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았지만 행복한 아이 (1)
누워서 소변통을 붙잡고 시뻘건 피오줌을 누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성주. 며칠 전부터 hematuria가 생긴 모양이다. 오늘은 성주가 stem cell transplantation을 받은 지 33일째다.
내가 성주를 처음 만난 건 본과 3학년 소아과 실습 때였다. 내가 담당한 환자의 옆자리에 성주가 있었다. 성주는 백혈병으로 항암치료 중이라 머리를 빡빡 밀었었는데, 어찌나 귀여웠는지 내 눈에 쏙 들어왔다. 내가 담당한 환자를 만나러 갈 때마다 은근히 성주를 찾아보곤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항상 옆에는 엄마가 아닌 간병인 아주머니가 계셨다. 성주는 성격도 쾌활하고 소아과 병동 이 방 저 방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아이, 기억력도 좋고 똘똘해 보여 자꾸 말을 붙여보고 싶은 아이였다. 내 딸과 나이가 같아서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성주가 어떤 상태인지 궁금해 먼저 차트를 살펴보았다. 차트 첫 장에 ‘XX사회복지관’이라는 메모가 붙어 있었고, admission note에는 ALL(L1), 내원 당시 WBC 5만 이상, severe abdominal distension, chromosome translocation positive 등 risk factor를 여러 개 가지고 있는 환자라는 것 정도의 정보와 현재 치료 regimen만을 알 수 있었다.
차트를 봐도 환자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는 임상실습 초기. 나는 차트를 꼼꼼히 보거나 OCS에서 LAB을 더 챙겨보는 것보다 환자나 보호자를 만나보는 것이 적성이 더 맞는 편이어서, 일단 성주의 간병인 아주머니를 만나봤다.
그 당시로부터 1년 전쯤, 성주의 친아버지는 어느 24시간 놀이방에 성주를 맡긴 후 찾아가지 않았다. 성주는 보호소로 이송됐고, 그곳에서 다행히 한 치과의사의 둘째로 입양이 되었다. 입양 후 10개월이 지날 무렵 abdominal distension이 심해 병원을 찾았다가 큰 병원에 가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백혈병임을 알게 된 부모는 세브란스병원에 와서 확진을 받았으나 적극적인 치료를 원치 않는다고 말하였다. 요양소에 가서 쉬겠다고….
소아 백혈병은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경우 5년 생존률이 70%에 육박한다는 점에서 성인 암과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는, 위험인자가 있기는 하지만 조혈모세포이식을 해서 생착이 잘 될 경우 생존율을 더 높일 수 있으므로 힘들기는 하지만 반드시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주치의의 설명에 부모는 겨우 설득이 되었고, 항암치료 첫 cycle을 마친 후 퇴원을 했다. 한 달 후에 재입원하여 두번째 항암치료를 받기로 약속한 채.
그러나 두번째 입원을 하던 날, 성주는 보호소 직원과 함께 병원에 왔다. 그 사이에 양부모가 ‘파양’을 결정하고 성주가 원래 있었던 보호소로 보낸 것이다. 나는 그 두번째 입원에서 성주를 처음 만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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