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슬기 엄마 파견 가다

슬기엄마 2011. 3. 1. 17:52

슬기 엄마 파견 가다

 

나는 지금 지방병원으로 파견을 나왔다. 남편은 내게파견은 레지던트 생활의 꽃(!)’이라고 했다. 결혼 10년째, 집과 남편과 슬기를 남겨두고 혼자 지방에 내려와 있는 것에 대해 충분히 미안하지만, 가벼운 흥분감이 들 정도의 경쾌함도 부인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나를 경쾌하게 하는 것은 본원 생활의 빡빡함에서 해방되었다는 점이리라. 물론 교과서적으로 다짐한다. 이곳 응급실에서 일을 하지만 내가 보는 환자들에게 나는 그 순간 최선을 다하는 주치의가 되어야 한다.

대학병원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환자를 위한 진료 이외에도 신경 쓸 일이 아주 많다. 다소 순발력이 떨어지는 나에게 그런 일들은 약간 버겁다. 내과 내 각 파트별로 notify system이 달라서 환자를 보며 밤새고 고생한 다음에도 noti를 제대로 못 해서 혼나는 일, 소위 면피용 action을 취하지 못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 취급을 당하는 일, 나의 실수가 인구에 회자되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더 위축되는 일…. 어찌 보면 나는 주위 의사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는 데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내 실력과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

파견을레지던트 생활의 꽃이라고까지 말한 남편의 말에는 그런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병원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시간적 여유가 많으니 환자 한 명 한 명을 볼 때마다 책도 찾아보고 고민도 충분히 하리라, 그 동안 이유도 잘 모른 채 관행적으로 처리했던 일들을 되새기며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해 보리라,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이곳 생활을 시작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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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taking
이 안 되는 환자들

아침에 세면대에 머리를 부딪쳐 쓰러지며 의식을 잃었다는 52세 남자 환자. 그는 그렇게 쓰러져 있다가 오후 7시가 넘어서야 응급실에 왔다. 쓰러진 후 어지럽고 자꾸 토한다면서 자기 발로 걸어왔다. 최근 2년 동안 그렇게 몇 차례 쓰러진 적이 있었다는데, 의식을 잃은 적은 몇 번인지, 의식을 잃은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20년째 혼자 살고 있었다. 병원 기록상 2003 SDH로 수술 받은 적이 있고 alcoholic hepatitis로 소화기 내과를 간간이 찾았던 흔적이 있다. 나중에 나타난 동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20년 전 이혼한 이후 내내 혼자 살았고 2003년에 SDH가 생긴 것은 경운기에 나무를 실어 올리는 과정에서 떨어져 head trauma를 받은 것이며, 원래도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었지만 이혼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소주 1병 이상을 마시고 밥은 잘 먹지 않는 heavy alcoholics로 살아왔다고 한다. 엊그제도 어버이날인데 아무도 자신에게 전화하거나 찾는 사람이 없어 곡기는 끊고 술만 마신 것 같다.

다행히 Brain CT new lesion은 없는 것 같고 AST/ALT elevation 외에 크게 나쁜 소견은 관찰되지 않는다. 하지만 malnutrition, general weakness가 심하니 얼마간의 conservative care가 필요할 것 같아 입원하기로 했다. 환자는 머리가 아픈 와중에도 돈이 별로 없다는 내색을 잠시 내비친다. 그나마 멀리서 동생이 왔으니 입원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그는 퇴원 후 삶의 고단함을 술에 의지할 것이고 비슷한 일이 반복될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Fluid, liver pill, 그리고 신경과 약을 처방하면서도 과연 이런 약들이 그를 cure or care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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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비 낼 돈 없으니 집에 갈래


길을 가던 중 갑자기 바람이 불면서 쓰러졌는데 못 일어나고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병원에 모시고 왔다는 72세 할머니. BP 180/70, HR 110, 산소 5 liter에서 saturation 70% 안팎이다. Chest CHF pulmonary edema. 청진에서는 both lower lung field crackle이 들리고 pansystolic murmur로 청진기가 요란하다. 산소 full mask로 겨우 saturation이 유지되고 medication 투여 후 BP PR이 조금씩 떨어진다. Severe diaphoresis도 약간 나아진 것 같고 foley insertion lasix를 줬더니 금새 urine output 1,000cc가 나온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할머니에게 말을 붙여본다.

