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떄가 있습니다

슬기엄마 2011. 2. 27. 11:37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그녀들은 뇌종양으로 수술, 방사선치료, 감마나이프, 항암치료를 다 했지만, 단 한번도 치료에 반응하지 않았다. MRI를 찍을 때마다 나빠지기만 했다. 상당히 공격적인 치료법을 구사하신다는 우리 교수님도 오늘 아침 MRI를 보시더니 이제 그만 하자하셨다.

의식은 멀쩡한데 뇌간에 병이 있는 그녀는 자발호흡이 잘 안되는게 문제다. 자기도 모르게 자꾸 이산화탄소가 쌓여서 의식이 흐려지는 일이 반복되고 그러면서 폐렴이 동반되곤 했다. 뇌간에 병이 있으니 호흡도 문제고 삼키는 기능도 안되서 침도 삼키지 못할 정도다. 그래서 결국 위에 튜브를 연결해 인공 영양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글씨를 써서 의사도 전달하고 와이브로 노트북으로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으며 병원에서 지낸다. 몇 달째 퇴원하지 못하고 치료법을 바꿔가며 전전하고 있다보니 전신적인 기운이 다 떨어진 것 같다. 기관절개상태로 지내고 가끔 밤에 가정용 인공호흡기를 호흡을 보조해주고 있다. 항암제는 그녀의 뇌장벽을 절대 허물지 못하는 것 같다. 장벽 안쪽은 조금씩 조금씩 나빠지고 있는데, 바깥 쪽에서 아무리 무기를 바꿔 공격해도 아직 감감 무소식인 셈이다. 이제 그만하는게 좋겠다는 교수님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엄마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진다. ‘저렇게 멀쩡한 아이를 어떻게 포기하겠습니까?’ 엄마가 별 말씀도 못하시고 눈물만 떨군다. ‘이번 항암치료까지는 해봅시다. 그리고 나서 다시 재평가해보죠아까 회진 돌기전에는 집이 부산 쪽이시니 이제 그쪽에서 재활치료 받으며 지내시게 해라. 항암치료는 그만 하자라고 결정했었는데오후부터 항암제가 투여되기 시작하니 그녀는 노트북으로 영화도 못보고 깊은 잠에 빠져 자고 있다.

 

또 다른 그녀는 병이 좀 심하다. 오른쪽 뇌가 거의 동공 상태로 변해버린 그녀는 왼쪽 상하지를 잘 움직이지 못한 채 침대에서 몸을 뒤틀며 지낸다. 그녀와의 의사소통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충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것 같고, 나도 그녀가 울부짓는 듯한 소리를 내면 대략은 무슨 맥락으로 얘기하는지 알 수 있다. 언뜻 들으면 짐승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몇 개월 전부터 병동에 나가면 대낮에도 술취한 것 같은 이상한 큰 소리가 들리곤 했었는데 이번 달에 파트가 바뀌고 보니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뭐가 맘에 안들면 소리를 지르는 스타일인데, 다인실에서 몇 개월간 있으면서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데도 아무도 그녀에게 뭐라하지 않는다. 요즘 환자들 꽤 까칠한 편인데도 젊은 그녀의 투병을 묵묵히 인내해 주는 모양이다. 역시 이것저것 갖가지 뇌종양에 대한 치료를 했지만 별로 변화가 없고 얼마전에는 보험이 안되는 표적치료제까지 더해서 항암약물치료를 했지만 오히려 더 나빠지는 추세이다. 결혼한 딸이 아직 첫 아이를 낳기도 전에 뇌종양을 진단받게 되자 그 뒷바라지를 하며 훌쩍 늙어버린 듯한 친정엄마는 무슨 치료라도 해주세요. 여기서 교수님이 손 놓으시면 제가 사위를 무슨 낯으로 보겠습니까?’ 교수님도 더는 말씀을 못하시고 오늘 논문 좀 찾아보고 고민해 봐라. 내일 더 논의해보자하신다. ‘아니, 나에게 공을 넘기다니!’

 

오후 회진을 돌러가서 해결의 국면을 찾기 힘든 환자 몇 명의 어머니들과 면담을 한다. 더 이상 시도해 볼 수 있는 표준치료나 임상연구가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원칙적인 대안은 경과관찰(observation)이다. 뭔가를 하는 것 자체가 환자에게 해를 줄 수 있는, 앞으로 남은 시간마저 더 고통으로 짧아질 수 있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설명하고 납득시키기 어렵다. 아니, 어쩌면 엄마들은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치료를 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계속 설득하던 교수님도 엄마들의 파워에 밀리시는 듯, 치료를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이렇게 항암치료를 하는게 과연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라며 솔직한 고민을 드러내신다. ‘지금 정도의 의사소통조차 안될 수 있어요.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열나고 쇼크에 빠지고 엄청난 약제들을 쓰는 치료 과정이 환자를 의미없는 고통 속에 빠뜨릴 수도 있어요. 자꾸 항암치료를 하는 것보다는 남은 여생 좋은 시간을 갖는 쪽으로도 생각을 해보세요.’ 보호자들과 비교적 대화를 잘 하는 편이라 자부했던 나도, 자식의 치료에 대해 집념을 갖는 엄마들의 생각을 바꾸기는 어렵다. 오늘 오후는 4 4패다.

