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어떤 사람이 좋은 의사인가?

슬기엄마 2011. 2. 27. 11:26

어떤 사람이 좋은 의사인가

 

한 영국의 정신과 의사가 의과대학 입학 면접시험부터 의과대학 졸업까지 일군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식적, 비공식적 학교생활을 추적관찰하였다. 일종의 참여관찰 방법으로 진행된 이 연구는 의과대학을 지원하는 학생들의 면접을 공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의과대학 면접시험이라면 통상적으로 하는 질문, “자네는 왜 의과대학에 지원하게 되었나?” 혹은 자네는 왜 의사가 되려고 하나?”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에 좋은 대답을 준비해 둘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천편일률적인 이유를 들며 의사가 되고자 하는 자신의 선한 의지를 밝힌다. ‘남을 도우며 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사회에 기여하는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 ‘훌륭한 의사선생님을 보고 감동받아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가 거의 대답을 주종을 이룬다. 학생이 면접을 마치고 나가면 면접을 담당한 교수들은 그들의 천편일률적인 대답에 따분해하고, 왜 좀더 솔직하게 자신의 욕망과 욕심을 말하지 않는지에 대해 핀잔을 던진다. 남을 도울 수 있는 무수한 방법이 많은데,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나 직업은 매우 다양하고 많은데 왜 하필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는가에 대해 학생들이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며 뒷담화를 하신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의사란 어떤 직업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고, 그런 인식에 맞추어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면접이라는 예민한 상황에서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사람들한테 대접받으며 살고 싶어서’ ‘부귀와 명예를 얻기 위해의사가 된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타의 다른 직업들처럼 의사도 또 하나의 직업인으로서의 의사로 보이면 안되는 뭔가 신성한 것이 있는 것일까?

 

논문을 많이 쓰는 의사

한 의사의 자질을 평가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하겠지만, 객관적인 지표를 한두가지로 결정하기 어렵다. 의과대학 교수들의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가장 객관적이고 적절한 지표는 논문이다. 그래서 요즘 대학병원들 의사들은 논문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모든 생산적 지표가 논문으로 결정된다. 논문은 기계처럼 찍어내듯 결과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의 고민이 축적되는 것을 요구한다. 논문 압력이 심해지니 쥐어짜듯 주제를 조금씩 변형하며 대량 생산으로 연결시키기도 한다. 의사로서의 삶이 impact factor가 높은 저널에 논문을 싣는 것에 종속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간간히 눈에 띈다. 

 

연구비를 잘 따는 의사

좋은 논문이 책상 앞에서 나오던 시절, 실험실에서 혼자 힘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험에 전념하면 좋은 데이터가 나오던 시절은 지나간 것 같다. 좋은 논문은 막대한 재정지원, 협력하는 다방면의 전문 연구인력, 첨단 설비등이 잘 갖추어져 있을 때 나올 가능성이 높다. 결국 능력있는 사람을 모으고 좋은 재료를 확보하고 동물을 사고 좋은 설비를 갖추려면 문제는 돈이다. 그래서 능력있는 의사란 수도 없이 연구과제 계획서를 작성하고 재정 지원이 가능한 곳의 문을 두드려 연구비를 받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연구원도 많이 쓰고 좋은 재료도 많이 확보하고 연구 공간, 재원, 시간 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런 인프라를 갖추어야 명함을 내밀만한 논문도 점쳐볼 수 있다. 미국의 많은 대학은 산학협력이 보다 긴밀해지고 있는데 논문을 많이 쓰는 사람보다 프로젝트를 많이 벌이고 재정적 지원을 따오는 의사가 더 능력있는 의사로 인정받는다.

 

환자를 잘/많이 보는 의사

사실 어떤 의사가 얼마나 치료를 잘 하느냐, 얼마나 환자를 잘 보느냐를 설명할만한 객관적인 기준이라는게 마땅치 않다. 분야가 다르면 같은 의사라도 상대방 의사를 평가하기 어렵다. 결국 소수의 전공분야 의사들 사이에서 환자를 보는 능력에 대한 진정한 평가가 가능할까? 환자를 잘 보는 의사를 평가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인 것에 비해, 환자를 많이 보는 의사를 평가하기가 더 쉽다. 그래서 인센티브를 입원환자수, 외래환자수로 따져서 평가 항목으로 삼는 병원도 있다. 환자수는 병원의 실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으니 병원 입장에서는 평가 항목으로 간주할 법하다. 환자를 많이 보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환자들에게도 평가의 눈이 있으므로 환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환자들과 교감하며 진료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할 수도 있으므로 환자수가 단지 양적인 개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 일부 의사들은 어떻게 하면 환자 숫자를 늘릴 수 있는지, 윤리적으로 문제없고 환자에게도 해가 없으면서 자신에게는 이로움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친절한 의사

의사로서 평생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그것이 항상 환자 진료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건 아닌 것 같다. 환자에게 잘 한다는 것은 반드시 지식으로만 설명되는 문제가 아니라, 보다 철학적이고 심성적으로 미덕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진심에서 우러러 나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사실 그런 것 참 어렵다.

또 다른 한편으로, 전문의가 되고 나서 몇 년이 지나면 최신 지견이나 전문적인 지식을 획득하는 데에 게을러지기 쉽다.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가장 적절한/정당한 방법으로 진료하느냐를 따지기 보다는 친절한 말씨, 자상한 태도를 보임으로써신뢰를 획득하는 의사들도 일부 있다. 환자에게 친절한 것은 정말 중요한 미덕이지만, 더 중요한 항목은 의학적으로 적절한 검사와 진단, 치료를 하고 있느냐에 대해 끊임없이 자신의 진료 패턴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의사는 평생 공부하고 양심을 지키며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실력과 합리적 판단에 근거하지 않는 친절은 정말 위험하다. 그렇지만 실력보다 친절이 현실적으로 더 무게감이 느껴지는 상황도 은근히 많다.

 

좋은 선생님으로서의 의사

의사가 되는 순간,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이 시작된다. 하다못해 인턴만 되어도 학생, 간호사, 병원 내 전문기사 등을 대상으로 뭔가를 가르쳐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그들이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는 베테랑일 수 있지만, 그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환자에게 직접적으로 뭔가를 시행해야 하는 사람은 의사이기 때문에 풋내기 인턴도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 수련을 받으면서도 누군가를 가르쳐야 하는 입장, 그리고 나중에 전문의가 되어 개업을 하더라도 의사는 항상 함께 일하는 그 누군가를 가르치며 일 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주위에서 가끔 좋은 선생님을 뵙게 된다. 가르침이라는 것에 소명의식을 가지고 헌신하는 선생님들, 그들에게 한두번의 강의를 들었을 때, 병동에서 환자를 보며 짧게나마 티칭을 해주실 때,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 자체가 티칭이 될때, 학회에서 너무나 잘 만들어진 슬라이드와 명쾌한 설명으로 나의 무지를 벗겨주시는 선생님을 뵐 때 선생님으로서의 의사역할은 또 다른 덕목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 각각의 항목은 공히 의사들에게 요구되는 항목들이다. 가능하면 많은 덕목을, 다양하게 갖추었을 때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렇게 다양한 분야의 덕목을 골고루 갖추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점이다. 한 분야라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가면서 의사들도 조금씩 스타일이 다른 방향으로 형성되는 것 같다. 자신 삶의 철학이 반영되는 것이리라아직 이도 저도 아닌 나는 나쁜 의사가 되지 않기에 급급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