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레이트 어답터(Late adapter)의 비애

슬기엄마 2011. 2. 27. 16:08


 

5년 전, 우리 병원에 전자차트(Electronic Medical Record)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나는 당시 오더도 제일 많이 내고 차트와 함께 몸부림치며 살아야 하는 레지던트 1년차였다. 시스템이 바뀌었다고 처방을 못 내거나 환자 진료에 차질이 생긴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새로 바뀐 EMR 시스템에 적응해야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정보통신팀에 전화를 해야 했고, 오더를 내다가 막히면 젊고 똘똘한 동기들에게 물어봐서 내가 풀지 못한 당면과제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 젊고도 빠릿빠릿한 동기들은 같은 오더를 내더라도 클릭을 몇 번 하느냐가 나랑 달랐다(물론 그들의 클릭 수가 훨씬 적었다). 처음 가동되는 덩치가 큰 EMR은 클릭 한 번 하고 화면이 넘어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바보 같은 클릭을 한 번 하면 그만큼의 시간을 버리는 셈이었다.

그들은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단번에 시스템을 섭렵하였지만 나는 같은 질문을 몇 번씩 반복하면서 겨우 적응하고 있었다.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누구를 탓할 시간도 없었다. 나는 무조건 시스템을 마스터해야 했다. 그것도 아주 신속하게. 그런 내가 부끄럽거나 한심하다는 생각을 할 시간도 없었다. 파스텔 톤의 화면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컴퓨터 화면에 익숙해지는 데만 해도 시간이 걸렸다.
그러던 내게 교수님들의 외래 차트가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들은 EMR을 사용하지 않고 여전히 종이차트를 쓰고 있었다. 그날 진료사항을 종이차트에 기록하면 외래 간호사가 스캔해서 EMR 차트에 파일을 올리는 식이거나, 전자펜으로 글씨를 쓰면 그걸 EMR에서 그림으로 인식해서 서식파일로 저장되는 방식으로 선생님들의 진료결과가 EMR에 기록되었다. 레지던트나 펠로우들이 외래에 투입돼서외래 받아쓰기를 하는 과도 생겨났다
.
연로하신 교수님들이 새로이 EMR 교육을 받고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도 힘드실 것이고, 교육을 받는다 해도 이걸 현실적으로 능숙하게 쓰기까지는 불편함이 많으실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나도 힘든데, 교수님들은 더 힘드시겠지. 그래도 마음 속 한구석에서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상당히 씁쓸한 일이라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EMR과 받아쓰기


눈 깜짝 하는 사이에 새로운 전자제품, 컴퓨터 관련 상품들이 출시되고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선보인다. 난 그러한 변화에 상당히 둔하고 심지어 저항적이기까지 한데, 그 이유는 내가 불편하고 적응하기 귀찮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새로운 것이 과거의 것과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 잘 모르겠고, 바뀐 뭔가에 다시 적응하는 게 귀찮기 때문이다
.
하다못해 핸드폰 기종만 바뀌어도 문자 보내는 방식이 바뀐다. 난 핸드폰으로는 전화를 걸고 받는 것과 문자를 보내는 것 이외의 기능은 사용하지 않는데, 기종이 바뀌면 문자를 보내는 키보드가 바뀌니 여간 불편하다. 그 외 핸드폰 기능은 잘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고, 확인하지도 않는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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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하루 아날로그 방식으로 환자를 보고, 일을 하고, 병원을 뛰어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일을 잽싸게 빨리 잘 하지 못하니, 뭔가 프로그램이 바뀌면 적응해서 일을 수행하는 데 시간이 두 배로 걸리기 때문에 좀 비효율적이더라도 예전의 방식대로 하는 게 나에게는 차라리 나았다. 그래서 난 고집스럽게 내 방식을 고집하며 살았고, 비록 소수일지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나 같은 아날로그 족속들과 감정을 공유하며 디지털 시대의 비애를 함께 나누고 견디며 살아왔다.

