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너무 안타까워서 미워할 수 없는...

슬기엄마 2013. 11. 11. 23:28


지금 병이 계속 나빠지고 있는 난소암 환자.

환자는 병원에서 2시간 거리에 산다.


환자는 올 2월 이후로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 

2월까지 썼던 항암제는 나름으로 효과가 있어서 종양표지자 수치도 정상으로 유지되고

- 난소암은 종양표지자가 질병의 활성도를 비교적 잘 반영하는 암이고 환자 병 상태와도 상관관계가 높은 편이라 좋은 마커가 된다 - 

복통 등의 증상도 없었다.


다만 항암제의 독성 자체가 환자를 너무 힘들게 했다.

환자는 더 이상 치료를 하지 못하겠다고 항복 선언을 했다.

환자는 아이가 어려서 최선을 다해 치료하려는 사람이었는데도 

더 견딜 재간이 없었나 보다. 


한달 간격으로 경과관찰 하기로 했다.


항암치료를 중단한지 3개월만에 복수가 차기 시작한다. 

복수가 힘들어서 외래에 와서 물을 빼고 간다.

그 간격이 점점 짧아진다.

나는 복강 내 관을 넣고 

집에서 조금씩 물을 빼면서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떻겠냐고 했지만 

그는 싫다고 했다.

그냥 자기가 힘들 때마다 외래에 오겠다고 했다.


늘 당일 접수로 오니

외래 끝 무렵에 진료를 보게 되고 기다리느라 힘들다. 

오후 늦게 복수천자를 하고 돌아가려니 힘도 많이 빠진다.

그래도 그녀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항암 치료를 안 하는 동안 

그녀의 어머니는 한달에 수백만이 넘는 효소를 사서 그녀에게 먹였다.

그거 먹고 복수가 덜 차는 거 같다고 좋아했다. 

본인이 평생 모아놓은 돈을 다 써서 효소를 사 딸에게 먹였다. 

반짝 좋은 것도 같았지만 효과는 오래 가지 않았다. 

환자는 돈이 없는 어머니에게 더 이상 부담을 줄 수 없다며 자신이 사서 먹겠다고 했다. 

지금 항암치료도 안하고/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내가 직접적으로 환자를 위해 해주는 것이 없는데

효소 먹지 말라고, 별로 도움 안되고 돈만 많이 들거 같다고 딱잘라 얘기하는게 미안했지만

그래도 난 만류했다. 

그녀는 나한테 미안한듯 웃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계속 먹었다고 했다.)

난 내 말을 안 듣는 그녀가 안타깝고도 미웠다. 



복수를 빼러 외래에 오는 횟수가 잦아지고

복강 내 복수도 여러 구획으로 나누어져 점점 천자가 어려워지고 있다.

복막도 두꺼워지고 있는거 같다.  

항암치료 안할거니까 CT도 안 찍겠다고 한다. 

이렇게 자꾸 외래 오는거 힘드니까 관 넣자고 해도 그녀는 싫다고 했다.

배불러고 못 먹고 천자만 하면 탈수되니까 입원해서 몇일 영양제라도 맞으며 컨디션 조절을 하라고 해도 절대 입원 안한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오늘은 정말 많이 힘들었는지 

저녁 무렵 응급실로 오셨다.


왜 관을 안 넣으려고 하세요?


예전에 한번 넣었을 때 아이가 그걸 보고 깜짝 놀라더라구요 

엄마한테 이런게 있으니까 너무 무섭대요. 


아이때문에 입원도 안 하실려고 하는거에요?


네.


제가 예전에 항암치료 받으면서 병원에 입원하던 시절에

병원에서 입원치료만 하고 오면 집에서 내가 힘들어하니까

애가 입원을 못하게 해서요.

내가 입원하면 애가 밥도 잘 안먹고 밤에 울고 그런대요.


아이는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이다.

복수를 빼러 병원에 오는 엄마를 따라 다닌다.

초콜렛도 주고 음료수도 주면서 

아픈 엄마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어린 딸의 마음을 달래본다. 

그냥 음료수라도 하나 얻어먹는 재미라도 있으면 병원이 덜 무서울까 해서...



복수천자를 위해서는

이제 보통 바늘보다 훨씬 긴 바늘을 써야 하고

매번 초음파를 봐야 하니까 돈도 많이 든다. 

초음파 보고 바늘을 넣어도 잘 안나온다. 

주사실 담당 레지던트 솜씨가 좋은 날은 많이 뽑고 가고 한참 있다 오고 

곰손을 만나면 1000cc 도 못 뺴고 가서 금방 다시 외래에 온다. 

잘 하는 레지던트가 하게 해달라고 나에게 간곡히 부탁하지만 나로서는 조절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아무리 바늘로 여러번 찔려도 

아이가 무서워할까봐 관을 넣지 않고

아무리 힘들어도 

혼자 있는 아이가 울까봐 입원하지 않고 늦게라도 집으로 돌아가던 그녀가

오늘 입원을 했다.



당신의 유일한 피붙이를 위해

자기가 모은 돈을 털어 효소를 사 먹이는 엄마에게 미안해서

주치의가 먹지 말라고 하는데도 효소를 먹었다.

지금 그녀로서 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었으니까. 


한달에 수백만원하는 효소를 먹느니 아바스틴이라도 써보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바스틴은 임의비급여로 

불법이다. 


불법보다 

효소가 더 나은걸까?


그녀를 위한 치료적 대안을 내지 못하는 나.


지난 8개월.

그녀는 충분히 많이 힘들었다.

최선을 다해 삶을 견디고 있다. 



지난 5월, 

내 차트를 보니

환자에게 앞으로 기대여명이 6개월 정도가 될 것 같다고 이미 이야기를 한 상태다.

환자는 내가 말하는 것보다 더 오래 산다고도 얘기했던 거 같다.


어쩔 수 없이 입원을 한 그녀.

생명의 불꽃이 조금씩 사그라져 가는게 느껴진다. 


그녀를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