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암 생존자로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후배에게

슬기엄마 2011. 2. 27. 11:52

암 생존자가 되어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후배에게

 

인터넷으로 외국 서적을 검색하다 보면 ‘A Survivor's Guide for When Treatment Ends and the Rest of Your Life Begins’ 류의 책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다. 생존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을 위한 안내서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청이 높아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같다. 아직 우리 의료 현실에서는 생존자에 대한 개념이 적극적으로 수용되지 않고 있는 터라,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지침서는 없고, 환우회나 동우회에서 환자들끼리 정보를 소통하는 정도로 자신이 개발한 노하우를 전달하며 끼리끼리 도움을 주고 받는 수준인 같다.

 

생존자(cancer survivor)라는 개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게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암생존자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미국 암학회에서는 과거에 암으로 치료받았지만 완치되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나 진단 일차 치료를 통해 암이 치료된 사람 뿐만 아니라 현재 암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환자, 완치 목적이 아니더라도 암에 대한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을 모두 생존자의 범주 안에 넣고 있다. 이들 개념 정의에 따르면 말기 암환자로 판단되어 치료를 목적으로 항암 수술을 받지 않기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생존자라는 개념으로 포괄된다. 그만큼 인생에서 암을 진단받고 치료 과정을 겪는다는 것은 단지 병을 앓고 지나가는 것을 넘어선 실존적인 사건이다. 치료를 종결한 환자라도 심리적, 육체적, 사회적 변화를 경험하며 자기를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영향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체적 불편감의 강도가 약해지겠지만 말이다.

의학적으로는 완전히 나았다고 판정을 받은 사람도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을 겪었다는 자체가 충격이며 정신적 외상(trauma)으로 남아 정서적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내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생존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리적 스트레스 정도가 높고, 5 이상 재발하지 않고 생존하고 있는 사람들도 암을 진단받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40%이상 심각한 심리적, 사회적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환자의 10%에서 주요우울증을 진단받게 되고 상당 수가 치료 전후로 적응장애(adjustment disorder) 경험하게 된다. 연구에서는 젊은 생존자들 가운데 20% 외상 스트레스장애로 진단받고 나머지의 45%-95% 가까운 환자들은 외상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까지는 아니지만 관련된 증상을 한가지 이상 가지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많은 연구들에서 생존자들은 다른 인구 집단에 비해 적극적으로 자살을 하고 싶다는 느끼는 비율이 높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생존자들은 아주 사소한 증상의 변화에도 암이 재발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평생 낫지 못할 거라는 생각, 아무런 예고없이 암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사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비단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다.

치료기간이 길거나 치료의 강도가 높을수록 환자의 이전 생활과 치료 후의 생활 사이의 단절이 심각한데, 예를 들면 치료 환자들은 상당 기간 동안 육체적, 정신적 피로함을 경험한다. 피로함(fatigue)이란 치료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는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특히 완치를 목적으로 광범한 범위를 절제한 수술 후에는 해당 장기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게 되기까지 주변 기관으로부터의 보조적인 지원을 받게 되고 이러한 보상 작용이 지속되는 만성적인 피로함을 느끼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매우 적극적인 재활 훈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의 경우 항암제의 영향이 뇌기능에 영향을 미쳐 ‘chemo brain’이라고도 정도로 신경세포의 피로함이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젊은 생존자들은 어느 정도 기간까지 아이를 가질 없는 경우도 있다.  

 

생존자들은 일상으로 완전히 복귀하고 싶어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정기적인 병원 방문이 예정되어 있고 적절한 모니터링을 받아야 한다. 가슴에 방사선 치료를 받은 유방암 환자들은 치료가 끝난 수개월에서 수년 내에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방사선 폐렴이 발생할 수도 있다. 마른 기침과 가끔씩 숨이 차면 빨리 병원에 가서 가슴 엑스레이를 찍고 스테로이드를 먹으며 새로운 부작용에 대한 치료를 재개해야 한다. 호르몬 수용체가 양성인 젊은 유방암 환자들은 정기적으로 체내 여성 호르몬 수치를 체크하여 몸을 폐경기 여성처럼 유지하는 것이 재발을 방지하는 것에 도움이 되므로 항호르몬제를 복용하게 되는데, 이를 복용하기 시작하면 한동안 안면홍조나 관절통 폐경기 증상을 겪게 된다. 그런 증상을 느낄 때마다 이들은 자신이 유방암 환자라는 사실을 잊을 없다. HER2 수용체 양성이거나 삼중음정유방암 환자가 두통을 느낄 뇌로 전이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한다면, 그걸 두고 의사는 환자분께서 너무 예민하신 같다 함부로 말해서는 안될 노릇이다. 이들 유형은 뇌로 전이되는 장기특이성을 갖고 있다는 연구가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치료를 무사히 마쳤는데도 건강염려증 환자가 되어 병원을 전전 긍긍하며 재발 위협에 대한 노예가 되어 수도 없는 것이고, 조기에 재발을 발견하면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충분히 다시 한번 병을 완치시킬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일상에 충실한다는 신념하에 정기적인 모니터링이나 몸의 변화를 무관심하게 방치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생존자들은 두가지 상황에서 밀고 당기기를 하며 이러한 갈등을 마음 속에 품은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정답이 없기 때문에

 

1년간 유방암 치료를 받고 직장으로 복귀하는 후배를 위해 뭔가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주고 싶어서 이것 저것 궁리해보지만 마땅치 않다. 치료 과정에서 생존자 가이드라인을 운운하는 것이 아직 우리 현실에서는 사치스러운 개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고민들을 미뤄두었었다. 그러나 표적 치료제의 등장과 환자에 대한 완화적/보조적 치료약제와 방법들이 개발되면서 암이 있으되 암과 함께 살아가는 환자들이 늘어나는 보며 종양학을 공부하고 암환자를 보는 의사로서 이제 이상 이런 고민들을 묵혀둘 때가 아니며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개발해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선배로서 나는 그녀를 위해 따뜻한 조력자가 되어 묵묵히 함께 주고 몸과 마음이 힘들 언제든지 팔벌려 안아줄 있는 준비를 하는 밖에 없겠다.

자신이 암에 걸렸고 치료 중임을 주위 사람들에게 당당히 알렸던 그녀, 나에게 빡빡이 민둥머리를 셀카로 찍어 보내준 그녀, 재발의 위험이 높은 위험군이지만 1년만에 직장에 복귀하는 용기를 가진 그녀,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그녀를 위해 오늘밤 와인 한잔정도 축배를 드는 정도는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