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조기유방암

고딩 엄마들 진료실에서 만나다

슬기엄마 2013. 3. 18. 19:25


남들보다 항암치료를 힘들게 받은 그녀.

탁소텔 맞으면 원래 몸이 좀 부어서 못 먹어도 몸무게가 늘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환자는 치료 중에 어찌나 못 먹고 힘들어 했는지 

항암치료를 마치고 나니 몸무게가 7-8kg 가까이 줄었다. 


항암치료 후유증 때문에 기운이 없기도 하고

빠른 시간 내에 몸무게가 너무 갑자기 줄어서 기운이 없기도 했다.

식욕이 없어서 식욕촉진제를 드려보기도 하고 하고

폐경기 증상 때문에 온 몸이 아파서 각종 진통제를 드려도 봤다.

약 부작용이 너무 심해 그런 약들의 효과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우여곡절끝에 치료를 다 마쳤다. 


오늘은 치료를 마치고 처음으로 유방암 종합검사를 하였다. 

결과는 오케이. 아무 이상이 없으시다. 

보통 검사 결과가 좋네요. 다행이에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대개 환자들이 활짝 웃으시면서 아주 뿌듯하고 만족해 하시는데 이 환자는 여전히 울상이다.


선생님 

머리가 너무 아파요.

타이레놀 먹었는데 전혀 효과가 없어요. 

뒷목이 너무 땡기는거 같아요. 심장 박동칠 때마다 머리도 울리는 것 같아요.


그녀의 표정만 봐도 두통이 느껴진다.

그녀의 유방암 타입은 뇌전이가 잘 생기지 않는 유형이다. 뇌 MRI를 찍기보다는 환자의 병력청취와 신체검사가 더 중요할 것 같다. 



그녀의 자랑이었던 큰 딸. 작년 말 서울 시내 유수의 외고에 합격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그래서 그녀는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온갖 부작용으로 고생하면서도 잘 이겨냈다. 가끔 그녀의 곁에는 자랑스러운 그녀의 딸도 함께 있었다. 그렇게 엄마를 지탱해주던 딸이 외고에 들어가서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마음의 부담도 너무 크고 학교 생활이 힘들었다고 한다. 아직 학교생활 시작한지 얼마 안된거 아니냐고 했더니 외고는 이미 지난 겨울방학부터 이미 고딩 모드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순간 방학 내내 즐겁게 놀며 여유있게(!) 공부한 슬기가 떠오른다.  


그럼 일반고로 전학시켜 줘요. 요즘은 내신 때문에 외고보다 일반고가 대세래요.


모녀간에 마음 고생 단단히 하고 

얼마전 딸은 일반고로 전학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딸은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는 학교 분위기가 영 어수선하고 애들도 공부를 열심 안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마음맞는 친구도 없는 것 같고 대화 수준도 잘 안맞는 것 같다며, 자퇴하고 혼자 공부하겠다고 우긴다고 한다. 


자퇴는 안된다고 했더니

그럼 외국으로 유학가겠다고 했다 한다.

외국 유학을 생각할만큼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철부지 딸의 불평불만에 

그녀는 너무나 분통이 터져서 최근 한달 사이 4-5kg의 체중이 더 빠져버렸다. 

모녀간 대화가 잘 안되나 보다.


오늘 외래 첫 환자였던 그녀와 나는 한참을 이야기했다. 


자식이라는게 마음대로 안되는거다

고등학생이 되면 부모의 지원과 충고가 한계에 달하는 것 같다

요즘 애들은 고생을 덜해봐서 세상 사는게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좀 힘들어도 견딜 줄을 모른다 

부모가 많이 해줘서 자기 의지로 세상 어려움을 헤쳐 나가본 경험이 없다

두 고딩 엄마가 신나게 자식 욕을 하느라 외래 시간을 까먹었다. 


몇일 두통약 먹는다고 낫겠어요?

당분간 머리 아프실 거 같아요. 

슬기는 다음달부터 매주 일요일 외국인 노동자 주말 한글학교 보조교사로 일하기로 했어요. 

애들도 좀 다른 세상을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나면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몰라요. 


안그래도 항암치료 후 호르몬제 드시면서 갱년기 증상으로 힘들어 하시는데, 당분간은 계속 힘드실 것 같다. 

앞으로 내 외래 오실 스케줄은 없는 분이지만, 뭐든 힘든 일 생기면 오시라고 했다.

오실 일 없이 잘 해결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