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2009 내가 쓴 책

수현 5. 항암치료 2. 열나면 병원에 오세요

슬기엄마 2011. 2. 27. 10:52

열나면 병원에 오세요

 

보통 열이 난다는 건 우리 몸에 뭔가 이상이 생겨서, 자기 면역체계를 가동하여 그 이상을 해결하려고 싸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이다. 무슨 균이 들어오면 내 몸의 백혈구가 그 균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열이 날 수 있다. 그러므로 열이 나면 어디서 기원했는지, 열의 원인을 찾는게 우선이다. 일단 백혈구가 자기 힘으로 싸우고 있는 셈이니, 열이 나게 만드는 원발 병소를 찾아 항생제등의 치료를 더함으로써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

항암치료를 처음 받는 환자에게 의사들이 가장 중요하게, 꼭 당부하는 말은 열나면 지체말고 응급실로 오시라는 것이다. 항암치료를 하는 중간에 열이 나면 바로 그 시기가 내 몸의 면역기능이 최소화되고 백혈구가 거의 없어 외부의 균과 싸울 군사가 거의 없는 기간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게 필요하고, 만약 백혈구 감소증이 있다면 적극적인 항생제 치료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암치료 중에 열이 나는 환자를 진료할 때 의사가 제일 확인하는 것은 피검사를 하여 백혈구 감소증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이다. 백혈구 감소증이 없으면 일단 아주 급한 일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교과서에는 항암치료 중 백혈구 감소증을 동반한 열이 발생하면 아주 신속하게 항생제를 투여하라고 되어 있다. 일반적인 경우에서 항생제를 한두시간 일찍 쓰고 말고의 여부가 환자가 호전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백혈구 감소증, 즉 총백혈구가 천개 이하일 때, 혹은 백혈구 중에서도 면역기능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호중구가 총 500개가 되지 않으면 그 결과를 아는 순간부터 2시간 이내에 항생제를 투여하라고 되어 있다. 순식간에 패혈성 쇼크가 동반되면서 환자의 상태가 급격하게 위중한 상황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백혈구 감소증은 없는데 열이 난다면, 그렇게 다급한 상황은 아니다. 서둘러 항생제를 투여하기보다는 열이 나는 원인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백혈구 감소증이 없는 상태라면, 일반 열나는 환자를 볼 때와 같은 방식으로 진료해도 상관없겠다.

피검사를 통해 나타나는 백혈구 수치 이외에도 중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열이 나는 순간 환자의 임상적인 양상이다.

열이 나면서 환자의 컨디션이 뚝 떨어지고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건 백발백중 몸에 뭔가 심각한 감염이 동반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럴 때 나는 환자가 의사에게 저는 좀 신경써서 잘 봐 주세요라며 싸인을 보내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객관적으로 백혈구 수치가 아주 낮고 열이 펄펄 나는데 환자에게 가보면 그렇게 많이 힘들어하지 않는 때도 있다. 백혈구가 1000개 이하로 없을 때는 감염을 일으킬만한 원인이 전혀 없어도 열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항생제를 빨리 투여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마음 속으로는 시간 지나가서 백혈구 오르면 상태 좋아지겠네라고 일단 한숨 돌린다.

그만큼 환자가 의사에게 보여주는 임상양상, 환자가 힘들다고 말하지 않아도 온 몸에서 풍겨나오는 환자만의 포스가 있다. 컴퓨터 전자의무기록을 살펴보면서 대략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환자를 보러 가지만, 정작 환자 앞에 갔을 때 환자가 뿜어내는 포스가 의사의 진단과 치료계획이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그러므로 나 개인적으로는 환자에게 중요한 이벤트가 생기면 가서 꼭 환자의 관상을 보고 포스를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열이 날 때 병원 응급실에 오면 짐짝 취급되고 환자인 나를 대하는 것도 형편없고 어수선한 응급실에 몇일 있다보면 안날 병도 더 날 것 같다며 불평하는 환자들이 있다. 맞는 말씀이다. 자기는 열나면 서둘러서 병원에 오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심지어 지방환자들은 지방에서 119까지 불러서 서울 병원으로 왔는데, 자기한테 하는 처치도 별 것 없고 자리도 없는 응급실에서 찬밥신세로 지내는 것이 너무 화가 난다며, 다시는 응급실에 오지 않겠다고 말씀들을 하신다. 정말 송구한 상황이다.

