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의 코멘트

슬기엄마 2013. 6. 17. 23:28



보건복지부와 국립 암센터가 주관하에

오는 6월 20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암생존자의 건강한 삶을 위한 제안'을 주제로 암정복포럼이 열린다.

(컨퍼런스룸 301호 오후 1시-6시)


암생존자(cancer survivor)라는 말이 다소는 낯설지만

내년이면 우리나라도 암생존자 100만명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어 

국립암센터는 '근거중심의 생존자 관리'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책에 담긴 내용을 중심으로 포럼을 개최하게 되었다. 





이 책은 

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받는 동안은 몰랐던 후기 합병증이나 

이차암 발생의 예방 및 건강한 생활습관

사회정서적 지지의 중요성

가족과의 관계

직장으로 복귀하는 문제 

등등 환자와 가족이 부딫히게 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지침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는 신체적 후기합병증 부분에 대해서 글을 썼다. 

환자의 암종 별로, 받은 치료별로, 매우 다양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지만, 일일히 다 기술하지는 못하였다. 대략적으로 발생가능한 위험들, 유의해야 할 점들에 대해 기존의 논문과 연구문헌을 토대로 정리한 글이다. 이런 미흡한 부분이 질병별로 자세하게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엊그네 집으로 배달되었다. 

나는 원고 교정과정에서 내 글 뿐만 아니라 다른 저자의 글도 교정을 보았고 

내용을 정리하는데도 관여했기 때문에 

정작 책이 나왔다고 해도 솔직히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인쇄 직전 파일까지 이미 다 점검해서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달된 책을 펼쳐보지도 않고 집에 놔 두었는데

엄마가 읽으셨나보다.


한번 암을 진단받으면 수술받고 항암치료 받고 그 과정을 이겨내는 것도 힘든데

이렇게 무서운 합병증까지 감당해야 하다니 

정말 암은 징한거 같다. 

환자들은 어떻게 사냐.


그런 합병증이 누구에게나 다 생기는건 아니에요.


그래도 환자들은 이런게 다 나에게 생길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두렵지 않을까?

너 환자 잘 봐야겠다.

몸도 마음도 잘 위로해줘야 할 것 같구나.

나 같으면 그 긴장과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럴거 같아도

다들 강인하게 잘 이겨내요.


다 의사 앞에서만 그러는거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울면서 힘들어할지도 몰라.

마음이 안타깝고 짠해서 네 글을 끝까지 읽을 수가 없더라. 


이 책이 소설책도 아닌데

엄마는 이 딱딱하고 건조한 문체의 글을 읽으면서도

환자들의 심정이 이해되고 그들 마음이 상상되셨나 보다.


그러고 보니

엊그제까지 우리 앞집에서 살았던 집 아저씨도 얼마전 전이성 위암을 진단받으셨고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알고 지내는 분 중에서도 

같은 성당 교우 중에서도 

암환자가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한참 전에 외할아버지도, 작년에 외할머니도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떠오른다. 

암으로 참으로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는 병이 되었다. 


엄마는 복잡한 암 치료과정은 잘 모르신다. 완치가 된건지, 재발을 한건지, 앞으로 예후가 좋을건지, 나쁠건지, 그런 건 잘 모르신다. 다만 치료를 받으며, 혹은 치료의 후유증으로, 혹은 병이 나빠져서 힘들어하는 이들을 방문하여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봉사하신다. 주위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다 드리고, 같이 산책도 나가시고, 기도도 해주시고 그런다. 


가족 중에 암 환자가 한명 생기면, 다른 가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옆에서 지켜보셨기 때문에 이건 한 사람의 병이 아니라고 하신다.  


암은 

내가 혼자 앓고 넘어가면 되는 병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만 아프고 넘어가는 병이 아니고

가족과 함께, 그리고 어쩌면 평생 마음 속 짐이 되는 병일지도 모르겠다.

환자가 싸워서 이겨내야 하는 부분도 있고

가족이 참고 견뎌야 하는 부분도 많다.

우리 삶의 약한 고리를 노출시키는 병이다.


지난주부터 출산휴가를 간 선생님을 대신하여 진료를 보다보니

환자가 많고

진료시간도 지연되고

나도 외래를 보다보면 많이 지친다. 

그래서 오늘도 두세명의 환자에게 싫은 소리를 했다.

병이 나빠져서 약을 바꾸자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환자와 그 아들에게 친절히 그 과정을 설명하지 못하고 우격다짐으로 항암치료를 하였다. 

말도 곱게 하고, 늘 환자에게 성의를 다하고, 상황을 잘 설명하려고 해도

여전히 나는 한계가 많다.


몸도

마음도 

잘 위로하는 의사가 될려면 멀었다.

오늘 나에게 우격다짐으로 항암제를 맞고 가신 그 분께 내일 전화라도 해 봐야겠다. 

참으로 반성이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