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그래도 참아야 하는가?

슬기엄마 2011. 3. 26. 08:31

의사보다 환자가 욱 할때가 더 많다는 거 잘 안다. 환자는 의사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1:1 관계로 정정당당하게 맞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환자나 보호자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에 맞대응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환자는 나름대로 근거와 이유를 대서 나에게 문제제기를 하지만
-이성적일 때는 문제제기이고 이성을 잃을 때는 따지는 것이 되지만 -

의사인 나로서는 그의 문제제기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당장 그 앞에서는 그 질문에 의학적인 결함이나 논리적인 정합성을 설명해도
별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 이미 많이 분노하고 그걸 참다가 왔기 때문에 내 설명을 별로 들으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시간차를 두고 설명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전이성 유방암을 진단받은 68세 여자 환자.
처음부터 유방의 종양크기가 컸다. 폐로도 이미 전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환자의 전신상태는 비교적 양호하였고 증상도 별로 호소하지 않았다. 탁센 계열의 주사 약물치료를 시작하였고 4차까지 진행되는 동안 뚜렷한 감소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히 유방의 종양 크기가 감소하였다. 말랑말랑 해지고.
그러다가 6번째 항암치료까지 하고 나서 종괴가 괴사되어 염증과 진물이 나고 열이 나자 응급실로 오셨다. 지방에서 사시는 환자분인데, 3-4일 통증을 참다가 오셨는지 날 보자 눈물부터 흘리신다. 너무 아프다고...
항생제 치료를 몇일 하면서 경과를 보니 상당히 많이 상처가 좋아졌다. 통증도 감소하였다. 그런데 한번 괴사된 부분의 살이 다시 차오르지 않고 회복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나빠지지도 않는다. 그냥 두고 보면 다시 염증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항암치료반응은 좋았던 분이니, 가능하면 스케줄을 맞춰서 항암치료를 하는게 필요한데, 아마도 항암치료를 하면 다시 염증이 반복될 것 같았다.
폐에도 이미 병이 있는 분인데 유방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이냐에 대해 수차례 고민을 하였으나, 결국 완치적 목적은 아니지만 유방을 제거하는 것이 장기적인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수술하였다. 별 문제 없었고, 잘 퇴원하셨다.
수술 후 검체에 대한 병리학적 소견을 보니 역시 괴사된 세포가 많았고 암세포는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항암제에 대한 반응이 좋아 종양 가운데 부분부터 암세포가 죽으면서 괴사되기 시작했던 걸까 정도의 짐작이 가능하였다. 음, 항암제가 잘 들었나보다. 항암제 선택이 치료의 무기인 종양내과 의사로서 뿌듯한 순간이다.

그런데 왠걸, 수술 후 다음 항암치료를 위해 내원한 환자. 며느리인지 딸인지 잘 모르겠는데, 할머니가 진료실에 들어오자 때 맞춰 진료실로 전화를 해서 나를 바꾸라고 한다. 생각해보니 입원기간 중에는 본 적이 없었다. 아들만 몇 번 봤었는데... 그리고는 갑자기 치료를 잘 못해서 이렇게 된거 아니냐, 왜 처음부터 수술하지 않았냐, 당뇨가 있는데 혈당조절을 잘 못해줘서 상처가 나빠진거 아니냐, 치료를 이딴 식으로 하냐, 의사를 바꾸겠다, 적정진료실에 고소하겠다....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전화로 할 수 있는 만큼
처음부터의 과정을 설명했지만
- 사실 외래중이라 다른 환자들이 진료를 대기하고 있으므로 설명하고 싶지 않고 시간도 없었지만 -
내 말을 별로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평소 그 보호자와 안면도 없고
치료를 처음 시작할 때 4기 전이성 유방암의 특성과 예후, 치료과정에 대해서는
이미 아들과 할머니에게는 다 설명하였고 다들 잘 이해하셨건만,
전화의 주인공은 외래 중간에 전화하여 그런 이해도 되어 있지 않은채
자신이 수집한 증거에 입각하여 나를 공격하였다.
이렇게 수술할거면 왜 처음부터 수술하지 않았냐는 이런 식의 질문을 하니
나는 폭발할 것 같았다.

그래도 조용히 원하는 대로 하시라고 했다. 그렇게 빨리 끊어야 다음 환자를 더 지연되지 않게 볼 수 있으므로...
이런 일을 사실 매우 흔하게 발생한다.
나에게도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 인정한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환자나 보호자의 예의와 의무, 권리가 아니다.

그래도 나는 맞대응을 하면 안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