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잘 돌아가셔서 다행이에요

슬기엄마 2012. 4. 26. 21:00

 

하루 동안 세명의 환자가 돌아가셨다.

병이 나빠지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그 누구도 그게 오늘일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 날이 바로 오늘 내일일 수 있다고

환자 의식이 있을 때 지인들과 만나고 작별 인사를 하셨으면 한다고 말씀드렸다.

형편이 어려우시더라도 마지막 시간이니

1인실로 옮겨서 편안한 환경에서 돌아가실 수 있게 하자고 하였다.

가족들은 내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지만

주치의가 그렇게 하라고 하니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듯 내 말을 따랐다.

그런 말씀을 드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48시간 전에는 진통제를 제외한 수액을 모두 중단하였다.

마지막까지 수액을 많이 주면 돌아가시고 난 후 몸에서 분비물이 많아진다.

의미없는 약은 중단하는게 맞다.

 

밤 사이 당직 레지던트들에게 연락이 온다.

누구누구 환자, 운명하셨다고.

 

잘 돌아가셨네요.

 

그들은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하였을까?

 

멀쩡하게 걸어서 외래다니며 치료를 잘 받고 있는 한 환자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 제가 만약 상태가 나빠지면 언제 죽을지 미리 알려주세요.

아무 준비도 못하고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불현듯 저 세상으로 가고 싶지는 않아요.

그 시간을 꼭 알려주세요.

아직 못다한 이야기가 많아요.

 

이번에 돌아가신 환자와 가족들은

나와 이런 문제에 대해 충분히 잘 논의가 되어 있었다.

치료 하면서 상태가 좋아졌다가 나빠지는 과정을 거치며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위해 심폐소생술도 하지 않는게 좋다는 얘기도 미리 했었고

어떠 어떠한 싸인이 나오면 이건 병이 나빠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더 이상의 검사나 추가적인 투약은 하지 않기로 했었다.

물론 그런 논의과정이 모두 아픔없이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몇번을 울고 몇번을 면담하였다. 아프게 아프게 죽음을 준비하였다.

가능하면 임종 전에 집에서 편안한 시간을 가져보자고 했지만

임종의 순간이 편안한 환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컨트롤 되지 않은 병 때문에 숨이 차고 배가 부르고 통증이 찾아온다. 그래서 집에서 임종을 맞기 어렵다. 집으로 갔던 환자는 몇일을 못 견디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병원에서 임종을 편안하게 맞기 위해서. 집에서는 그게 어렵다.

 

잘 돌아가셔서 다행이다.

 

그렇게 돌아가신 환자분이 나에게 선물한 샴푸와 바디로션도 아직 남아있고

그렇게 돌아가신 환자분이 나에게 선물한 홍삼도 개봉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남겨진 삶의 흔적이 애닯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