 

누가 서로의 행복을 정의할 수 있겠는가

 

내가 지금 시행하는 치료, 여타 결정들이 진정 환자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 자신할 수 있을까? 행복은 주관적이고 상황적으로 변동될 수 있으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재조명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환자를 위한 결정이 정말 환자가 원하는 것일까? 의사의 결정을 뒤집을 정도로 엄마는 자식의 생존을 위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식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있지만 엄마의 목소리가 과연 자식이 원하는 것일까? 엄마와 나의 결정은 환자를 행복하게 해줄까? 그러고 보니, 난 오늘 4명의 엄마들과 면담을 했는데 정작 환자 본인과는 향후 치료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고 설명도 해주지 않았음을 지금에야 깨닫게 된다.

환자와 이런 이야기를 주제로 면담을 하려면 일단 보호자들과 먼저 이야기를 트고, 대화를 나눌만한 조용한 공간, 그리고 결론을 서둘러 내려고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여 환자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늘 그렇게는 못 하더라도 가능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사실 난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를 주로 병동의 복도에서 하고, 보호자랑 대화 중에 전화도 받고, 면담이 길어지면 초조한 모습을 보이면서 서두르는 모습을 노출한다.

이 원고를 정리하고 나면 빨리 저널들을 찾아 그녀들을 위해 써볼만한 약제 후보들을 정해야 할텐데, 그렇게 밤을 지새우며 약 선정을 고민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과연 내가 이렇게 바퀴를 열심히 돌리고 있는 이 자전거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잠시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죽음을 예감하는 환자를 위해 난 무엇을

 

젊은 그녀들과 엄마들을 대할 때면 나는 솔직히 힘들지만, 반면 이제 곧 여든이 되는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오후 회진은 그렇게 마음 무겁지 않다. 그는 10년전에 폐암으로 수술을 받고 재발없이 지내시다가 2달전에 복강내로 잔뜩 전이된 위암을 진단받았다. 부정맥을 조절하려고 입원하신 할아버지가 소화불량을 주소로 내시경과 복부 CT를 찍은 후 위암을 진단받으시자 충격을 받으셨던 모양이다. 항암치료로 협진이 나서 할아버지를 찾아갔을 때 그는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계시고, 물도 제대로 못 넘기며 구역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신체 검진을 하는데 별로 협조도 하지 않고, 별 말씀도 없으셨는데, 어찌 하다보니 할아버지가 말문을 틔웠고 나는 위암에 대해, 그리고 4기 위암의 예후와 치료 과정에 대해 솔직히 말씀드렸다. 그리고 지금 복강 전이로 인해 식사가 어렵고 구역감이 조절되지 않을 수 있으니 컨디션이 호전되면 완치는 안되지만 항암치료를 하면 증상 조절에 도움될 수 있다는 것까지 설명을 드렸다. ‘그래, 나 아직 할일이 조금 더 남았으니 몇달이라도 시간을 벌어야겠다며 치료를 받겠다고 하셨다. 그는 그길로 번쩍 일어나 병동 복도를 걸으며 운동을 시작했고 항구토제 주사를 몇번 맞더니 죽도 드시기 시작했다. 아직 항암치료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컨디션이 지금보다 조금은 더 좋아지셔야 항암치료를 할 수 있다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나름으로 노력하신 셈이다. 그렇게 일단 퇴원하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항암치료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증상이 악화되어 입원하셨다. 위장이 막혀 스텐트를 넣을 계획으로 내시경을 했는데 내시경 중 발생한 호흡곤란이 급성호흡부전증으로 진행하여 결국 기관삽관까지 하고 중환자실 치료를 받게 되었다. 다행히 위기를 넘기고 일반 병동으로 나오셨지만 그의 체력은 이만저만 약해진 것이 아니다. 나는 회진을 가면 손바닥을 마주하여 할아버지랑 브라보를 하는데, 점점 팔을 높이 올리지도 못하게 기운이 빠지더니 엊그제 폐렴이 생긴 이후로는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 며칠전 컨디션이 잠깐 좋은듯 해서 할아버지, 병원에 계속 계시는거 너무 지루하시죠? 집에 가고 싶지 않으세요?” 여쭤보니 할아버지 : “, 집에 가고 싶어. 병원은 영혼이 없는 공간이야 : “집에 가서 뭘 제일 하고 싶으세요?” 할아버지 : “버리고 싶어. 내 물건 정리해서 버릴 거 버리는거…” 행복은 주관적이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설정될 수 있는 것이므로 젊은 그녀들과 할아버지의 행복은 다른 모습으로 요구될 수 있겠다. 치료도 하지만, 그리고 무기력하게 그들을 보내야할 때가 더 많지만 그들 삶의 마지막 여정 한 순간에 작은 행복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