의사로서 내 삶의 본질은 환자를 잘 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디지털 방식을 내가 쫒아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한다 하더라도 크게 상관이 없을 거라고 믿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기능만 최소한으로 알고 적응하며 살았다. 정말 좋은 상품이나 프로그램은 나 같은 사람도 한 번만 해보면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라 믿으며, 그래서 나를(나 같은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과 상품들이 나온다면 기꺼이 선택해서 사용하겠지만, 불편하다면 굳이 적응하는 데 괴로워하며 시간을 쓰지 않으리라는 나만의 배짱으로, 디지털 시대를 느리게 사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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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문제가 생기면 얼리 어답터인 동생이나 슬기에게 문의하였다.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나는 본체를 뜯어서 동생에게 달려갔다. 아니면 동생을 불렀다. 병원 정보통신팀에도난 아무 것도 모르니 다 알아서 해결해 달라는 식의, ‘배째라정신으로 살아왔다. 별로 창피하지도 않았다.


더 이상배째라못하나?


그런 내가, 지난주에 아이폰을 샀다. 사실 정말 사고 싶었거나 사야 하는 필요성이 있다거나 제품이 궁금했던 것은 아니다. 아직 기본적으로 저장되어 있는 프로그램들 이외에 다른 아이템(‘어플이라 부르는)을 다운 받거나 응용해 보지도 않고 있다. 전화를 걸고 받는 것도 내 구식 핸드폰보다 편치 않고, 내가 애용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예전 구식폰만 못하다. 자꾸 오타가 나고 문자 메시지를 쓰다가 커서를 옮기는 것도 불편하다. 통화 감도 좀 떨어지는 것 같다. 전화기 크기도 커서 주머니가 늘어진다. 그런데 나는 왜 아이폰을 샀을까
?
나와 함께 디지털 시대에 저항하며 아날로그 족속으로 머물며 함께 저항(?)했던 동지들이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 한 가지 이유였다. 구식이며 예스럽고 적응력 떨어진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들조차 아이폰을 이용하여 이상한 메일을 보내고 실시간으로 뭔가 정보들을 확인하며 신세계로 진입하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많은 저널과 인터넷 사이트에서 스마트폰에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내놓으면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환자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실현할 수 있는 대안으로 스마트폰을 이용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연구들도 시작되고 있다.
변화가 천천히 누적되면서 인식의 변화를 동반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고 매우 빠른 속도로 혁신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양질 전환의 법칙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이제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가 열렸다고 말한다.


여전히 아날로그 족속


미국 암학회에 참가하느라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탔다. 나는 책을 잔뜩 싸 짊어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작가 이름만 보고, 어디선가 본 서평을 떠올리며 몇 권의 책을 사 가방에 담았다. 내가 처음 고른 책은 폐암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노년의 랍비와의 대화를 기록한 ‘8년의 동행이라는 책이었다. 천천히 진행되는 랍비의 죽음이 괴롭지 않게 기술된다. 랍비의 과거 회상을 통해 우리가 죽기 전에 누구를 만날 것인지, 누구와 시간을 보낼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아날로그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랍비는 이메일로도 사람의 마음을 전할 수 없어 항상 전화하여 직접 목소리를 듣고 방문하는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전형이었다. 그가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방식은 그것이었다
.
미국에 도착할 무렵, 미국인인 듯한 내 양 옆의 사람들이 모두 아이폰을 꺼내 문자도 보내고 메일도 보내고 게임도 하고 현란하게 다운받은 자신의 아이폰으로 뭔가를 부산하게 하고 있다. 가방을 챙기고 자리를 정리하면서도 왼손에 쥔 아이폰은 절대 놓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이 짧은 시간을 풍요롭게 해주는 아이폰의 실체가 뭔지 궁금해서 자꾸 흘끔흘끔 그들을 훔쳐본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충돌은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계속되겠지? 설마 그렇게 일찍 아날로그가 완전히 몰락하지는 않겠지?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리라. 그렇지만 디지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내 세상에서 배제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나의 아이폰을 소중하게 주머니에 넣는다. 나도 더 이상 세상의 흐름에서 배제되면 안 될 것 같다는 일말의 두려움도 있음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더 좋은 것, 더 빠른 것, 더 신식의 뭔가가 계속 나오더라도, 아날로그인 나는 코드화되지 않고 남아있겠지.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 족속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