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어디를 바라볼 것인가

슬기엄마 2012. 8. 28. 18:21

 

치료를 하다가 좋았는데

나빠지고

또 약을 바꿔서 치료를 하면 다시 좋아지다가

또 나빠지고

이런 과정을 반복적으로 겪는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은

언제까지 이런 치료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지 그 끝을 알 수 없는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꾹 참고 견딘다. 의사선생님이 좋아지고 있다고 하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몇달이 지나면

약제 저항성이 생긴다.

기존 약제에 반응하는 놈들은 다 죽고 반응하지 않고 숨어있던 놈들이 슬금슬금 자라서 모습을 드러낸다. 아마도 진작에 자라고 있었을텐데 우리는 어느 정도 크기가 커져야 CT에서 비로소 그 존재를 알아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의학의 한계다. 그리고 그것이 소위 연구라는 것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가시적인 존재로 나타나기 전에 환자의 몸에 어떤 싸인이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CT 의 변화보다 더 일찍 그 변화의 싸인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까지 CT 변화를 대체하여 의사의 판단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확고한 싸인은 없다.

지금의 기준에서는 CT의 변화가 우선적이다.

 

그래서 난 환자에게 주관적인 컨디션이 어떠신지 열심히 물어본다.

피검사나 CT보다

환자의 컨디션이 어떤지,

어디 새로 불편한 증상이 생긴 것은 없는지,

매번 환자를 진료할 때마다 증상이 우연한 증상인지 병과 관련된 증상인지 판단해야 한다.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고 진찰하지 않아도

피검사 결과 하나로 그걸 판단할 수 있는 마커가 있었으면 좋겠다.

 

반면

아주 컨디션이 좋은 환자가 있다.

그녀는 아무런 싸인없이 병이 나빠졌다.

본인은 검사 결과가 좋을 거라고 기대하고 외래에 왔다가 나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병이 나빠지기도 한다.

사진을 보면 무시무시한데

그녀는 예쁘고 아픈데도 없다.

그녀는 컨디션이 좋기 때문에 계속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면 새로운 치료에 도전해보고 싶어한다. 내 앞에서 예쁘게 웃는 그녀를 마주하고 않아서, 그녀의 CT 사진을 들여다 보고 있는 내 마음은 아슬아슬하다.

 

이 환자와 언제 이야기를 해야 할까? 결국은 좋아지지 않을 거 같다고, 미래도 중요하지만 과거와 현재를 정리하는 시간도 중요하다고, 그 이야기를 언제 해야할까? 컨디션이 좋으니까 입원할 필요도 없다. 입원을 하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틈이 있는데, 외래에서는 내가 짧게 요점정리로 결론을 내리고 처방을 하면 그녀는 씩씩하게 내 말을 받아들이고 치료를 받는다.

 

마음 속 일말의 희망

그걸 뭉게버릴 수 있는 권리는

나에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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