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두번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원래 태어난 날.
그리고 암 치료 마친 날.
내일이 당신 태어난 환갑이라고 하신다.
요즘에는 환갑잔치도 잘 안하고 환갑이라는 말도 안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환갑은 별로 귀한 나이가아니다.
환자는 2005년 첫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2년만에 재발했으며 지금 허셉틴으로 유지치료를 하며 3주에 한번씩 병원에 오신다.
재발해서 4기 유방암 환자가 되었지만, 마침 그때 막 보험에서 인정되기 시작한 허셉틴을 쓰고 치료 반응이 좋았다.
이런 환자에서
언제까지 허셉틴을 사용할 것이냐
아직 정답이 없다.
별 부작용이 없으니 계속 쓰고 있다.
심장기능 검사 가끔, 종양평가를 위한 CT 가끔.
가능하면 검사 간격도 넓혀서 자주 검사를 안하게 하고 있다.
내가 기록한 그녀의 차트에는 그녀의 소소한 일상이 적혀있다.
큰 딸 결혼시킨 이야기,
딸 결혼시키고 마음이 허한 남편이 30년 산 집을 팔아버려서 대판 부부싸움을 하고 냉전 중인 이야기,
이사 간 집에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들,
자기를 환자 취급 안해준다며 남편 미워하는 이야기,
미워도 남편이니 아픈 남편 밥 차려 먹인다는 이야기,
겨자색 가죽 롱코트가 너무나 세련되었으니 반 잘라서 나 달라고 하자 자기의 남다른 패션을 뽐 내는 이야기,
매주 다니는 골프 다니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적혀있다.
아픈 이야기는 없다.
그녀는 환갑을 못 맞을 줄 알았다고 했다.
이렇게 살아서
아프지 않고 육십 생일을 맞이하니 그 자체로 감사할 뿐이라고 한다.
어릴 적 친구들 만나 그들과 함께 가을 단풍 구경하고 가을 바람을 맞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뿐이라고 한다.
주어진 시간을
감사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
그녀는 이제 마음 정리가 다 되어
다시 재발해도 무섭지 않다고 한다.
누릴 것 다 누렸다고 한다.
그런데
왠지
그녀는 재발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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