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힐링 터치

슬기엄마 2013. 3. 29. 13:25


의도치 않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올 때가 있다.

아주 가끔.

나에게 그런 재능이 있다.

바로 이름을 짓는 기술이다. 


지난 2년간 유방암 분과의 임상연구 이름을 짓고 있다.

들어가는 약제의 앞글자나, 임상연구의 핵심개념어 앞 글자를 따서 그럴싸한 이름을 짓는다. 여러 병원 선생님들이 당신의 프로토콜에 내가 이름을 붙여드리면 아주 기뻐하셨다. 그러면 다기관 임상연구를 하는 동안 누구나 그 연구를 지칭할 때 내가 지은 그 이름으로 스터디를 부르게 된다. 그런 연구들이 다 내 연구같은 애착을 갖게 된다. 


예를 들면

삼성서울병원이 주관하는 FLAG 스더티

국립암센터가 주관하는 PROCEED 스터디

고대안암병원이 주관하는 BEAT-ZO 스터디가 다 내가 지은 이름으로 임상연구를 시작하였고 현재 잘 진행되고 있다. 환자가 잘 등록되면 내가 지은 이름이 좋아서 그런 것 같아 흐뭇하고, 환자 등록이 안되면 내 연구가 안되는 것처럼 마음이 초조하고 그렇다. 내가 이름을 지어준 스터디는 꼭 내 자식같아서 아주 애착이 간다.


우리병원에서 시작했던 HOPE 스터디는 이름과 달리 스터디 초반에 문제가 생겨서 임상연구를 중도에 그만두어야 했다. 우리병원 HOPE 스터디가 문을 닫게 되었을 때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우리병원 호스피스 팀이 재작년부터 도입하여 시작한 프로그램 중에 발맛사지 프로그램이 있다.

발맛사지라고 하면 좀 느낌이 그렇다. 그러나 이 발맛사지를 하시는 분들은 교육도 제대로 받으시고 경험도 많으신 베테랑 자원봉사자들이다. 전문 자원봉사자 그룹이자 일종의 능력기부이시다. 우리 병원 호스피스에는 현재 6명의 전문 발맛사지 담당자가 활동하고 있다. 


암환자들은 영양부족이나 혈액순환의 문제로 팔, 다리가 붓는 경우가 많다. 의학적으로 왜 그런지 설명할 수는 있지만 해결할 수는 없는 어려운 증상 중의 하나이다. 특히 다리가 붓는 경우 걷기도 힘들고 통증도 심하다. 그런 환자에게 발맛사지는 최고의 치료이다. 어떤 의사의 처방이나 약, 물리치료로도 이만큼의 효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호스피스에 의뢰되었을 때

호스피스라는 이름만으로도 속상해 하고 자신의 미래를 암울하게 생각했던 환자들이 발맛사지를 받고 나면 기분도 너무 좋고 몸 컨디션도 부쩍 좋아지는 걸 경험하면서 가장 기다려지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으로 손꼽고 있다. 또한 자원봉사자들이 힘과 에너지와 마음을 다해 맛사지를 해 주는 것을 경험하고 나면 호스피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호스피스란 내 인생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남은 시간을 보다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받아들이신다. 굳이 삶과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밖으로 말하지 않아도 환자들이 맛사지를 받으며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발맛사지팀을 '힐링터치팀'으로 명칭을 변경할 것을 제안하였고

자원봉사자들도 이에 찬성하여 개명하기에 이르렀다.

환자들의 반응도 좋다.

훨씬 괜찮은 프로그램같은 느낌을 받는다. 


올해는 손맛사지 프로그램을 도입할 예정이다. 

발맛사지를 잘 하기위해서는 다소의 전문성과 훈련기간이 필요한 것에 비해 손맛사지는 모든 자원봉사자들이 배워서 자신의 담당 환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간단하고도 효과적인 프로그램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이들도 힐링터치팀의 일원이 될 것이다. 


마음의 기운과 사랑을 불어넣는 힐링터치!

우리 자원봉사자들의 사랑으로 환자들에게 좋은 치료 효과가 있을 것이다. 

사랑은 

나의 힘과 기운과 에너지를 나누는 행위이다.

자원봉사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