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여러 번 해 본 사람처럼
땀으로 범벅된 초턴의 얼굴을 보면서도 어쩔 수 없이 팔을 내밀고 항암주사를 맞아야 하는 환자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미안하고 당황스럽다. 지난번 인턴 선생님이 주사를 잘못 놓아 일주일 내내 팔이 아프고 저렸다는 말로 은근히 나에게 압력을 넣는 환자가 얄밉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간경변으로 복수가 너무 많이 찬 환자에게 paracentesis를 시행한다. 나는 마치 여러 번 복수천자를 해본 사람처럼 능숙하게 도구들을 챙기고, 굵고 긴 복수천자용 18번 바늘을 환자의 배에 꽂고 물이 나오는 걸 확인한 후 당당하게 병실을 나선다. 그런데 5분 뒤 병동에서 call이 온다. 선생님, 물이 나오지 않는데요?
나는 병실로 달려가 바늘의 위치와 각도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환자 position도 바꿔본다. 배에는 물이 가득한데 왜 물이 나오지 않는 걸까? 결국 담당 2년차 선생님께 연락한다. 와서 보시고는 복수를 받는 bottle 입구에서 tube가 꺾여 있는 걸 발견하신다. 그 line을 똑바로 펴니 바로 물이 나온다. 내가 땀을 줄줄 흘리는 것만큼 환자의 배에서도 복수가 줄줄 흘러나온다.
Upper GI bleeding으로 L-tube irrigation을 계속 해야 하는 환자 곁에서 잠시 졸다가 다시 irrigation을 시작하는데 saline이 들어가지 않는다. 허둥지둥 Tube를 더 넣어보고 빼보지만 마찬가지다. 환자는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고, 결국 나는 L-tube를 빼본다. 어느새 tube 끝이 clotting이 되어 막혀 있다. 다시 L-tube insertion을 시도하니 구역질이 나는지 또 피를 토한다.
간경변 합병증으로 hepatic encephalopathy가 생겨 매일 dulphalac syrup을 먹고 관장을 하는 환자가 그렇게 배가 아파하는지 몰랐다. 내가 약속처방으로 묶어놓고 routine하게 내리는 order 하나에도 환자는 오전 한 나절이 힘들고 비참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내가 그렇게 몸에 손을 댄 환자가 괴로워하고 고통받을 때면 안절부절, 가슴이 두근거린다. ‘모든 걸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며 망설이다가 치료의 주도권을 잃고 원칙이 흔들리면 안되는 거야’ 라고 생각하다가 ‘여러 과에 걸쳐 consult가 난 환자라면 order를 주도면밀하게 내서 환자를 덜 괴롭힐 수도 있을 텐데, 내가 약에 대해 좀 더 잘 알면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될 텐데’ 라고 반성하기도 한다. 앞으로 내가 병원 내에 있는 그 어떤 순간도, 나에게 가장 많은 가르침을 주는 사람은 ‘환자’라는 사실만은 기억하고 싶다.
방금 며칠째 상태가 계속 나빠지는 환자의 foley catheter change가 필요하다는 call이 왔다. 환자가 자꾸 의사를 부르고 괴롭히면 귀찮고 미워지는데 그때를 조심해야 한다는 한 동료의 말이 기억난다. 보기에는 멀쩡한 것 같은데 밤마다 의사를 부르고 귀찮게 굴던 환자를 자신도 모르게 neglect했는데, off를 나갔다오니 arrest가 나서 expire한 상태였다고 했다. 방금 이 환자도 그렇다. 입원한 지 2주일이 되어가는데 매일 매일 환자가 힘들어하는 정도가 심해진다. 어서 가 봐야지. 인턴인 내가 그 환자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aseptic foley change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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