는 것은 나지만
그 과정에서 환자가 경험하는 증상, 좋아지는 증상을 나에게 소상히 말해주는 것은 임상적인 경과를 판단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늘 문제는 시간이지만 말이다.
환자는 여러가지 불편한 증상이 있어서
지난 번에 내가 이것 저것 약을 많이 처방했는데
본인이 나의 처방약을 먹어보면서
부작용이 심한 약은 어떻게 줄였고,
어떤 약은 많이 도움이 되었는지 나에게 잘 설명해주었다.
그런 피드백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된다.
나의 처방과 진단이 항상 100 퍼센트 맞지 않기 떄문이다.
나의 심증을 확고히 하겠다는 이유로 검사를 너무 많이 하는 것도 환자에게 좋지 않다.
난 그래서 서둘러 증상별로 검사를 하기보다는 짧은 기간 동안 이나마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이후 변화된 반응을 살펴보고 그래도 설명이 안되면 그 다음에 검사를 하는 편이다.
오늘 만난 환자는
이제 자신의 병에 직면하고
열심히 치료받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게 된 것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했다.
이렇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치료를 받고 노력하는데
다음번 CT 를 찍고 결과를 볼 때까지 그녀는 얼마나 마음을 졸일까?
나도 마음이 떨린다.
나는 진료의 표준에 맞게 처방을 하였으나 그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조마조마하게 3주를 지내고 만나야 한다.
최선을 다해 치료를 받고 노력하는 환자들의 모습을 보며
그 누구의 삶도 숭고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은 의무기록을 보다 꼼꼼히 정리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허투루 보고 넘겨버린 것은 없는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점검하며
의무기록을 대대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것만이
최선을 다하는 환자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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