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저를 포기하지 않다니...

슬기엄마 2013. 8. 14. 01:17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그녀는 대개 그 내용과 별로 연관이 없는 질문로 응답하였다.


이번에 병이 나빠졌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고 등등의 심각한 얘기를 다 하고 나면

변비약 없으니까 약 주세요

뭐 그런 식이었다. 

할머니도 아니다. 나랑 나이도 비슷하다.

뭔가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병이 나빠졌다고 해도 

남의 일처럼 

'그럼 어떻게 하실건가요?

그렇게 물었다. 


수술 전 항암치료 하고 수술했는데

수술 부위에서 금방 재발하였다.

순식간에 목 근처 림프절 부위로 병이 진행되어 

방사선 치료를 했지만 또 금방 재발하였다. 

주요 장기는 침범하지 않은채

수술한 쪽 유방 근처의 피부, 겨드랑이와 목 림프절, 어깨 부위의 피부 

이 정도로 전이가 진행되었다.

피부 병변이 조금씩 조금씩 진행되어 면적이 넓어져 간다.


마치 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거나 방사선치료를 살짝 해주면 다 나을 것 같이

별거 아닌 병변인것처럼 생각되지만 피부재발은 예후가 좋지 않고 약제 반응이 좋지 않다.

주요장기는 다 멀쩡하고 피검사도 항상 정상이다. CT를 찍어도 피부가 약간 두꺼워져 보이는거 빼고는 슬쩍 보면 정상같아 보인다.


그런데 대개의 피부 재발은 예후가 좋지 않다.


HER2 양성이나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에서 수술 후 조기에 피부재발이 나타날 경우 치료가 잘 안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항암치료밖에 할 수 없는 삼중음성유방암 환자들은 별거 아닌거 같은 병변 때문에 여러 항암치료를 반복하게 되니 환자로서는 잘 납득이 안된다.

환자들은 그냥 다시 수술하면 안되나 그런 생각을 하지만, 

피부 재발은 혈관을 타고 진행되는 전이라서 

부분적인 제거를 하여 눈에 보이는 병변을 없애도 

바로 옆 자리에 또 금방 재발된다. 

그리고 재발되었지만 속도가 느리다. 그래서 낫지 않은 채 시간이 오래 간다.


이 환자도 그랬다. 

환자는 경제적인 형편이 여의치 않아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잘 낫지 않고 조금씩 나빠지는 병 때문에 항암치료를 계속 하는 형국이 되다보니 몸이 많이 지쳤다. 너무 피곤해서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직장을 다닐 때는 항암치료 스케줄과 직장 스케줄, 월차 이런 걸 고려해서 치료 시간표를 짜야 했기 때문에 환자도 나도 외래 시간표를 맞추다 보면 좀 짜증이 났다. 직장 때문에 매주 오는 항암치료는 하기 힘들어했다.


그러나 결국 병이 낫지 않으니 직장을 그만두었다. 

매주 항암치료도 했다가, 

새로운 병변에 방사선치료를 추가해보기도 하다가, 

항암제도 이것저것으로 바꾸어 봤지만 같은 약제로 4번 이상 치료하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듣는 약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녀가 외래 오기 전날에는 미리 찍은 CT를 보고서 별로 나빠보이는 병변이 없어서 내심 안심하고 외래를 들어가는데, 막상 만나서 더듬더듬 가슴팍을 만지다 보면 지난번에는 안만져 지던 쪼그만 뾰드락지 같은게 새로 만져진다. CT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설마 하고 조직검사를 했었는데 늘 재발이었다.

 

내가 만져보고 별 이상 없는 것 같아 내심 휴우 안도의 숨을 내쉬면 그녀가 말한다. 


선생님 근데요 여기가 좀 이상해요.


그렇게 계속 피부 병변이 새롭게 발견되기를 몇달째.

급기야 기존 피부병변은 성이 나고 진물이 나고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상처전문간호사 선생님께 드레싱 요령을 배워서 더 상처가 나지 않게, 그리고 2차 감염이 오지 않게 교육을 받게 하였으나, 근본적인 문제는 암세포를 콘트롤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드레싱만으로는 큰 도움이 안되었다. 

자기가 자기 가슴을 드레싱 하려니 자세도 어렵고 팔도 힘들다. 


그녀는 나에게 대놓고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내 말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 눈치가 역력했고 늘 실망하는 것 같은 내색을 보였다.

나는 CT를 보고 병이 나빠졌는지 여부를 판단하지만 

그녀는 CT를 찍지 않아도, 외래 오기 전부터 이번 항암제가 자기한테 잘 맞는지 아닌지 알고 있었다.

자기 피부를 들여다 보고 진물 나오는거 보고 만져보면 알 수 있는 거니까. 


CMF

Cyclophosphamide/Methotrexate/Fluoruacil

고전적인 항암제 병용요법이다. 항암제 개발 초기 약제들이다. 반응율도 별로 높지 않다.

삼중음성유방암에서는 다소 효과가 좋다는 후향적인 논문 몇편이 있지만

아직 전향적인 임상연구는 진행된 바 없다.

약이 너무 오래된 구식약이라 이 약으로 임상연구가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 첨단 신약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는 판국에 말이다.  


그동안 쓸만한 약은 다 썼다. 임상연구도 세번이나 했다. 


나는 환자에게

이 약으로 치료해 보고도 좋아지지 않으면 항암치료를 그만하겠다고 말했다. 


그럼 절 포기하시겠다는 건가요?


환자의 직접적인 질문에 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고 당황했다. 어색하게 입막음을 하고 치료를 시작했다. 


그리고 좋아졌다.

마음이 다급하여 매주 병원에 오게 하여 피부병변을 관찰하였다.

1주일 간격으로 2번 하고 나니

벌겋던 피부도 좋아지고 진물도 안나고 딱쟁이도 생겼다.


선생님, 정말 고마워요.


환자가 나에게 처음으로 해 준 말이다.


왜냐하면 이번 약으로 처음 좋아졌기 때문이다. 


환자는 좋아져야 비로소 의사가 고맙다. 당연한 이치다.


그동안 그녀가 왜 뚱딴지같은 질문을 자꾸 던졌는지 알것 같다.



환자가 고맙다고 하는데 내가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치료를 잘 못하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저에게 계속 치료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