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 초진
제가 처음 본 환자인데
그냥 원래 치료받던 곳에서 계속 치료받으세요.
우리병원 오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환자가 가지고 온 진료 기록을 보면
그 의사가 어떤 의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치료 과정을 검토해 보고,
나로서도 다른 이견이 없을 때,
공연히 병원을 옮기는 것은 환자에게 이득이 없으니
자신을 꾸준히 진료한 원래 의사에게 계속 치료받는게 좋다고 권합니다.
환자를 위해 그 사람만큼 오래 고민한 사람 없으니까
그를 믿으라구요.
초진이니까, 그날 외래 진료의 제일 마지막에 순서를 잡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음 환자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면담하기가 어려워서 나 스스로 마음이 초조해집니다.
그래서 처음 온 환자를 많이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지만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진료할 환자가 아니지만 소상히 설명합니다.
굳이 우리병원을 찾아온 환자에게
왜 다시 돌아가라고 하는지 설명 드리려면
환자의 병 상태에 대해서도 소상히 설명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환자들이 제 설명을 듣고 이해하셨습니다.
제 환자 중의 누군가도, 제 설명에 이해가 안되거나 다른 대안을 찾아 다른 병원의 의사를 만나고 오신 분들도 있습니다. 다른 병원 갔다왔다고 쑥쓰럽게 고백하십니다.
제 3자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은 환자의 권리입니다.
전 섭섭하지 않아요.
다만 좀 부끄럽습니다.
내 설명에 부족함이 많았구나 싶어서요.
환자와 의사 사이에도 인연이라는게 있는 것 같습니다.
인연이 잘 맞아야 치료 궁합도 잘 맞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수술하고 항암치료하고 방사선치료 하고, 그렇게 딱 스케줄이 정해져 있는 치료라면 상관없습니다.
서울 사람 아니어도, 한국에 가족이 없어도
꾹 참고 10개월 버티면서 치료받으면 됩니다.
그런데 전이성 유방암은 언제까지 이 치료가 지속될지 지금으로서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저는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병원을 찾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서 치료받는게
더 좋은 거라고 설명합니다.
너무 멀리 있는 병원을 다니면
몸도 힘들고
돈도 많이 들고
힘들 때 제대로 조치받기도 힘들고 그렇기 때문입니다.
환자 안색을 살피고 눈을 맞춥니다.
그리고 말씀드립니다.
이제까지 치료 잘 받으신거 같아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하시면 될거 같습니다.
지금 선생님이 잘 해주셨네요. 전 그만큼 못할거 같아요.
제가 확신을 갖고 설명드리면 제 말씀을 믿고 돌아가십니다.
아마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오신 것 같습니다.
오늘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에서 오신 분, 내일 다시 스페인으로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선생님이 치료 잘 해주신것 같고, 쓰실려고 했던 약도 제가 보기엔 최고의 조합입니다.
저도 그렇게 쓸거 같아요.
항암치료는 몇 개월 열심히 받는다고 끝나는게 아니니, 가족과 함께 지내며 치료받는게 환자에게 좋을 거 같아요. 병하고 싸워 이기려면 가족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한참을 설명하니 환자가 비로소 이해하셨습니다.
돌아갈 길이 험란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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