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약에 예민하시군요

슬기엄마 2012. 6. 17. 20:32

약에 예민하시군요

이렇게 말하면 살짝 화를 내는 환자들이 있다.

내가 예민하다구요? 저 원래 안 그런 사람인데

 

약에 예민하다는 것은 사실 의학적인 표현은 아니다.

내가 환자에게 약에 예민하다고 말을 할 때는

그 환자가 정서적으로 예민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약이 대사되는 과정에서

약을 분해하는 효소가 작용하게 되는데

사람마다 그 과정에 차이가 있어서

같은 약을 써도 누구는 잘 대사되지 않고 몸에 오래 남아 독성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누구는 부작용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멀쩡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독성이 효과와 관계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그 약에 대해서 나는 그렇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내가 예민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환자가 작은 일에 호들갑을 피우거나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말이 아니므로 너무 속상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자기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비슷한 정도의 상황을 민감하게 느끼니 여러모로 불안하고 불편하다.

그 모든 것이 치료과정에서 생길 수 밖에 없는 일이니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것조차 잘 다스릴 수 있는 치료를 하는게 좋은 의사의 몫이겠지.

 

특정 약의 대사과정에 작용하는 효소가 많은지 적은지, 그래서 약 부작용이 많이 나타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예측할 수 있는 분야의 연구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아직 그런 연구결과를 현실적으로 적용하기에 돈도 너무 많이 들고 그 연구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아주 제한적이라 실용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오늘도 응급실에 온 우리 예민한 환자들, 기운내시길.

내 몸이 그런거니까 속상하지만 잘 견딜 수 밖에 없는 일이니 마음 단단히 잡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