할머니, 숨차지 않으세요?” “늘 차” “최근에 더 숨차지 않으셨어요?” “늘 그래서 잘 몰라” “최근에 감기 걸리거나 약 바꿔 먹은 거 있으세요?” “약은 다 떨어져서 안 먹은 지 꽤 됐고, 감기도 걸린 것 같아” “지금 숨찬 거 말고 다른 데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온 몸이 다 아파
.”

몸 여기 저기를 만져보고 두드려보지만 불특정 신체부위가 다 아프단다. 2 chest pain, dyspnea 로 본원에 입원하여 시행한 echo DCMP, EF 40%, severe MR, inferior wall severe hypokinesia, pulmonary hypertension 등 무시무시한 진단명이 기록되어 있다. CHF에 준해 심장내과 선생님이 2주간 약을 처방했지만 할머니는 그 뒤로 외래에 오지 않았다. 약도 그 때만 먹고 더 이상 먹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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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intubation을 해야 하는 상황은 아닌 것 같지만 환자는 중환이다. 마스크를 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함께 사는 분은 없는지, 자녀분은 안 계시는지 여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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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 지 오래됐어. 자식들은 돈 없어서 다 도망가고 없어. 나 병원비 낼 돈도 없으니 입원 안하고 집에 갈래” “지난번 입원비는 어떻게 내셨어요?” “동네 사람들한테 빌려서 냈지. 아직도 못 갚았어. 집 문도 다 열어놓고 와서 엉망이야. 나 갈래” “동네 분들에게 연락해서 집안 단속 좀 부탁하시면 안되겠어요?” “전화번호 몰라


이런 환자가 입원하면 의사가 환자 옆에서 keep하고 밤새 지켜봐야 할 상황인데, 환자는 집에 가겠다고 한다. 같이 온 보호자가 없으니 입원이 어려운 건 아닌가 싶었지만, 환자상태가 중하고 보니 무슨 수를 누가 냈는지 환자는 다행히 입원하였다
.

대학병원에서는 배우지 못하는 것들


환자를 보고 돌아온 당직실, 가슴 한켠이 묵직하고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지방이라 그런지 노인 환자가 서울보다 더 많고 독거노인이 대부분이다. 서울에 있을 때는 성의가 있는 자식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자식들이 부모를 병원에 모시고 온다. Hx도 자식을 통해 어느 정도 알 수 있고 환자 상태 및 필요한 검사에 대해서도 설명하며 진료를 진행한다. 노인의 P/Ex이나 lab이 애매한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환자에 대해 추론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정보들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곳 환자들은 그렇지 않다. 얘길 들어보면 Acute MI가 분명한 것 같은데 3일이나 참다가 병원에 오는 할머니, 평소에 가슴이 답답하다는 말을 하던 할머니가 아침 밥 먹고 갑자기 숨을 안 쉬어서 respiratory hold가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알 수 없는 채 놀란 얼굴로 구급차를 부르는 할아버지, 배에 큰 수술 자국이 있는데 그게 무슨 병을 치료하려고 한 수술인지 전혀 모르는 할아버지, BST 500이 넘는데 자신이 당뇨인 줄 잘 모르는 할머니…. 이들은 마음속으로 다들 병원비 걱정, 내일 나갈 밭일만 걱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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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 나와서 가장 크게 배우는 것은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보던 관점을 전환하여, 보다 community 가까이서 환자를 접하고 우리 나라 보건의료 체계의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Harrison대로, Washington manual대로 환자를 management하고 약 쓰면서 f/u하는 것이 수련과정을 밟는 레지던트인 나에게 당연한 의무요, 학습의 과정이겠지만, 그렇게 병원 안에서 이루어지는 practice만으로 환자에 대한 care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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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So what?’에 대해서는 아직 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일도 아닐 것이다. 의대 학부시절 행동과학 시간에 배우고 난 후 잊고 있었던 sympathy → empathy → empowering의 도식이 생각난다. 어쩌면 난 내 의학적 실력과 지식의 미숙함을 핑계로 sympathy도 메말라 버리고 환자에 대한 공감의 능력도 상실해 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