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환자가 하기 싫다고 하면 무리해서 하지 마세요. 나중에 원망 들어요.' 그렇게 말씀하신 분도 있었다.
환자는 그 사이 여기 저기서 자료를 많이 찾고 공부한 것 같다.
아드리아마이신 쓰면 심장기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들어 나에게 그렇게 합병증이 와서 죽을 수도 있는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1000명에 1-2명이 아드리아마이신 독성으로 심부전이 와서 죽는다고 말해 주었다.
호중구 감소증이 와서 열이 나면 병원에 괜히 입원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4번의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호중구 감소성 열이 날 확률은 10%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가 패혈증이 와서 중환자실 가고 죽을 수도 있는것 아니냐고 했다.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그런 일은 매우 드물다고 설명하였다. (이런 의사의 설명방식이 환자들이 제일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부작용과 예상치 못한 합병증의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난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 내 의견을 밝혔다.
그녀는 나의 설명에 굴하지 않고 또 다음 외래 때 다시 상의했으면 좋겠다고 하고 갔다.
매번 서로가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다음번에도 그녀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 항암치료를 안 할려고 생각했다.
이제와서 내 원칙을 접는 것이 그녀에게 또 다른 불안감을 줄 수도 있겠지만
나도 지쳤다.
의사가 애걸복걸해서 항암치료 하면 안된다.
그녀 말처럼 괜찮을 수도 있는것 아닌가.
환자들이 매번 이렇게 나의 결정을 믿지 못하고 시간을 끌면
외래에서 환자 보기 힘들 것 같았다.
설명하고 면담하는데 좀 지쳤다.
환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너무나 많은 정보를, 심지어 잘못된 정보를 공부해 온다.
앞으로는 이런 경향이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젊은 그녀가 고민하는 것은 십분 이해가 된다.
그녀도 나를 괴롭히려고 그러는게 절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녀는 지금 너무 고민이 되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도 돌봐야 하고
하던 일도 계속 해야 하고
너무너무 고민이 되기 때문에 내 말을 한 순간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도 암으로 우리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돌아가셨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아버지가 너무 힘들어 했던 것을 봤던 그녀는 너무나 두려운 것이다.
나는 그녀가 고민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로서 충분히 근거를 제시해주고, 전문가로서 내가 왜 이렇게 판단했는지 설명해 줄 의무가 있다.
그걸 짜증내면 안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미국이 아니다.
환자와 면담을 5분 하나 30분 하나
그러한 면담 자체에는 비용이 책정되어 있지 않다.
내가 환자를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그 환자에게 애를 쓰고 설명하는지 그를 위해 공부하는지 얼만큼의 시간을 썼는지, 그런 정신적인 노동에 대한 비용은 책정되어 있지 않다. 의사들은 그렇게 돈 안드는 말 몇마디 한걸 가지고 돈을 받으려고 하냐고 생각한다.
의사로서 내가 우리병원의 수익을 위해 벌어들이는 돈은
환자에 대한 상세한 설명, 면담 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고가의 첨단 검사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 처방 건수를 늘리느냐에 달려있다.
나는 계약직 의사이고
나에 대한 평가는 외래 실적, 수익율, 그리고 논문 편수에 의거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나를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은 그런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 병원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면 그래서 계약직 의사가 아니라 정규직 의사로 일하려면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나의 제한된 역량과 노력을
적절한 수익율 유지, 그리고 논문쓰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자존심이 있지, 그렇게는 할 수 없다.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야지. 암, 그게 임상의사지.
난 환자의 면담을 위해 내가 노력많이 하고 시간쓰는 것을 억울해 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런 면담이 길어지는 것 때문에 다른 환자의 진료에 차질이 생기면 안된다.
그리고 내가 지쳐서도 안된다.
난 결국 네번째 면담 시간에
단호하게 말했다.
항암치료 하실거에요?
하시 싫으면 하지 마세요.
전 했으면 좋겠어요.
제 의견에 동의하시면 오늘 항암치료 받고 가세요.
3분 진료로 끝냈다.
그녀는 울면서 항암치료를 받으러 갔다.
그런 식이다.
나의 일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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