만약 열이 나기는 하는데 별로 몸 상태가 나쁘지 않으면 응급실보다는 외래로 내원하셔서 담당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혈액검사를 통해 백혈구 감소증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한다면 응급실행을 조금은 막을 수 있겠다. 환자의 전신상태가 별로 나쁘지 않고 백혈구 감소증도 없으며 특별히 열이 날만한 포커스가 없다면 경구용 항생제를 복용할 수 있기 때문에 약을 처방받아 집에서 항생제를 먹으면 된다. 물론 외래에 와서 진료보고 검사를 다 했는데, 결국 입원을 해야하는 몸 상태로 판명나면 당장 입원을 할 수 있는 방이 배정되지 않는 한 응급실로 가게 되겠지만

입원해서 주사 항생제를 맞아야 할 정도라면 백혈구 촉진제도 맞고 혈압도 자주 체크하며 몸의 활력징후를 자주 점검하여 패혈성 쇼크로 진행되는지 여부를 경과관찰하는게 필요하겠다. 패혈성 쇼크라고 생각되면 몸에 중심정맥삽입관을 넣고 혈압을 일시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승압제를 쓰는 등 중환자실에 준하는 처치의 대상이 된다. 패혈성 쇼크가 오면 이에 따른 전신적인 장기 기능부전이 동반되며, 폐기능이 나빠지면 인공삽관을, 콩팥기능이 나빠지면 인공투석을, 심장기능이 나빠지면 인공심폐기계를 연결하여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극한 상황이 초래되기도 한다.

이렇듯 같은 열이라도 환자의 진행양상이 천차만별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의사들은 외래의 바쁜 상황에서 설명할 때는 열이 나면 일단 병원에 오라는 일괄적인 말을 강조할 수 밖에 없다.

지방에서 서울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열이 나서 예상치 못한 서울행을 반복하는 것이 육체적, 심리적으로 정말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몸도 힘들어 죽겠는데, 서울 병원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 응급실에 와서 대기 하는 시간, 담당 의사에게 연결되서 진료받게 되는 시간 등을 따지면 2시간 이내에 항생제를 써야 한다는 응급지침이 무색하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 중에 집이 지방이신 분들에게는 아예 처음부터 소견서를 써드린다. ‘무슨 병으로 진단받은 분이고, 언제, 무슨 약제로, 얼마의 용량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하신 분인지를 기록하여, 열이 나거나 현재 투여중인 항암제의 흔한 부작용이 나타나면 거주지 근처 종양내과가 있는 병원에 가시고, 그 때 이 소견서를 제출하라고 설명해 드린다. 좋양내과 의사라면 누구나 어떤 약제를, 몇일부터 쓰기 시작했고, 지금 나타나는 증상은 어떻게 처치하며 약을 써야 하는지 다 알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충분히 진료가 가능하다. 아직까지 이렇게 한 환자를 여러 병원에서 같이 진료하는 시트템이나 의료정보를 교류하는 시스템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의사와 나를 연결해주는 매개체는 내가 쓴 소견서가 전부이며, 서로를 모르지만, 같은 암환자를 보는 의사이니 믿고 보내는 셈이다. 왜 첫 치료부터 나에게 받지 않고, 이런 별 것 아닌 부작용 관리만 나에게 치료하게 하냐며 불만을 가질 선생님은 없으시다고 믿는다. 암환자를 보는 의사의 마음은 다 똑같으니까. 다만 환자들인 서울 병원과 지방 병원을 비교하며 의사들의 마음을 후벼파는 경우는 종종 있다고 한다. 모 선생님께서는 환자들이 서울로 가서 진료받고 항암치료 하는거 다 이해한다고, 그런데 서울 병원에서는 이렇게 안해주던데, 여기는 왜 이래요, 이렇게 치료하는게 맞는 건가요? 서울 병원에서는 무슨무슨 영양제 줬는데, 여기는 그 영양제 없나요?’ 라며 하나도 안 중요한 건데 쓸데없는 데에 집착하며 의사의 진료와 병원의 환경을 지나치게 따지는 환자들을 보게 될 때 진짜 짜증난다고 하셨다.

때론 열이 나는데 사실 염증이나 감염과는 관련이 없는 때도 있다. 수술 후 재발방지 항암치료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수술전 항암치료를 할 때나 4기 암환자들처럼 몸에 암세포가 존재할 때는 암세포 자체의 활성도에 따라 열이 나기도 한다. 이럴 때는 항생제를 써도 별로 차도가 없고, 당연히 균 배양 음성이며, 무엇보다도 환자가 열이 나는데 동반되는 증상이 거의 없는 경우이다. 우연히 체온을 재 봤더니 39도가 넘는다며 병원에 걸어온 환자들, 안색도 나쁘지 않고 식사도 잘 하시고, 별로 불편한 거 없다고 말씀하시면 대개 암에 의한 열인 경우이다. 이럴 땐 일시적으로 해열제를 써서 열을 떨어뜨리면 된다. 암에 의한 열 자체가 병의 진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처음 열이 나면 감염에 의한 열이 동반된 것은 아닌지 혈액배양검사를 하고 염증 수치들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여하간, 항암치료 중에 열이 날 땐 일단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료를 받는게 원칙이니 환자들은 이것만큼은 꼭 기억하고 참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